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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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마을 엄승재입니다.
어제 동훈이의 준엄한 꾸지람으로 일주일만에 지각해서 올립니다 ^^;;;
꿈결같던 37기가 벌써 일주일이 흘렀네요. 마지막날 구본형 선생님 말씀처럼 '내가 뭔짓을 하고 왔지?'하는 생각도 들고, 현실과 타협하려는 유혹도 훨씬 강해져만 갑니다.
그래도 제 곁에 37기 꿈벗이 있기에,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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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 사랑, 믿음, 평화
재능 : 작가
취향 : hopemaker 소셜 디자이너 단체 경영
경험 : 사회복지부문 제도개선 전문가
직업의 창조
이름 : 호프메이커
2. 슬로건 : 희망을 보여드립니다
3. 로드맵
-10년 : 50세, 사회변혁가, 정치?
-5년 : 연수원 개관
-1년 : 희망워크숍 개최 , 희망카페 오픈 / 사회적기업 창업 /사회복지법률상담소
-1달 : 희망에 관한 책 7권 읽기 / 블로그 – 페북 소셜 오픈
(번외 : 사랑의열매 퇴사? 희망제작소 입사?, 아름다운재단?, 서울복지재단?)
10대 풍광 2022년 4월 8일
나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인가?
오늘은 2022년 4월 8일, 37기 꿈벗 모임을 한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내 나이 이제 쉰.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싫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지난 10년은 한 해 한 해가 더할수록 행복과 기쁨이 커져갔던 나날이었다.
문득 10년전 마흔의 봄날을 떠올려 본다.
봄이 왔는데 봄같이 않았던 그날, 내 마음도 그랬었다.
마흔의 시점에, 갈림길의 기로에 서 있었지
지금 이 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진정한 욕망이 무엇일까 알 수 없었어.
그 날은 참으로 오랜만에 내 안에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날이었다.
두려움으로 자신 없음으로 회피하기만 했던 내 본연의 모습을 탐색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내 인생에 재미가 들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 후로 십년 ......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만 살았던 삶에서, 이웃들의 행복이라는 큰 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년시절 평생요절로 삼았지만 실제 삶으로는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성경 이사야서 6:8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며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힘들어 보이는 곳이 싫었고, 편하만 살고 싶었지. 헌신하는 삶이 싫었고, 내가 손해보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는 나의 물질과 시간을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이 내게 가장 큰 기쁨임을 인생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그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던 10년이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나를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풍광1. 희망의 마을
드디어 함께 준비한 대보름날이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고, 우리 희망의마을 모두가 논두렁에 모여 신나게 쥐불놀이 한판을 하고 달맞이집을 태웠다. 우리 아이들로 구성된 풍물팀 “천지인”의 신나는 장단에 맞춰 지신 밟기를 하며 희망의 마을 한 집, 한 집을 찾아다니며 한 해의 축복을 빌어주고 있다.
2004년부터 3가정이 천호동 빌라에 모여 살았던 데에서 이제 마음을 함께하는 12가족 50명이 양평 중미산 산골짜기에 있는 정배리 마을에 모여살고 있다.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오래된 잣나무가 많고 다람쥐도 많다. 푹신하게 깔린 소나무, 잣나뭇 낙엽들을 밟으며, 한적한 오솔길을 걷다보면 우리 희망의 마을이 나온다.
이 맑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예배 드리며 함께 하고 있다. 마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참 밝게 자라나고 있다.
처음에는 뜻이 맞아서 함께했음에도 사소한 갈등도 참 많았다.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그때는 얼마나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했었는지. 그러나, 갈등들은 우리들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귀한 계기였다.
몇 년 전 건립한 희망의마을회관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 마음의 상처가 있는 분들이 찾아와 쉼과 힘을 얻고 있다.
우리 마을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지역사회 변화, 교육문제, 사회복지 등 주민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소수의 기득권에게만 있던 정보를 지역주민들이 모두가 골고루 알 수 있도록 하여 “함께” 잘 사는 지역을 일구어 가고 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으로 유기농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고, 주위 농가들과 함께 도시 직거래 판로를 개척했다.
풍광2. 호프메이커재단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저자 파커팔머를 만났던 때가 기억난다. 처음 만났음에도 몇 십년 아는 친구처럼 나를 맞아주었지. 책과 페이스북으로 만난 그 느낌처럼 그는 참으로 따듯한 사람이었다.
아흔의 나이에도 그는 교사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제도권의 잘나가던 교육학 교수에서 비제도권 대안교육학자로서 그의 가르침은 결국 “진실한 사랑”에 잇닿아 있다.
파커팔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오랫동안 꿈꿔오던 호프메이커재단을 열었다. 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만 하던 사회복지사들이 호프메이커재단을 통해 내면의 치유와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다. 이제 그들이 품은 희망으로 세상 곳곳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결국 사람이 희망이기에
풍광3. 사회적기업 희망지기 창업
호프메이커재단 부설로 사회적기업 희망지기도 창업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길러주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지기” 역할을 해 내고 있다. 전국의 수 많은 청년들이 자원하여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 참 고맙다.
풍광4. 호프메이커 하우스
1년여간의 준비 끝에 호프메이커 교육을 받는 분들의 숙소인 호프메이커 하우스를 완공했다.
우리가 세들어 살던 작은 펜션을 인수하여 교육원으로 개조하였다.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 아침을 깨워 일어나면 바로 앞에 중미산 골짜기의 안개낀 마을모습이 펼쳐진다. 참으로 고즈넉하다. 그냥 있기만 해도 마음에 쉼이 찾아온다.
