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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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세 김형석 교수는 ‘60대에서 75세 사이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이며,
이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적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지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심장과 허리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먼저 지난 20년을 돌이켜본다.
그동안 18권의 책을 썼다.
양적으로는 만족할 만하다고 볼 수 있으나 질적으로는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판매부수가 책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는 아니지만 나의 책 중에서 3만권
이상 팔린 책은 <유쾌한 인간관계> 한 권밖에 없다.
필력은 더 좋아지는 것 같으나 갈수록 판매부수가 줄어 평균 4천권 정도다.
나는 지금까지 왜 책을 썼는가?
유명해지거나 인세수입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은 많지만 학교에서나 회사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을 내가 먼저 공부해서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수단이 책이라는 것을 알면서 책을 쓰게 되었다.
그 길을 가는데 구본형선생님은 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덕분에 1년에 한권의 책을 지금까지 쓸 수 있었다.
책은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책은 나의 학습과 성장 그리고
내면을 깊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책을 쓰면서 얻은 기쁨과 보람도 많았지만 회의(懷疑)도 많았다.
처음에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으나 느낌은 갈수록 줄어들고
쏟아야 할 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뻔 한 길을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이 나와도 기쁨이
전과 같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계속 쓴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혹시 나의 정신승리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절필 또는 업종전환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 길을 떠나기에는
아쉬움과 미련이 너무 많았다. 작가의 길을 가면서 더욱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길 외에 더 나은 길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쓴 책을 보면서 가슴 뿌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고작 이것 쓰려고 그 많은 땀과 시간을 보냈던가?’ 하는
아쉬움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보다 더 나를 무겁게 누르는 것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한 나는 과연 책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두려움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의 책은 나의 세계이며 나의 한계이다.
책은 나의 생각의 산물이자 나의 정체성이다.
처음에는 ‘나의 책이 얼마나 나다운가’를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얼마나 나의 책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종착역에 점점 가까워지는 인생여행에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기 전까지 나의 한계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10년간을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걸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하며,
지금 나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언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언어로 한다.
생각할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언어로 정리되지 않으면 생각이 모호한 것이고
언어로 정리되면 생각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려면 언어가 깊어져야 하고,
생각이 다양해지기 위해서는 언어가 다양해져야 한다.
생각을 키우는 3가지 방법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다.
독서는 생각의 재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집을 짓는 데는 다양한 건축자재가 있어야 하고,
요리를 하는 데는 다양한 식재료가 있어야 하듯이
사고력을 높이는 데는 다양한 책들이 필요하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사고의 방향이 정해지고
얼마나 정독하느냐에 따라 사고의 깊이가 정해진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의 과정이 필요하듯이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사색이 필요하다.
소가 풀만 먹고도 그렇게 덩치가 큰 것은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이다.
사색은 정신적인 소화의 과정이며 되새김질이다.
깊은 사고는 독서를 바탕으로 한 사고의 과정을 통해 깊어진다.
생각의 완성은 쓰기다.
생각은 막연하게 할 수 있지만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생각이 정리되어 쓰는 것도 있지만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는 고도의 두뇌활동이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뇌는 가장 게으르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의 정리와 완성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 3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더욱 효과가 있다.
독서 없는 사색은 빈곤하고, 사색 없는 글쓰기는 깊이가 없으며
글쓰기 없는 독서는 시험 없는 것과 같다.
콘크리트를 만들 때 모래, 시멘트, 물이 섞여야 하는 것처럼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에는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나는 지금까지 독서는 매일했지만 글쓰기는 그러지 못했다.
평소 꾸준하게 쓰지 못하고 책을 쓸 때 한꺼번에 썼다.
앞으로의 10년은 방법을 바꾸려고 한다.
새해부터 매일 칼럼을 한편씩 써서 가족홈피(www.dolgol.com)에
올리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긴 호흡으로 꾸준히 할 것이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채우기 전에는 흐를 수 없듯이
글을 쓰다가 부족하면 공부하여 채우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홈피에 올린 칼럼이 300개 정도밖에 안 된다.
앞으로 1년에 300개, 10년에 3천개의 칼럼을 쓰려면 평소에 꾸준하게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일을 매일 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쪽으로 발달하게 된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는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칸트는 평생 자신의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매일 오후 3시 반에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한 결과 위대한 철학적 위업을 달성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실감하니 게을리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나를 믿고, 습관의 힘을 믿어보자
10년 후 매일 쓴 칼럼이 나의 언어의 한계를 넓히고
그 일이 나의 세계의 한계를 넓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