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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5일 00시 0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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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끝나고 무대의 장막이 걷혔다. 관객석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텅빈 무대 위에 홀로 선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배우였으리라. 다만 주어진 배역과 암기해야 할 대본을 잃어버렸을 뿐. 마음의 위안이 될 만한 그 어떤 의상도 소도구도 없이, 그저 영문도 어찌할 바도 모른 채, 몸둘 곳 하나 없는 그 곳에 혼자 서있다.

*

무대 세트가 무너질 때가 있다. 출근하고, 일하고, 밥 먹고, 퇴근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무너진 벽 틈새로 황량한 가벽과 앙상한 골조를 엿보게 되는 때. 한껏 분칠한 얼굴로 웃고 잡담하며 시간을 죽이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벌버둥치다, 혹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아닌 밤 홍두깨처럼 무너진 벽 뒷편을 보게 될 때. 그래, 너도 본 게구나. 그렇지만 지금의 난 너를 위로할 말 한마디 가지고 있지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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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배빗’의 엔딩에서 배빗은 아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평생동안 난 내가 원하는 일을 단 한 가지도 해보지 못했다! 그냥 시류를 타고 흘러가는 것 외에 뭘 성취했는지 모르겠어. 5미터 중에서 0.5센티미터쯤 앞으로 나아갔을까?” 

실존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게 이렇게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늘상 불안한 존재인 우리는 그저 남들만큼이라도 살기 위해 옆사람들을 쉼없이 곁눈질하고, 별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로 잡답을 나눔으로 친교를 쌓고, 일상을 심심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온갖 ‘시간 죽이기’들로 채위 나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달복달하며 도달한 그 곳이 고작 배빗이 깨닫게 된 그 지점이라면, 거 참 안타까운 노릇이네요. 한 '0.5센티미터 쯤 나아간 지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인생이라면 말이죠.

하이데거는 이처럼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따라가는 삶을 ‘본래적 삶(진정한 삶)’과 반대의 의미로 ‘비본래적 삶’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비본래적 삶’ 속에서 아주 가끔 자신이 어떤 연극 무대의 소품임을, 어떤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황급히 원래의 궤도로 되돌아가는 게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가 무대나 시스템 밖으로 나가겠다는 용기있는 결심을 하게 된다면, 길이 없는 길을 걷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품는다면 그 때서야 비로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겠죠. 그 이야기의 시작에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유명한 첫구절이 어울릴 듯 합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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