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essay - 마음을 흩어버리는 소리

소리가 근심을 집어 삼키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부산의 태종대가 그랬습니다. 야근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일을 겪고는 다음날 휴가를 내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때 태종대의 자갈마당에서 자갈을 쓸고 들어왔다가 굴리는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도 그 말을 여러번 할만큼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얼마전에 집에 금붕어를 들여왔습니다. 산소 공급을 위해 어항에 기포발생기를 넣어주고서야 알았습니다. 소리가 무척 크다는 것을.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서 그 소리가 익숙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소리가 제 생각을 잡아 먹는 것을 느낍니다. 이 소리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아마도 불규칙적이고 짧은, 다양한 회색의 선들이 종이가득 엉켜있는 것일 겁니다. 만일 이런 그림을 보면 미술관에서 보게되면 저는 멀리서 보다가 가까이서 보다가 선 하나를 눈으로 쫒다가 그러다가 길을 잃을 겁니다. 그러다가는 또 대체 이게 뭘까를 잠깐 생각하다가 그런 생각은 금새 닫히고, 아무것도 없는 것같이 멍해지겠지요.

지금 방안에서 부서지는 공기방울의 요란한 소리가 제 생각들을 잘게 부스고 있습니다. 저음의 자잘한 소리. 입으로 흉내 내려해도 흉내내지지 않는 잡음. 이런 걸 백색소음이라고 하나요. 온갖 주파수의 잡음들이 다 뒤섞여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말입니다. 옛날 TV 로터리로 채널을 맞출 때, 방송이 나오지 안는 번호를 틀었을 때, 혹은 방송이 모두 끝나고 보게 되는 그 화면, 그리고 그때의 잡음. 과학을 다루는 웹진에서 본 듯 한데, 이런 소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더군요. 잠이 잘 오게 하는 소음이라나 뭐라나 뭐 그런 거라고. 굉장한 소음이지만 방향성이 없고, 특정 주파수가 크지도 않고, 다른 것을 돕지도 않는 소리. 우리 소리를 좋아하는 분 중에 어떤 분은 판소리에서 내지른뒤에 떨림으로 이어지는 이런 소리를 풀어내는 소리라고도 하더군요. 폭포가 쏟아진 후에 아래에서 물이 부서질 때 깥은 잡음같은 흥얼거림이라고.

저는 지금 이 소리 때문에 생각이 자꾸 흩어집니다. 이러면 안되는 데, 자꾸 마음이 편안해 지네요.

물가에 살면 기를 빼앗기고, 물은 마음을 홀린다고들 하던데 이것도 그런 걸까요? 혹시 근심이 있으시면 물이 부서지는 곳에 가보시면 어떨까요. 혼란스러운 것들을 싹쓸어가버릴지도 모릅니다. 파도가 조용히 밀려왔다가 부서지는 바닷가, 혹은 폭포가 부서지는 곳, 물이 돌돌돌돌 흐르는 곳.

* 한해동안 같이해주시고 소통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로 이미지에세이를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이미지에세이에서 '꿈과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겠다고 약속했지만 매번 열심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내년에도 계속하겠는가라는 것에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림 하나와 글 하나로 소통하는 것은 계속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마음은 제 관심사가 옮겨가는 것에 따라서 새로운 샘을 하나 파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누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새해, 새출발을 이야기하는 시점인 내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주제를 다루면 좋겠지만 저는 그런 준비 또한 되어 있지 않습니다. 2월까지는 지금의 주제를 정리하고 3월부터는 새로운 샘을 하나 파고 싶습니다. 다음해에 뵙겠습니다.

올 한해 글을 읽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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