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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 루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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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5일 04시 2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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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달간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해가 뜨기전에 깨었고 해가 진 다음에 자리에 들었다.
나는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변에 앉아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바다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이곳에 올 때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왔다.
그 속에는 두 개의 속옷이 들어 있었고 긴 팔 남방이 두개 들어 있었고 바지가 두개, 양말이 들어 있었다.
치약 하나, 칫솔 하나, 그리고 노트북이 있었다.
방을 구하는데 쓰고 난 다음 내 지갑속에는 천원짜리 27장과 만원짜리 4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하루에 천원으로 살았고 토요일에만 만원을 썼다.
토요일에는 소주를 하나 샀고 쌀과 반찬을 조금 샀다.
내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불 두 개와 배게 하나, 그리고 작은 밥상겸 책상이 하나 있다.

 


바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특히, 이곳 바다는 오랫동안 보아 둔 곳이었다.
긴 백사장이 있고 그 한쪽 끝에는 내가 늘 올라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볼 수 있는 작은 누각이 있다.
나는 저녁이면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음미했다.
저녁은 그 특유의 평화로움으로 지고 있었다.
해안의 한쪽 끝에는 꽤 신기한 모양을 갖춘 바위들이 늘어서 있어 그곳에 앉으면 파도가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혹 바위에 부딪쳐 솟구친 파도의 포말이 내 발끝까지 치고 오르면 나는 얼른 몸을 움직여 피하곤 했다.
나는 한달 동안 바다와 파도와 바람과 장난을 치며 살았다.
간혹 강한 바람과 비가 몰아쳤다.
파도가 높게 몰아쳐 웅장한 소리를 질러대면 나는 웃통을 벗고 바다로 나갔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나는 쏟아지는 비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흰 백사장에 서 있다.
원없이 폭우를 맞는 것은 오랫동안 내가 바랬던 모습이다.
폭우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들을 보려 애를 쓴다.
그러나 눈을 뜰 수가 없다.
이내 빗소리와 파도소리와 온 몸에 느껴지는 빗방울 속에서 나는 돌연 바닷가 모래밭에서 불현듯 솟아오른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비가 내리면 내 영혼은 쑥쑥 자라리라..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면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리라..
그런 기대는 늘 나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비가 그치고 나는 창문을 열어 젖혔다.
싱싱한 바람이 불어 오고 나는 밥상을 차렸다.
밥과 김치 그리고 배춧국이 전부다.
나는 바닷가에서 그렇게 소박한 한달을 지냈다.

 


나는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내와 함께 상의하여 아이들의 이름에 모두 바다 해(海)자를 넣어 두었다.
이제 나 역시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고 또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또 하나의 이름, 일해(日海)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매일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본다는 뜻이며 매일 바다로 지는 해를 본다는 뜻이다.
환갑을 넘어 하루하루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이 살기 위해서 였다.
2014년의 가을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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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구본형 선생님이 지난 2006년도에 썼던 글입니다.

미래의 시간을 과거로 인식함으로써 현재의 삶에 대한 자세를 자신나름대로 새롭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위의 글을 보고 나는 노년기에는 또 어떤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줄까를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리다니..

그의 2014년의 바닷가에서의 가을은 이제 영원히 꿈속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근처에 바닷가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바다와 함께 지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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