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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꿈벗

‘나를

2012년 2월 23일 18시 08분 등록

쉐도우는 제 친구의 이름입니다. 이녀석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영화 '분노의 역류(Backdraft, 1991)'에서였습니다. 영화에서 쉐도우는 화재원인 조사관을 호칭이었고, 화재현장의 CSI(Crime Scene Investigation)같은 존재입니다. 분노의 역류에서는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You go, We go'라는 명언을 남겨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쉐도우가 더 매력적이었고 그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제 내면의 그림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면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싶어졌습니다. 꿈을 찾아 헤매이다 보니 제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홍승완 연구원의 마음편지 중 '성숙의 기회, 그림자와의 만남(http://www.bhgoo.com/2011/index.php?document_srl=47143)'를 읽어보시면 전문가다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겁이 많은 저이고 쓰레기같은 모습이지만, 제 자신인 쉐도우를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으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 중 하나를 꺼내어 이름도 붙여주고 친구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만 마음이 불편하면 쉐도우는 욕을 통해 슬며시 나옵니다. 제 욕은 Native Speaker 수준의 발음과 입에 착착 감길 정도라 듣는 사람에게 불쾌합니다. 저를 아끼는 사람들은 제가 욕을 할때마다 충고를 해주셨지만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녀석을 친구로 삼고나서부터는 욕의 강도와 빈도도 줄어들었습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1호선 종로 5가역에서 인천 방향 열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였습니다. 제 후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노약자석에 만취한 40대 중반 아저씨가 계셨습니다. 잠시 후 옆자리에 어르신이 앉으시려 했지만 만취한 아저씨가 앉지 말라며 큰소리를 질렀고 겁에 질린 어르신은 어쩔수 없이 건너편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어르신은 당연히 여러 소리를 하셨지만, 만취 아저씨는 '민증 까던지...' 등의 전문용어를 남발했습니다. 지하철 객실안의 모든 사람들은 계속 만취 아저씨를 볼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스마트폰은 때를 기다린다는듯이 회초리의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20분 넘게 만취 아저씨를 술주정은 어르신을 향했습니다. 참다 못한 어르신은 내리셔야 할 역이 아님에도 초라한 몸짓으로 차디찬 플랫폼으로 발길을 향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무거웠지만 만취 아저씨와 시비가 붙어봐야 좋을거 없는건 당연하니 그냥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이 내린 뒤에도 만취 아저씨의 술주정은 계속 됐지만 인상만 쓸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배가 먼저 내려야했기에 잘가라는 인사를 하고 지하철문이 닫혔습니다. 바로 그때, 쉐도우가 찾아왔습니다. Native Speaker의 발음과 입에 착착 감기는 정감어린 욕들을 만취 아저씨에게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CGV가 어디서.... 이런 식입니다. 쉐도우의 실력은 아카데미 조연상은 기본이니, 다른 욕은 상상으로 남기겠습니다. 제 목소리가 큰 편이라 객실 안은 쩌렁쩌렁 울렸고 2분 넘게 쉐도우는 그 동안 얼었던 계곡이 녹아 물이 흐르듯 능수능란하게 욕을 뿌려댔습니다. 쉐도우가 튀어 나왔다고 인식했을때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한참 후였습니다. 만취 아저씨는 얌전한 고양이가 됐고, 털을 고르듯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쉐도우가 등장하면 기분이 나빴지만, 그 날은 쉐도우에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제 속이 너무 시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밤은 깊은 잠을 잤고, 개운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쉐도우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도 건냈습니다.

 


쉐도우와의 조우가 기쁜날이었습니다.

IP *.24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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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15:11:23 *.180.232.156

쉐도우 친구를 잘 사용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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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9:51:32 *.222.3.90

ㅋㅋ 쉐도우 드디어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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