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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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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2일 22시 46분 등록

S_나르시시와 부모.jpg

<태어나서 6년 4개월>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목동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요정들에게 구애를 받지만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를 몰래 바라보던 에코도 그 요정들 중 하나였답니다.

에코는 헤라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지요.

나르시스는 다가오는 에코에게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라고 소리쳤고, 에코의 대답은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뿐이었습니다.

나르시스도 사랑에 빠지지만 대상은 호숫가에 비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한없이 바라보다가 다가가면 사라지고, 다시 기다리면 나타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르시스에게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기조차 거부하고 호숫가 옆에서 죽었다거나 물 속으로 들어가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narcissus)라지요.

 

부모의 마음으로 나르시스와 에코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봅니다.

처음에 아이는 세상과 자신의 구분이 없습니다. '나'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거지요.

그때 부모가 나타납니다. 마치 나르시스가 호숫속 자신의 모습을 보듯이 부모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부모는 세상 자체 입니다.

부모를 믿을 수 없으면, 세상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부모가 슬프면 슬픔을 느끼고, 기쁘면 기쁨을 느낍니다.

부모의 행동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아이는 에코처럼 자신의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저 부모의 말을 따라할 뿐입니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사라해"라고 말하고, "미워!"하면 "미어"합니다. 마치 메아리처럼.

그렇게 몇 년동안 밀착된 관계 속에서 서서히 나와 타인을 구분하게 됩니다.

애초에 부모가 없었으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부모가 기준이 됩니다.

 

수선화는 순수한 아이를 상징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고,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를 따라하는 메아리입니다.

다시 읽는 '나르시스'는 목동이 아니고, '에코'는 요정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이'입니다.

이 신화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다행히 현실 속의 아이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갑니다.

부모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르시스와 에코의 안타까운 죽음은 부모에게 먹먹한 슬픔을 전합니다.

'나라는 거울이 깨끗한가. 나의 목소리는 어떠한가? 나의 언어는 어떠한가?' 되돌아 보게 합니다.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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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7, 2012 *.10.140.115

오늘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수업"을 처음 들었습니다.

더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직 좋은 아버지도 되지 못하였기에 늘 고민이지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내용의

 

어떤 시가 생각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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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수업을 들으셨군요.

저도 기회를 만들어 들어볼 생각입니다.

 

그 시의 내용이 정확히 제가 하려는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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