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n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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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꿈벗 최성우입니다.
먼저 추모식을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승완이 형의 "마음 편지"를 읽고 저도 사부님의 글에 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이 게시판에 글을 남깁니다.
내가 만일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요?
“거침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_ “화엄경"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_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현암사, 2006)
창가의 감나무 하나, 나는 이 나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10년 넘게 식당 앞 창가에 서서 점점 커지더니 올해는 다른 해의 두 배도 더 되는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초여름 꽃 진 자리에 손톱만 하게 생겨나던 푸른 열매가 장마에도 떨어지지 않고 점점 더 커 오르다 서서히 익어 붉어지면서 깊어 가는 가을 길을 기쁘게 따라나서는 모습을 날마다 창가에 앉아 밥을 먹으며 바라보았습니다. 부디 내 삶도 저러하기를 소망하면서.
창가에 앉아 감나무를 보다 어떤 열매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나무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었습니다. 감을 달고 있어서 감나무고, 포도를 달고 있으니 포도나무고, 사과를 달고 있으면 사과 나무입니다. 문득 물어봅니다.
‘나는 무슨 나무일까?'
예쁜 가을 사과를 보며 나는 사과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과수원에 있는 나무를 보는 순간 싫어졌지요. 작은 키에 잔뜩 가지를 벌려 낮게 드리우도록 변형된 모습이 안타까웠거든요. 산에서 홀로 우뚝 선 붉은 낙락장송을 보고 그렇게 되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외로워 보여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고고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제는 그저 한 그루의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꽃으로 온 천지의 봄을 화사하게 알리다가 버찌를 잔뜩 달고 봄을 보냅니다. 여름 내내 푸르게 서 있더니 가을이 시작되면 벌써 단풍이 듭니다. 삽시간에 단풍이 들더니 삭풍이 불면 와르르 떨어져 가장 빨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 다시 그 화려한 존재로 피어납니다. 봄이 되면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벚꽃 피는 일주일을 기다렸던지요. 나는 내 삶이 벚나무이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그렇듯이 사람도 제각각 저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원효와 의상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한국 불교의 두 기둥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날 때부터 다른 두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두 사람이 당으로 법을 구하기 위하여 유학을 가는 중에 일어난 ‘해골바가지 물’ 사건은 진위가 모호하지만 둘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잘 보여 줍니다. 삼국 시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으로 반듯하고 냉철한 의상은 그까짓 해골바가지 물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당의 화엄종 제2조인 지엄에게 배운 뒤 귀국해, 교단을 만들고 화엄을 전교하고 해인사와 부석사, 화엄사 등 10대 사찰을 세웠습니다. 원효는 다릅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그렇게 달던 물이 사실은 욕지기 나는 물임을 알고 홀연 마음의 밖에 법이 없음을 깨닫고 유학의 길에서 돌아섭니다.
원효의 어머니는 일하러 가다 산기를 느껴 길가 밤나무 아래서 원효를 낳습니다. 출생부터가 낮은 곳에서 태어난 원효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깨닫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의상을 사모한 산동의 아름다운 여인 선묘는 죽어서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길을 지켜주다 영주 부석사 선묘각 속의 영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의상은 반듯한 스님답게 사랑도 단정하게 합니다. 그에 비해 원효에게 사랑은 폭풍입니다. 그는 그저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살맛을 보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파계하고 요석궁의 요석 공주를 취하여 설총을 낳게 됩니다. 의상은 늘 꽂꽂하고 원효는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의상은 '법사'가 되고 원효는 대중의 삶 속으로 깊이 스미는 토착 불교의 '새벽'이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은 원효를 성사라고 불러 높였지요. 계율과 선악 따위는 이미 그 위대한 삶 속에서 다 녹아 버렸습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기 마련입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삶을 살고 감나무는 감나무의 삶을 삽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저 매일 열심히 자라 해마다 더 많은 밤과 감을 생산해 냅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의상이 원효여서도 안 되고 원효가 의상이어서도 안 됩니다. 원효는 원효여야 하고 의상은 의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에 맞는 삶입니다. 저 생긴 대로 살게 되어 있다는 말처럼 우리를 편하게 해 주는 위로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주어진 역활을 해내기 위해 모두가 똑같은 연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있든 가장 자기다울 때 가장 풍성하게 기여하기 마련입니다. 좋은 감나무인데도 열심히 자신을 키우지 않아 감을 주렁주렁 달지 못하는 감나무가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에는 정해진 목적이 없습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삶 자체입니다.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에 닿는 게 아니라 여행 자체인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화려한 결과만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감나무를 키운 이의 마음이지 감나무의 마음은 아닙니다. 좋은 삶 그 자체가 휼륭한 결실입니다. 주변에서 눈에 띄는 나무 살피며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만일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요? 어떤 꽃과 열매를 꿈꾸고 있나요?
