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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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실 줄 밖에 몰랐던 스승님께
추모식때 낭독했던 추모사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십 여년전 KBS에 인터뷰를 갔다가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분에게 사부님을 소개 받아 처음 인터뷰했습니다. 여의도 쌍둥이 빌딩에서 만난 변화경영전문가라는 분의 평범한 모습에 저는 3일 일하고 4일 쉬면 가족들 밥은 먹을 수 있느냐고 비아냥 거리듯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24시간을 쪼개고도 휴일 없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던 제게 사부님 말씀은 뜬 구름 잡는 이상주의자의 말처럼 공허하게 들렸던 거지요. 좀 주저하시던 사부님은 잠시후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셨지만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펼치고, 어필하는 저명인사와의 만남에 익숙했던 저에게 사부님의 첫인상은 자신의 명함을 선뜻 내밀기도 어색해 하는 어눌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때가 현장을 즐기며 현장에서 생을 마감 할 것이라던 사부님이 20여 년간 근무해 오신 현장을 떠나 자신의 현장을 날마다 개척하시며 1인 기업의 신화를 맹렬히 쓰시던 그 시절이입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강연 요청을 하며 다시 뵙고 인터뷰 때와 다르게 무척 젠틀해지신 모습에 놀랐습니다. 제가 또 어떤 일을 요청하자 사부님이 ‘어린 왕자’ 같은 제자가 있는데 그와 진행해 보라셨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어린 왕자는 이미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둔 40대에 접어든 중년이었습니다. 제자를 아비와 같은 모습으로 어린 왕자와 같다고 칭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사랑이 넘치던 그 표정. 순간 부럽다는, 저도 그런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들었습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글들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2년여. 쓰다쓰다 15페이지를 못 넘긴 미스토리를 마감 2분전에 이메일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1일. 사부님 댁을 찾아가 우편함에 서류를 넣어두고 돌아섰던 그날 장면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사부님댁 뜨락에 비추던 햇살. 유난히 따스했던 3월의 바람. 그 골목을 걸어 나오며 제 마음에 물결처럼 번져오던 설렘. 그래도 그때가 제 삶의 저희 제자들이 말하는 그 터닝 포인트인 줄은 기실 몰랐습니다. 그후 연구원이 되고 사부님을 뵐 때마다 마음이 뜨겁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스승님 곁에서는 왠지 잘 못 돌았다고 생각되는 생의 골목까지 다시 제대로 고쳐 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사부님의 부재가 실감나지 않는 빈소에서 저희 제자들은 비슷한 기억과 느낌을 내내 나누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는 큰 나무 그늘아래 앉아 여일하게 쉬고 있는 듯한 느낌. 저마다 특별히 사랑받았다고 생각되는 그 이유.
사부님 앞에서는 누구나 큰 사람인 거 같고 누구나 명랑히 웃을 수 있었던 거. 감히 성장한 거 같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부님이 지난 신년회 때 저에게 청하셨던 그 노래. 저는 별로 부르기를 즐기지 않던 그노래를 기회가 될 때 마다 저에게 청하셨던 ‘사랑밖엔 난 몰라’ 그 노래를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이 사람을 ‘사랑 할 줄 밖에 모르셨기에’ 그 노랫말이 그토록 좋으셨던 거지요. 사부님이 쓰신 19권의 책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사람을 깊이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구절로 가득합니다.
사부님. 저희는 오래도록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사부님 다시 뵙는 그날까지 여전히 사부님께 응석 부리고, 길을 물으며. 사모님과 따님들. 사부님이 괜찮은 새 가족이 생겼다고 기뻐하시던 사위분. 자랑을 일삼으시던 손녀. 사부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그분들 가까운 곳에서 든든해하시던 연구소 선배들 뒤를 따라 저희는 함께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거나 말과 삶과 글, 무엇이로든 누구든 품어 사랑하라는, 그것이 먼저라는 물려주신 가르침을 받들며, 멀리 가지 말라던 사부님 말씀대로 손 내밀면 닿을 거리, 가까운 곳에 머물겠습니다. 그리하여 일천하지만 감히 모두가 리틀 구본형으로 살아보려 걸음걸음을 따라 보겠습니다. 혼자선 불가능하지만 스승님이 손잡아 맺어주신 우리는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꿈을 꾸어 보면서요.
같은 하늘아래 당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지만 다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 이라지만, 그보다 더 넓고 평안하고 유쾌한 곳, 그 어딘가에 당신이 늘 함께 하심을 알고 있는 당신을 닮아 ‘사랑밖에 모르고 싶은’ 제자들.
정예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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