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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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선생이다. 4년 전에 귀촌한 뒤로 코로나까지 겹쳐 개점휴업상태였지만 글쓰기선생 노릇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나의 투박한 코칭을 디딤돌 삼아 짧은 시간에 전환에 성공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답보상태인 경우도 많았으니 일상의 책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든 작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스텝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두 그룹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학인들이 계속 꿈꾸며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학인들까지 갈 것도 없었으니 나부터도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귀촌 4년은 자연을 피부로 느끼는 환희를 주었지만 사회생활은 더 쪼그라들었다. 일상은 안온하고 무탈했지만 종종, 이게 다인가 하는 생각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올초에 갔던 태국여행에서 나는 기사회생했다. 여행이 주는 활기와 모험정신을 다시 맛보며 텃밭놀이로 대표되는 일상에 자족하는 것이 한편으로 포기와 패배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딸과의 여행기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실로 단순하고 즉흥적인 유형이라 한 번 제대로 꽂히면 10년은 간다. 하지만 학인들에게 이런 나의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자율을 중시하다보니 지나치게 개입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요즘 추모학술제에 올라온 연구에 접하며 구본형선생님의 방법을 새롭게 영접하고 있다. 그야말로 <다시, 구본형>이 이루어진 거다. 6기 연구원 이선형은 대학원에서 연구한 전문성을 살려 교육자로서의 선생님을 재조명해 주고 있는데, 참 좋다. 선생님의 자세와 방법론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거기 더해지는 교육이론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카를 융이 “중년기의 과제가 사회적으로 부과된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개별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들어본 말이라도 여전히 강렬했다.
듀이가 “삶을 바꾸는 경험이 ‘학습’이고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로 ‘교육’이며, 경험이 삶을 바꾸는 학습이 되거나 삶과 무관하게 되는지의 차이는 ‘경험의 재구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 데서 강한 탐구심을 느꼈다. ‘경험의 재구성’에는 내가 아는 글쓰기 말고 또 어떤 방법이 가능한 걸까.
그 밖에 댈로즈Larry Daloz의 멘토링 이론도 아주 유용했지만, 처음 구본형을 접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줄 것 같은 부분으로 끝맺도록 하자. <익숙한 것과의 결별> 2007년 개정판에 실린,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김학원 대표가 쓴 <나의 자기혁명 일기>라는 후기에서 가져 온 것이란다. 이런, 종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나의 해방일지”의 시작이 여기 있었네. 그리고 그 연원에 구본형선생님이 계시다는 거지.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개인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내 생의 결정적인 열 가지 장면에 들어갈 만한 것이니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책은 내 생의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내 생을 뒤흔들었다.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눈으로 내 삶을 다시 기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버렸다.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