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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1일 20시 27분 등록

자세히 읽어라

 

글을 볼 때 이해한 곳에서 다시 읽어나가면 더욱 오묘해진다. 작가의 언

어는 꽃밭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좋게 보이지만, 분명하게 좋은

것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보인다. 공부는 자세히 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 지

름길은 없다. 지름길은 사람을 속이는 깊은 구덩이다. 껍질을 벗겨야 살이 보이고

살을 한 겹 다시 벗겨내야 비로소 뼈가 보인다. 뼈를 깎아내야 비로소 골수가 보

인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사부가 물었다.

책은 주로 언제 읽어?”

주로 자투리 시간에 읽습니다.”

사부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뭔가 보충이 필요할 것 같았다.

병원에 갈 때도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읽어도 될 책이 있고, 일부러 시간을 떼어 읽어야 할 책

이 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은 시간을 따로 내어 읽어야 돼.”

그 후 나의 책 읽는 패턴이 바뀌었다. 책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읽으니 자연히 책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었다. 고수의 한 마디가 많

은 것을 바꾸었다.

속독을 배우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배우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

아야 잘 이해할 것 같았다. 많이 읽으면 속도는 빨라진다. 잘 쓴 글

일수록 미끄러지듯이 읽혀진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친다.

단락 전체가 좋은 문장이면 처음과 끝에 꺽쇠표시를 한다. 나중에

다시 볼 때는 줄 친 부분만 읽어도 전체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어떤 책을 볼 것인가

 

생각할 것 없는 쉬운 독서와 킬링 타임의 통속성 속에 익숙해진 우리들

에게 배움과 독서의 향기를 선사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러나 향기를 선

사하는 책은 다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다. 평생을 곁에 두고 봐야 한다. 좋은 책이

란 마음이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러질 때, 혹은 바람에 날려 어디로 날아갔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 몇 페이지 펼쳐보면 청량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책은 책이라기

보다는 향기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젊었을 때는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인 줄 알았고, 유명한 여행지

가 좋은 곳인 줄 알았다.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게 되었다.

사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가 쓴 다른 책을 더 읽어보게 된다.

속에서 다른 책이 소개되거나 인용되면 그 책도 사게 된다. 결국 책

이 책을 부르고, 지식이 커지면 모르는 부분도 커지게 되어 항상 갈

증이 가시지 않는다.

많이 읽다 보면 넓고 얕은 것보다는 좁고 깊은 것이 더 필요하다

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하다 보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연히 고전과 인문학 관련 책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사부와 지리산에서 아침 산책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

누었다.

주로 어떤 책을 읽나?”

제가 읽는 책의 반 이상이 자기계발서입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는데 사부의 반응의 의외였다.

자기계발서는 이제 그만 읽어. 그런 책은 세 권만 읽으면 돼.

머지는 다 똑같은 소리야.”

난감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합니까?”

인문서를 많이 읽어.”

,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인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문학이 흔들릴 때였기 때문이다. 그 후 독서방향을 바꾸었다.

제 읽는 책의 대부분이 인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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