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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에 평생을 꿈꾸던 첫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오십에 혼자 살아보는 중입니다>였다. 첫 책은 오십 년 살아내느라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그냥 충만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참 고맙게도 나처럼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고 살아온 중년 여성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책이 되었다.
2. 좋아하는 일이 밥이 되는 시간
2022년 가을부터는 첫 책을 교재로 글쓰기 수업을 했다. 신청자가 많아서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글쓰기가 어려워서 멀리하고 싶었던 중년여성들이 글쓰기가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군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3. <지금 글쓰기방 > 을 열다
2023년 4월 7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날, <지금글쓰기방>를 오픈했다. 남편과 자식을 배려하느라 자신을 안아주지 못한 중년여성들이 놀면서 글을 쓰는 곳이었다. 글쓰기가 지금을 재밌게 놀지 못하는 중년여성들을 안아주었다.
비전은 ‘지금,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나를 안아주고 있습니다.’였다.
그녀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며 지금을 재미나게 놀고, 그녀들이 원한다면 책이 출간되도록 도왔다. 나처럼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고 살아온 중년여성들이 글쓰기를 하며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지금을 사는 모습을 보며 많이 고마웠다. 내 간절함의 방향이 지금 웃으며 살기라서 그랬다.
'지금 글쓰기방'을 열고 1년 후에 썼던 일기다.
2024년 4월 12일
아침에 풍경소리에 눈을 떴다. 바람과 풍경이 만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한 아침이다. 햇살이 쏟아지고 하얀 무명커텐의 자수도 좋아라 들꽃을 피운다. 커텐속 들꽃들이 햇살을 쬐는 동안,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에게 인사를 한다.
바깥 풍경이 궁금해서 커텐을 열었는데 파란 하늘과 호수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복사꽃이 산골 소녀처럼 수줍게 웃고 있고 텃밭의 채소들은 밤사이 자랐는지 키가 더 커 보인다.
마당에는 계절마다 꽃이 핀다. 매화, 벚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봉숭아, 코스모스, 동백나무가 정답게 살고 있다. 오래된 한옥에서 피어난 꽃들이라서 더 매력적이다. 밤에는 한옥에 꽃등이 켜지고 개구리와 귀뚜라미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벌레들이 한옥의 꽃등과 함께 멋진 공연을 한다.
누구라도 들어와서 따뜻한 차 한 잔 나누고 싶고,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그대로 함께 잠들어도 괜찮을 듯한 집이다. 내가 사는 집은 '지금 글쓰기방'이다. 나는 꿈꾸던 집에서 지금 재미나게 놀고 있다.
4. 지금을 재밌게 사는 아들
2024년부터는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그냥 지금 재밌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서 참 고마웠다.
5. 나만의 이야기 <경주> 출간
2024년 4월에 두 번째 책 <경주>를 출간했다. 경주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아서 쓴 글이다. 경주에서 혼자 살면서 소로가 월든을 썼듯이, 경주를 출간했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지금 글쓰기방>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만의 월든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신의 삶을 월든처럼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글쓰기였다. 몰랐던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신청자가 많아서 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나는 지금 재밌게 놀기가 더 중요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나만의 월든 쓰기' 수업을 했다.
6. 지금 글쓰기방에서 첫 책 출간
2025년 4월에 <지금 글쓰기방>에서 함께 글쓰기를 했던 분이 첫 책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고 난 뒤 글을 쓰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혼자 놀 시간이 없을까 봐 겁이 났다. 그녀들의 놀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 기쁜 것과 내가 충분히 놀아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나는 혼자 재밌게 놀기에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고 남는 시간에 그녀들하고 놀았다. 그래서 더 오래도록 그녀들과 놀 수 있었다.
7. 지금 글쓰기방에서 두 번째 책 출간
2026년 12월에 나만의 월든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이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고맙게 가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그녀의 책이 나오자 강의 요청이 자주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나만의 월든 쓰기'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고 강의를 다녔다.
8. 첫 소설 출간
2027년 3월에 세 번째 책을 출간했다. 첫 소설이었다. 노년의 재밌는 사랑을 담은 이야기였다. 할머니들은 책을 읽으며 많이 웃었고 지금을 재미나게 살기 위해서 나이를 잊고 제철인듯 사랑했다. 그래서 치매 환자가 줄어들었고 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9. 친구가 된 애들 아빠
2028년 61살이 된 어느 날, 애들 아빠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혼자 산 지 10년이 지나서 이룬 고마운 꿈이었다. 둘이 살고 싶은 애들 아빠를 떠나온 것이 미안하지 않아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차도 마시며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친구와 수다떨듯 이야기를 나누어서 좋았다.
10. 따로 살아도 따뜻한 가족
2029년 따로 살아도 지금을 웃으며 사는 가족이 되었다. 애들 아빠가 함께 살지 않아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나와 아들들은 혼자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 사람 걱정에서 자유로워졌다. 애들 아빠와 아들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살아서 고마웠다. 나도 그랬다.
11. 수업료가 자유인 <제철 글쓰기방 > 을 열다
2031년에 또래 할머니들과 글쓰기를 하며 지금을 재미나게 노는 공간 <제철 글쓰기방>을 열었다. 비전은 ‘지금이 제철이라서 글을 쓰며 재미나게 놀고 있습니다’였다. 수업료는 자유였다. 마음이 가는대로 하면 되었다. 수업료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상자가 구석에 놓여 있었다. 안 내도 되고 천 원만 내도 되었다. 수업료로 옥수수 삶아오기, 텃밭의 상추 따오기, 집에 있는 김치 들고 오기, 커피 타오기도 좋았다. 수업하며 가져온 것을 함께 나누어 먹고 남은 것은 싸서 필요한 분들에게 주었다. 돈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들 놀기에 보탬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이 담았다. 들어온 수업료는 모두 할머니들의 '지금 놀기'에 썼다. 한 푼도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내가 가진 돈으로 함께 재미나게 놀았다. 생계 걱정 없이 마음껏 퍼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