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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4일 20시 19분 등록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김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김밥을 먹는 제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김밥을 씹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밥을 마치 전투하듯이 씹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엇이 바빠 그렇게 밥을 먹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있었습니다. 씹는 속도를 천천히 천천히 하자고 주문을 외워봅니다. 밥알이 어금니 사이에서 부서지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놀랍게도 혀가 엄청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밥을 끊임없이 치아 쪽으로 밀어넣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아 밥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하는군요. 자꾸만 씹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나 참 왜 이렇게 급한지 모르겠군요. 다 밥 벌어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먹는데 이렇게 집중해서 먹은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의문이 가기는 합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가 떠오르는군요.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근 한 시간 거리의 학교에 통학을 하였습니다. 아침 5 30분에 타면 30~40분 걸리지만 30분 늦게 타면 버스타는 시간도 30분 정도 늘어나기에 늘 일찍 차를 타게 되었지요. 그래서 좋았던 점(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부담이 없어졌습니다.)도 있지만 그때 얻은 나쁜 습관이 급하게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기에 그 아침에도 밥을 꼭 챙겨먹고 집을 나섰는데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밥을 마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급하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얻은 밥 빨리 먹은 습관이 유용했던 적이 있는데 바로 훈련병 시절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치사하게 밥을 가지고 장난치는 조교들이 많았습니다. 자기들 기분에 따라 식사시간을 주는데 어떨때는 3분도 주지 않았지요. 3분이라는 시간은 천천히 먹는 친구들은 밥을 말아서 몇 숟가락 뜨기도 바쁜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 시간안에 다 먹고 숟가락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다행스럽게도 소화력이 좋아 쇠를 먹고도 소화시킬 정도였으니 문제가 없었지요.

 

문제는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도 여전히 밥을 급하게 먹는 편입니다. 이제 소화력도 예전만 하지 못하고 밥을 먹는 양도 줄여야 하는데 급하게 먹다가 보니 양을 많이 먹는 편이지요. 밥을 먹는 것만 아니라 이제까지 사는 것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바쁘게 급하게 그렇게 산 세월이었지요.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을 갔을 때 금식을 하고 포도한알 한알을 소중하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포도한 알이 그렇게 달게 느껴진 적이 없었지요. 프로그램 후에 회사 동료들과 간 식당에서 굴국밥을 먹는데 굴국밥에 아주 약하게 청양고추의 맛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무도 그런 맛을 못느끼겠다고 해서 식당아주머니에게 여쭤보았더니 국물을 낼때 청양고추를 약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먹는 감각에도 민감해져 있었나 봅니다. 그 경험도 잠시였을 뿐 생활에 빠져 그 뒤로는 그런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였지요. 몇번인가 시도를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김밥 하나를 먹으면서 김밥을 먹고 있는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느낌이 하도 강렬하고 특이해서 요 몇일 시도해보았는데 잘 되질 않는군요. 어떤 스님이 그랬다지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고 똥을 눌 때 똥을 누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밥을 먹을 때 수 많은 생각에 그냥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전투적으로 하는 식사를 이제는 조금씩 줄여나가고 싶습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자. 그 순간을 느끼자라고 나에게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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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08:27:44 *.180.232.11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경우가 많던데 ㅋㅋ

거인의 성급함이 햇빛보다 빨리 글을 올리는 우를 범하여 지금 바로 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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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12:21:54 *.222.3.90

깨어있기가 아주 힘든 것인데, 그것을 인식 및 자각 하신 것만으로도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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