풍광5. 가족여행
아이들이 10살이 넘은 때부터 매년 온가족이 9박10일의 가족여행을 다니고 있다.
한 해는 국내, 그 다음해는 해외로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다니고 있다.
2012년 지리산 종주는 정말 힘이 들었지만, 지리산의 본모습을 제대로 누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2013년 터키여행
2014년 부산 여행
동훈이가 오픈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온 가족이 부산 곳곳을 다녔다.
동훈이의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멋진 전망을 가졌다.
처가가 있는 부산이지만, 매번 스치듯이 다녀오기만 했는데 부산여행 최고의 전문가 동훈이의 찐한 부산사투리로 소개 받은 부산 속 부산은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저녁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식사를 했다. 동훈이 요리솜씨는 정말 끝내준다.
201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
부다페스트의 부다궁전을 손잡고 거닐며 콘서트홀에서 감동적인 오페라를 감상했다. 깊고 푸른 도나우강 강변에서 헝가리 전통요리인 굴라쉬를 맛보았다. 2010년 UWW 글로벌펠로우 졸업식에 모금회 비리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한 아픔을 날릴 수 있었다. United Way Global fellow 동기인 헝가리 UW의 Eva와 올랜도 리더십컨퍼런스때 룸메이트 였던 Tomas를 만났다. 루마니아에서부터 나를 만나러 와준 마리아와 만나서 너무 좋았다.
2016년 백두대간 종주
2017년 남미여행
콜롬비아에서 UW 글로벌펠로우 동기이자 절친이었던 이반 다리오를 7년만에 만났다. 2010년 자기 나라의 정치와 사회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답답함을 나누던 젊은 청년이 이제는 콜롬비아 어린이 청소년 교육문제 해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18년 남도 도보 기행
2019년 스페인 산티아고
2020년 금강산
2021년 아프리카
2022년 제주올레길
지난 10년간의 가족여행으로 두 딸 희원이와 소원이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어서, 그리고 더욱 속깊은 사랑으로 깊어질 수 있어 참 좋았다.
풍광6. 전직 여행
2005년부터 근무했던 사랑의열매에 작별인사를 했었지.
사내게시판에 그동안 감사했다는 글을 올리고 많은 직원들이 답글을 달아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조직 최악의 위기에 근로자 대표로 있었던 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보인 것 같다. 나는 게시판글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08년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것을 적었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 지방발령이 나고, 이렇게 퇴사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감사한다고. 나를 지난 동안 월급을 주고, 먹고 살게 해 준 조직이었다. 만감이 교차했었다.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기도 하지만, 나의 30대를 보낸 사랑의열매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직 여행으로 제주도에 가서 보름 동안 올레길을 걸었다.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다.
풍광7. 두 딸과의 추억
희원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냈지.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말해주는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편지는 희원이가 19살, 소원이가 16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배분교를 다닌 희원이, 소원이는 자연 속에서 정말 잘 자라주었다.
봄이면 엄마와 나물을 캐러 다니고, 개구리알을 주워다가 올챙이로 키우고, 여름이면 다이빙바위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다니면서 재잘재잘 보기만 해도 즐거웠지. 가을에는 잣밭에서 도톰한 잣을 깨먹고, 겨울이면 비료푸대로 눈썰매를 탔지.
아빠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농촌 생활을 선물해 주었다는게 참 기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고, 자신감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풍광8. 안해의 책 출판, 내 책 출판
편집기획자로 남의 책만 만들어 줬던 안해의 첫 책. “루저들의 행복법칙”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못 벌고 세상의 눈으로는 루저이지만,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로 힘든 청년실업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
“정배리 귀촌일기”, “30대 여성, 결혼 전에 진정한 나를 만나라”가 연속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고 아내는 강연과 저술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2009~2011 UWW Global fellow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모금전문기관 UWW”를 썼다. NGO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 현장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UWW의 100년 노하우, 한국적 변용에 대해서 썼다. 또한, 홍보 위주의 기업 사회공헌이 지역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공헌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리고 호프메이커재단 설립과정을 담은 “마을공동체로 희망 일구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호프메이커재단을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사람들이 쇄도했다.
풍광9. 집 짓기
2016년 3년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내 집을 지었다.
정배리에서 한 할머니가 사시던 아담한 농가주택을 인수하여 개조해서 지었다.
이전에 세들어 살던 펜션형 집처럼 세련되지는 않지만 투박한 전통방식의 농가는 더할나위 없는 평안함을 준다.
황토를 반죽하여 흙집으로 만드니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집이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강조하던 소통의 공간인 마당을 넓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동네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잘 쓰이고 있다.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우리집 마당이 애용된다.
풍광10. 제10기 연구원
2007년 4기, 2013년 9기 연구원 낙방에 이어 간절함과 절박한 3번째 도전만에 2014년 드디어 제10기 연구원이 됐던 것은 인생의 더할 수 없는 행운이다.
구본형 사부님으로부터 사사받은 그 1년, 연구원들과의 리뷰와 토론, 여행은 인생에 대한 좁은 내 시야를 넓게 깊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내 삶의 진정한 욕망과 나의 꿈을 알게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내 영혼을 풍요롭게 했다.
변경연 연구원 선후배와 꿈벗들과의 우정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서로의 깊은 속내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받아주고 하는 진정한 친구를 얻게 되었다.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참 살맛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