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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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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6일 17시 04분 등록

삶을 노래한다는 것

 

“안녕하세요. 딸이 나가라고 해서 나왔습니다. 제 딸이 이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참 예뻤어요. 그런데 어릴 때 뇌수막염에 걸려서 청각을 잃었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맘이 아플까?..” 이곳 저곳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립니다. 환자와 보호자들로 꽉 찬 강당에는 고단했을 엄마의 삶에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씩씩하고 예쁜데요. 지금 태권도 선수랍니다.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감기가 심해서 입원했습니다. 오늘 부를 노래는 ‘만남’입니다. 딸과의 인연을 맺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부르겠습니다. 딸아이가 노래를 좋아해서 수화를 하면서 부를께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노래를 하면서도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연신 관객석으로 보냅니다. 시선을 따라가니, 심사위원을 맡은 제 뒤쪽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앉아 있습니다. 커다란 눈에 하얀 얼굴, 오똑한 콧날에 생머리까지 남학생들이 많이 좋아할 타입의 예쁜 학생입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을 정신없이 만지작거리는 얼굴에 그늘이 전혀 없어서, 청각상실로 말도 잘 못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노래가 시작되자, 수화에 맞추어 “어.어..으..으..” 하며 등 뒤에서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고 먹먹해졌습니다.

 

2013.12.24일 성탄기념 환우노래자랑에서 엄마는 1등상을 받았습니다. 사회자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마이크를 건네자, 잠시 망설이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습니다. 수화로 통역을 하지 않았으니 딸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OO 아! 니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해서..

엄마는 내 귀라도 주고 싶고, 내 입이라고 주고 싶지만.. 그렇게 못해서 미안하고 너무 마음 아프다...

그래서 널 위해 기도한다. 니가 행복하면 좋겠어. 사랑한다. OO 아”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환자노래자랑에 참석할 때마다 감동을 받곤 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환자 한분 한분이 저마다 책 한권의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6년 째 장기입원 중인 환자의 부인은 “마음이 답답해서 나왔다.”며 노래를 부르고, 제 몸 하나 간수 못해 낳아주신 어머님께 죄송하다는, 중년의 아저씨가 부르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듣고 있으면,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아침부터 소주 한잔이 생각납니다. 노래를 통해 표현된 그분들의 사연, 삶의 회한과 통증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때로는 애잔하게, 때로는 촉촉하게 적셔주었습니다.

 

환자위로 콘서트 등 10년 넘게 노래봉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호스피스 병동 공연입니다. 임종을 준비하는 환자를 보면서 죽음의 모습이 두렵고,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아파와서 몇 년 동안 서글픈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바보 같았습니다. 이제는 유쾌한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손에 잡힐 듯한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분들이 알려주는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마지막은 축제여야 한다는 뒤늦은 깨달음 덕분입니다.

 

죽음은 결국 기억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종이 가까워져 의식이 없어도, 귀는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인체의 감각기관이라고 합니다. 생의 끝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하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비의료인 이지만 부족한 재능이나마 치유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가톨릭 병원에서 근무하기에 가능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물도 주고, 속시원하게 노래도 부르고 참 좋은 병원이에요..”

“아유,,그 엄마..마음이 짠하네요. 얼마나 힘들까....”

 

청각장애 딸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어머니의 믿음과, 모두가 안타까워하며 박수 쳐 주는 모습, 행사가 끝나고 병원을 칭찬하는 환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가톨릭병원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첨단 의학기술과 최신 건물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과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가톨릭병원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시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지나온 삶의 실수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한 사람을 위한 노래, 쾌유를 위한 기도...지치고 어려울 때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마음입니다. 아파 본 사람들은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합니다.

 

언젠가 원목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질병이라는 예상치 못한 생의 장애물이 삶에 위기를 불러올 때, 그때 부르는 노래는 우리를 하느님을 믿는 길로 초대합니다.  삶을 노래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절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뜻은 아닐까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로도 가득 차 있다.’고 말한 사람은, 듣지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중증 중복장애를 지닌 헬렌 켈러였습니다. 가톨릭 병원이 고통을 극복하는 이야기로 가득차고,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치유의 사명을 널리 증거하는 병원이 되기를 기도로 청해 봅니다.

 

 

* 스승님!

올해 3월, 2014년 가톨릭중앙의료원 이념실천 공모전에서

위의 글을 응모하여 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글이 마음에 듭니다.

상을 받아서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인생이 그 비밀의 한자락을 살짝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010년 면접여행 때, 연구원이 되면 공헌할 세가지로,

기도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겠다 말씀드렸었는데, (진부하죠..ㅎㅎ)

줄기차게 노래만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책이 뭐 대수랍니까?  저야 느린 사람이니,

멈추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런 이런..허당아..' 음성이 들리는군요..

 

어제는 스승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스승의 날에 노래를 불러드릴 스승이 없으니 마음 한구석 저릿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과 제자들이 당신을 그리워하니 좋으실 겁니다

노래는 종이 밖으로 탈출한 시이니, 저는 계속 노래부르며 살아 가렵니다.

 

유난히 바다를 사랑하셨고

바다에 당신을 일부 흩뿌렸으니 그곳에 계시겠지요. 

 

그 바다 한 편에서

어처구니 없이 스러져간 많은 죽음들..

미처 꽃 피우지 못한 어린 생명들...


언제나 그러하셨듯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깊이 위로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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