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5천만의

여러분의

  • 윈디
  • 조회 수 3628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06년 4월 2일 15시 13분 등록
<마음 가는 세 가지 직업>

교수, 작가 겸 방송인, 홍보전략 컨설턴트


<세 직업의 중심에 있는 것>

특성 : 말과 글을 활용,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일, 분석력과 종합력을 필요로 함

주력 분야

교수 – 프레지던트 매니지먼트, 홍보전략 수립, 인터뷰와 기획기사 쓰기

작가 겸 방송인 -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사람 이야기
파편적 정보와 지식을 한데 모아 유의미한 결과물로 재포장

홍보전략 컨설턴트 – 프레지던트 매니지먼트, 홍보전략(사회공헌 포함)

그러므로 --- 기능적으로는 : 글, 말, 기획력
아이템으로는 : 사람 (사람 홍보)
기준점으로는 : 명성과 명예, 경제력


<세 가지 직업을 선택한 기준>

명예 혹은 사회적 명성을 담보하는 일인가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가
말과 글을 활용하는 일인가
경제적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가
혼자 또는 리더가 돼 일 할 수 있는가 (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나의 직업관>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으며,
세상에 바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존경 받을 수 있는 일을 한다.

<현실>

기질 : 자존심이 강함, 때론 독선적, 민첩성, 꼼꼼함, 예민함, 콤플렉스가 많음
적극적, 친화력, 다양한 흥미, 남 앞에 서길 좋아함, 참을성 없음, 적응력
하지만 안전(안정이 아닌) 지향적…큰 모험 하지 않음

재능 : 글 쓰는 능력, 말하는 능력, 종합하고 분석하는 능력, 상황파악력, 친화력, 다양한 관심분야와 학습능력, 설득력, 일을 벌이고 마무리하는 능력, 기획력

경험 : 쓰고 말하기, 새 직장 적응, 소그룹 리더, 다양한 네트워크, 기업 생리 파악 가능


<새 직업의 이름>

프레지던트 매니저
: 전문 인터뷰어(작가&방송인), 홍보전략 전문가, 교수로서의 일은 여기 종속


<캐치 프레이즈>

프레지던트 매니저 : CEO를 경영한다


<미래에 대한 회고.. 10년 후의 회고> 48세

1. 나는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프레지던트 매니저(PM)이다. 모 그룹 오너, 모 통신사 사장, 모 금융사 CEO 등 내로라 하는 한국의 대표적 비즈니스맨들의 이미지, 경력 관리, 자기 개발, 회사 전략 방향에 맞는 홍보 전략 수립 등을 책임지고 있다. 고급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한 ‘PM클럽’의 리더로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정보와 아이디어를 유료로 제공하고 소규모 모임을 이끄는 일도 한다. 사회 저명 인사들과의 깊숙한 교류를 통해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 그룹에 바싹 다가서 있으며, 이는 내 저술 활동, 방송 활동의 원동력이자, 내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2. 2007년 나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으로 1년 연수를 떠났다. 회사의 만류가 있었고, 받기로 했던 장학금을 놓칠 뻔도 했지만, 나는 굳건히 이 계획을 밀고 나갔다. 미국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우선 가장 큰 취약점이었던 영어 실력을 보강할 수 있었다. 골프도 배웠다. 내 호불호와 상관없이, 골프는 이후 PM으로 일하기 위해선 꼭 익혀야 할 운동이었다. 아이와 온전히 1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를 통해 아이와 충분히 소통하고 엄마 노릇 하고 싶다던 오랜 소망을 얼마간 이룰 수 있었다. 스탠포드대에서 닦은 인맥은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자산이 돼 주었다. 전혀 다른 사회에서의 경험이 내게 많은 아이디어와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정기적 운동과 여유있는 생활로 위태로웠던 건강을 다질 수 있었고,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3. 2008년 2월, 나는 미국에서 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의 대표적 CEO 10명의 이미지 분석과 경력 관리, 회사 발전을 위해 보강해야 할 취약점 등을 정리한 책이었다. 이 책의 출간은 내가 PM으로 자리잡는 데 구체적 발판이 돼 주었다. 이를 위해 나는 미국에서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 이론, CI전략에 대한 것 등 관련 서적을 모두 독파했다. 당장 읽기는 힘들지만 후에 도움이 될만한 현지 자료들도 많이 모았다. 역시 미국 연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에도 나는 2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냈다. 글쓰기에 대한 책, 여성 매니지먼트 안내서, 또 한 권의 인터뷰집, 역사적 인물과 현대의 인물을 비교 분석한 책, 각 대기업의 홍보 전략에 대한 분석서 등이었다. 내 책은 문학적 감수성과 날카로운 분석, 창의적 대안 제시가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개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책들의 인세 중 1%를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4. 2005년 겨울 이후 나는 ‘아름다운재단’의 글 쓰기, 홍보 관련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회보나 관련 잡지에 공짜 글을 써주는 정도였지만,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의 홍보 전략을 짜준다거나 책을 간행하는 등의 일에도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뜻 맞는 시민운동가들과의 협동작업은 내게 큰 보람을 주며 ‘없는 자’ 혹은 ‘변혁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는 ‘감’을 유지케 해 주는 원동력이 돼 주고 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5. 2006년 이후 나는 매년 두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한 번은 가족과 함께, 한 번은 혼자. 여행과 관련해선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호화여행을 했다는 게 아니라, 해외라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갔다는 뜻이다. 가족과 정을 나눌 수 있었고, 집과 일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으며, 다시 일에 매달릴 수 있는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었다.
특히 좋았던 건 혼자 떠난 여행들이었다. 낯선 도시와 나라를 떠돌며 자신과 깊이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는 나로선 그런 여행이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름의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을 극히 외로운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오히려 많은 것을 채워넣을 수 있었다.


