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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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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09시 2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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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해라. 그 표정과 눈빛과 웃음을 기억해라. 좋은 말을 기억하고, 어깨에 얹혔던 손길을 기억해라. 함께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 가라. 배움만큼 기쁜 놀이가 없으며, 함께 사는 것 보다 웃음이 많은 것이 없다. ... 청태산 눈길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놀았던 것을 기억해라. 봄날 모래밭을 길게 걸어 웃음을 나누었던 일을 기억해라. 배고파 정신없이 먹었던 풋나물 점심을 기억해라. 특별한 하루가 곧 그대들의 삶이다.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가져라.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해라. 인색하지 마라. 졸렬해 지지도 마라. 서로에게 최상의 것을 주어라.

 

-2011년 연구원 봄소풍_ 학소대에서. 구본형-

 

 

 

내 나름의 의식이었습니다. 몇 년 전 숙소를 잡지 않고 떠난 졸업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옥계항과 소나무 숲속에 자리한 수련원을 기억합니다. 그땐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였지요. 장소가 마음에 들어 잠을 잘 수 있는지 물어 보았으나 단체 예약이 아니면 안된다던 그곳. 이번 봄소풍이 다시 그곳으로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아이를 데리고 가야했지만 마음을 굳혔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여행의 모습은 그만큼 매혹적인 끌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곳이라면 그분을 생각하기에 더 없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앞장서서 이야기하거나 노래 한자락 뽑는 재능이 없는 나였지만, 아이가 불어주는 힘을 받으며 봄소풍을 시작했습니다. 도로옆 반짝이는 햇살 속에 핀 벗나무, 앵두, 개나리 같은 꽃나무와 연둣빛 새싹을 바라보며 강원도 고갯길도 넘었습니다. 다른 세상에 온 듯이 눈발이 날렸습니다. 잠시 산책을 하기 위해 내린 청태산에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누군가는 눈을 던지고 누군가는 몸으로 눈을 녹이며 소리를 질러 댓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시원하게 웃었고, 정상에 올라 열을 지어 뛰었습니다. 유언장을 떠올리며 심란했던 이들이 제대로 된 점프샷을 찍으라는 성화에 수십번 점프를 해야만 했지요. 민호는 왜 거기 껴서 뛰는지,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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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장례식.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자리에 국화꽃 한다발과 매캐한 향, 붉은 초가 펼쳐졌습니다. 목이 매이는 회한과 설움, 담담함, 용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 죽음 앞에서 다시 살아보자.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장례식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는 어두움을 탈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와 난 누군가 선물해준 레고를 만들고 발차기를 하며 뛰어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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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회와 매운탕을 먹고 나니 밤바다가 걷고 싶어졌습니다. 무리지어 나선 길에서 아이를 잃고 말았습니다. 파도가 아이를 휩쓸어갔는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홀로 아이를 찾아 해매었지요. 너무 멀리 간것 같아 다시 돌아오던 길에 착한 누나의 손을 잡고 나타난 아이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해안길이 중간에 옆 둑방길로 이어졌음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아빠보다 이쁜 누나를 더 좋아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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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누구보다 늦게 자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빠, 빨리 일어나. 바닷가 가자."

더이상 잠을 청하기 어렵다는 것을 눈치챈 난, 주섬주섬 일어나 아이에게 겨울외투를 입히고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바다는 파랗게 물들고 구름 위로는 해가 붉게 물들었습니다. 동해안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과 인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이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승욱이 아저씨를 꼬셔 다시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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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일정을 마친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햇살과 파도를 맞습니다. 아이는 이쁜 누나 옆에 슬쩍 다가갑니다. 착한 누나는 아이의 놀이 욕구를 놓치지 않고 파도와 달리기 하기, 두꺼비 집짓기, 모래 놀이를 하며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바닷물에 신발을 적시고 나니 아이 발에서는 고린내가 납니다. 오죽헌 순두부집에서 밥을 먹으며 쨍쨍한 햇살에 오징어를 말리듯 신발을 말렸습니다. 고리낸는 구린내로 변했습니다. 양말이나마 갈아신기고 버스를 타고 오르니 아이와 누나는 끝없는 게임을 시작합니다. 뜻하지 않게 걸려든 주변의 희생양들(콩두님의 제보에 의해 희생양이 아니라 블랙홀로 정정)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가위바위보 하나빼기며, 369, 007빵 등 각종 놀이에 정신을 못차리다 쓰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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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시간을 기억합니다. 졸렬하지는 않았는지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우선은 여행의 큰 그림 속 작은 조각으로 만족합니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기뻤고 함께 웃고 먹고 마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이도 큰 행복감에 만족해 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에세이를 올리는 일이겠지요.

 

다음 여행에는 아이가 먼저 가자고 할 것 같습니다. 

  "이쁜 누나도 와?"

렇게 묻겠지요.

난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당연히 오지. 그런데 누나 아니고 이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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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5, 2014 *.209.223.59

단정하고 단단한 문장들이 양갱에게 아주 잘 어울리네요.

넘치지 않는데도 할 말을 다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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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5, 2014 *.156.195.154

ㅎㅎㅎ 우연히 참여한 글쓰기모임의 엠티 기운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둘러앉아 서로의 글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이 참 소중했습니다.

촌철살인 선배님의 한마디도 인상 깊었구요.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아직도 헤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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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7, 2014 *.30.254.29

좋아요...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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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8, 2014 *.115.32.2

누나라는 말을 들은 그 누구는 참 좋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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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5, 2014 *.254.196.23

봄소풍 에세이를 이제야 봤습니다.

그 때 찍혔던 사진이 어디엔가 있을텐데 하고 기웃거리다 찾았습니다.

기대보다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어 흐뭇하게 즐기다 갑니다. ^^


+ 민호 잘 지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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