'마음 편지' (구본형, 홍승완 지음) 중에서
[답장]
저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정확히는 첫번째 삶이 끝난 나무의 두번째 여정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떤 나무인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나무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나무에 빗대는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저는 ‘새'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새벽에는 나무를 깍았고 주말에는 디자인 연구소에서 디자인과 그림을 배웠습니다. 관련 분야의 거장에게 편지를 쓰고 가서 만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내외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답사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도구점'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이 없었습니다.
일이 없으니 일이주일에 한번 정도는 박물관을 가거나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아마도 봄, 따뜻한 봄이었던 듯 합니다. 그 날도 저는 국립 현대 박물관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전시실, 저 전시실을 기웃거리고 엄마들과 아이들로 시끄러운 박물관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국의 생각하는 사람, 금동반가사유상을 바라보고 또 그 불상을 보러온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도록들을 이것 저것 빼보았습니다.
박물관이 문을 닫을 즈음에 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벤치에 앉았습니다. 해는 지고 하늘은 붉게 타는데 모두 돌아간 큰 광장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순간 울음이 터졌습니다. 꽤 울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는 그만 두었고 아이를 돌보고 지하의 작업실에서 나무를 깍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바래 마지않던 삶인데 왜 이렇게 헐벗은 듯 두렵고 내 발걸음은 어지러운가? 여기가 내 자리가 맞기는 한 것인가? 나는 버티어 낼 수 있을까?
묻고 싶은게 산더미인데 스승은 먼 길을 떠나셨고 그 빈 자리는 컸습니다.
가로등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불빛들이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말라버린 눈가의 눈물과 함께 그 그리운 불빛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점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 높은 하늘에 새 한마리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그 하늘에서도 먹이를 찾아 활공하는 새였습니다.
* 그 날 국립 박물관에서 찍었던 사진. 어두운 하늘을 자세히 보면 검은 점으로 새 한마리가 보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위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새’가 ‘나’이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나는 더 이상 저 땅바닥의 불빛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날기로 결심했다. 저 불빛 가득한 도시가 나의 사냥터다. 나는 나는 법을 배웠고 하늘을 품을 수 있다. 어둠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 안의 빛을 믿는다. 그렇게 저는 그 벤치를 일어나 광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운좋게 도시의 불빛과 아름다운 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그 ‘새’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한 동안 그 ‘새'는 저의 바탕화면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일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부산을 찾았다가 ‘새’를 보았습니다. 부산역을 나와 길 맞으편의 오래된 동네, 이바구길 계단을 오르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건물들, 그리고 부산 북항과 바다가 모두 내려다 보입니다. 순간, 그 일상의 거리를 배경으로 까마귀가 날아올랐습니다. 칠흙 같은 검은색, 그 커다란 날개짓이 보입니다. 지금의 ‘나’였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은 좋아하지 않는 그 새가 저는 좋았습니다.
* 부산역 근처 이바구길에서 찍은 사진.
일상을 배경으로 저는 도구를 만듭니다. 아스팔트 위 작은 먹이를 위해 경쟁하고 상처를 입기도 하고 혹은 작은 승리를 이루며 착실히 얼마 안 되는 먹이를 삼키기 바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의 색으로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날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실한 제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객을 대할 줄 압니다. 세상은 제 이름을 압니다.
오래전 그 텅 빈 광장에서 앞서 보았던 새, 그리고 지금의 새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 새는 어디로 향할 것인지. 여기 이 도시의 어느 작은 하늘에 머물 것인지, 더 아름다운 날개짓을 할 것인지.
지금 이곳은 바다를 면한 작은 동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옵니다.
몇년 전, 은평성모병원에서 일할 때,
한옥마을 근처에 있는 소박한 한상을 내어주는 고급 식당에 갔는데
3층인가, 4층인가 입구에 나무로 직접만든 수저와 저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최성우] 라고 써있는 이름을 봤어요
이야..이 친구, 살아있었네...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산다는 것.
어렵지만 참 멋진 일입니다.
저는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길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자라서 바뀔 수도 있고,
내 삶이 길을 바꾸라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걷는다는 거죠.
이름은 나랑 비슷한데,
나보다 엄청 잘생긴 성우씨..ㅎㅎ
묵직하게 길을 걸어가는 모습.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