6. 2010년 12월31일, 나는 중앙일보를 그만뒀다. 마흔 세 살 때였다. 중앙일보에 입사한 후 나는 미국 연수를 다녀왔고, 한 권의 책을 썼으며, 신문에 내 이름을 내세운 인터뷰를 연재했다. 또한 경제와 문화, 경제와 사회, 경제와 사람이 어우러진 류의 탁월한 몇몇 시리즈와 기획기사들을 통해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리더와 식자들이 최소한 이름은 아는 기자가 됐다.
기자로 일하며 나는 승진을 위해 아둥바둥하지 않았다. 그 보다는 독자의 신뢰와 인정을 받는 기자, 자기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 기자, 뭔가 남다른 기사를 쓰고 기획을 하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PM으로 활동할 기반을 닦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 덕분에 나는 내 기자생활 20년을 아름답고 당당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7. 2008년 9월,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PM으로 활동하기 위한 학문적 소양을 닦고 크래딧을 쌓기 위해서였다. 딱히 내 전공을 받아줄만한 교수가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가장 근접한 전공, 근접한 교수를 찾아 일단 입학했다. 2010년 2월 나는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강사로 초빙됐다. 2010년 1년 동안은 대학 강의와 신문사 일을 병행하느라 상당히 고생을 했다. 그 와중에 PM으로 첫 발을 내딛기 위한 구체적 준비도 마쳐야 했다. 그간 친분을 쌓아온 몇몇 CEO 및 예비 CEO, 정계 인사들과 PM 계약 혹은 홍보전략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학위, 기자로서의 명성, 저술 활동, 인적 네트워크 등이 큰 힘이 됐다.


8. 2012년이 되면서 내 사회적 경력은 제 궤도에 올라섰다. PM 활동과 각종 기고 및 저술, 강연, 대학 강의, 박사과정 공부, 방송 출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PM 일은 가장 핵심이 되는 클라이언트 3명과만 계약을 맺었고, 강연은 2주일에 1회, 글쓰기는 매일 2시간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사과정 공부와 방송 출연에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이후 내 이름을 건 라디오 인터뷰(혹은 자기개발) 프로그램의 MC가 될 수 있었고, 전문성과 크래딧을 더욱 배양할 수 있었다. 돈 보다 ‘준비’에 몰두했던 2012~2013년이 있었기에 내 40대 중반 이후의 삶이 안정과 성장을 누릴 수 있었음이다.


9. 사실 지난 10년간 내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어린 시절 아픈 기억들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었다. 2006년 3월 ‘꿈의 첫 페이지’ 모임에서 심리검사를 받았고, 전문가로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독선적이고 차가우며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는 인물이 돼 사회적으로도 실패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문제 해결은 내게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고, 자기 비하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편안하며 자유롭게 놔버릴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 영화 보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 둘로부터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다. 나만의 여행들도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에 애정을 갖는 훈련을 했으며, 특히 나 자신을 칭찬하고 사랑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못된 꿈들에 가위눌리지 않는다. 이전보다 훨씬 더 여유로우며 부드럽고, 자신과 가족을 조건 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10. PM이자 대학 교수, 저술가이자 방송인인 나는 지금 신체적 정신적을 건강하며 나 자신과 내 일, 내 가족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그간 내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사실 그건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 경제 상황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이다. 나는 규칙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됐다. 일과 휴식을 적절히 분배하며, 자신의 시간과 일을 스스로 컨트롤 할 줄 아는 이가 된 것이다. 허둥대는 생활로부터 벗어나 매일 일정 시간 명상하고 운동하며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큰 변화는 사람들과의 사귐에 있어 진정성이 배가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을 효용이 아닌,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됐다. 지금 내 곁에는 어떤 고민이라도 나누고,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지지가 되며, 같이 있으면 맘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친구 몇 명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차차 변모해가는 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며, 내일 파산하지 않을까, 모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삶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나는 아름답게 늙어갈 준비가 돼 있고 자신감에 차 있다. 스스로가 선한 사람임을 확신하며, 살아있는 동안 세상에 선한 에너지를 흩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평화롭게, 미련 없이, 웃는 얼굴로 이승을 떠날 것이다.

IP *.249.141.207

프로필 이미지
어부
2006.04.02 20:48:38 *.180.9.109
윈디님

훌륭한 프레지던트매너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워크샵중 내내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여성입니다.

알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6.04.02 22:42:12 *.116.34.126
이 글을 올리기가 왜 어려웠는 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정리했고, 이 '회고'처럼 10년이 지나 갈 것입니다.

다만 일상의 원칙 한 가지를 꼭 설정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 자정이 되면 나를 쉬게할 것이다. 자정은 신데렐라의 무도회에 걸린 아주 커다란 괘종시계다.

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
프로필 이미지
바람처럼
2006.04.02 23:14:15 *.86.45.12

꿈 프로그램동안 윈디님의 가득한 에너지와 솔직함을 보았습니다.
오늘의 '회고'처럼 살기에 충분한 기운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윈디님은 또 하나 과제가 있지요 ^^

2006년 3월 31일에 그리했던것처럼, 10년 후 3월의 마지막날
방송인 윈디는 '참깨'를 세상 밖으로 다시 불러내는 것...
프로필 이미지
홍승완
2006.04.02 23:31:21 *.147.17.87
내가 드리고 싶은 말은 두 단어입니다. 누구보다 누나가 더 잘 아는 단어일 겁니다.

열정과 결핍

넘쳐서 덜어 내야 할 때도 있고, 부족해서 채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넘치고 부족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균형을 잡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역동적으로 균형 잡기, 왠지 잘 어울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소정
2006.04.03 21:52:13 *.141.32.190
언니 드디어 올리셨군요!!

신체적 정신적 건강!! 최고 중요하다는 거 언니가 제일 잘 알죠??

꿈 프로그램 동안 언니의 이야기는 나를 울컥하게도 했고

감동시키기도 했어요. 너무, 동요했다고 할까요.

나도 언니처럼, 에너지를 긍적적인 방향으로 표출하고 싶어요.

다가서기 힘든 사람이지만. 나는 언니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참깨서포터
2006.05.20 01:30:33 *.140.43.66
프로그램 참가후 "열정과 결핍"을 주문해서 읽었습니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열정과 결핍에 나오는 인물들과 윈디님이 많은 점에서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꿈들은 어렵지 않게 현실이 되리라 의심지 않습니다. 약간의 여유를 가지면 더욱 내공이 깊어지시리라 생각이 드는 군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9 이야기 팩토리 - 두번째 보고서 file [4] <몽실이> 유현수 2005.12.26 3470
428 마음 알 알음(Version2) [11] 홍승완 2005.12.29 3617
427 조금씩 굵어지는 10대 풍광들 [2] <몽실이> 유현수 2005.12.31 3089
426 번개몽향 정중동의 10대 풍광 [5] 정중동 2006.01.01 3153
425 흐르는강의 10년 회상 [3] 김영훈 2006.01.01 3364
424 My Way(2.0) [10] <몽실이> 한상진 2006.01.02 3640
423 ------------>[re]060101 [2] 隱湖06년 2006.01.07 5709
422 나의 꿈을 향해 한걸음을 옮기다 [9] <꿈두레>박성은 2006.01.14 3982
421 추억은 힘이 없다구? 주홍빛 2006.01.15 3298
420 항상 혼란은 변화보다 앞에 나타난다. [8] <꿈두레>靑松 安貞彦 2006.01.18 3718
419 꿈과 함께 걸어온 10년을 돌아보며 [9] <꿈두레>최영훈 2006.01.18 3892
418 Bravo My Life! [15] <꿈두레>오병곤 2006.01.22 5883
417 나의 꿈 찾기 [9] <꿈두레> 이경우 2006.01.24 4463
416 질곡의 바다에서 풍요로운 삶을 낚아 올리다. [8] [꿈두레]김용균 2006.01.29 4090
415 ReVitalizer의 10년 - 2005년,2006년 [3] 예닮 2006.01.30 3636
414 자신의 구원은 스스로 말미암는다. [9] <꿈두레> 하나한 김성렬 2006.02.06 4327
413 나의 직업 나의 미래 version 2.1 [3] 박노진 2006.03.10 3913
412 꿈, 이미 이루어진 미래 [5] <참깨> 바람처럼 2006.03.24 3795
411 자유의 독수리. [7] <꿈두레> 明導 赫宰 2006.03.31 3871
» &lt;참깨&gt;10년 후.. [6] 윈디 2006.04.02 3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