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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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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1일 09시 0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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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사랑했던 것일까. 새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간다. 투명한 탄산수처럼 톡 쏘는 바람 한줄기가 목덜미를 스치던 어느 초여름, 나는 미처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너를 사랑한다 말했지. 팔꿈치와 팔꿈치가 맞닿고, 처음으로 따뜻한 네 손을 잡은 그날, 우린 서툰 몸짓으로 서로를 껴안았네. 네 입술에선 생전 맛보지 못한 향긋하고 도톰한 과일 맛이 났다.    


사랑이란 것이 서툴기만 했던 우리는 늘 부딪히기만 했구나. 무심코 가슴팍을 퍽 치고 지나가는 거친 행인들처럼 무신경하게, 그렇게 서로를 할퀴며 상채기를 내고. 난 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네 정강이의 시퍼런 멍망울은 눈치채지도 못한 채, 무작정 사랑한다고 말했구나.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는 막무가내 식의 투박하고 서툰 열정에 너는 수시로 목이 메였겠구나. 켁켁, 가느다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불편했을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을텐데.  그런 걱정 따위 개에게나 줘버렸으면 좋았을텐테, 왜 그러지 못했을까. 우리에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을까. 사랑이란 건 원래 그렇게 낯설고 서툰 것인데, 그 어디에 정답이라도 있는 모양, 어설프게 다른 사람들 흉내를 내며 눈부신 여름을 허비했구나.  


여름에서 가을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네. 가소롭게도 어렸던 우리는 마치 어른이 된 듯 비겁하게 사랑을 나눴고, 짐짓 쿨하게 이별의 포즈를 취했지. 아직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렇게 보잘것 없고 서러운 어른이 되어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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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끝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분석해보자했던 이번 챕터는 사실, 2회 전에 벌써 끝을 맺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장이 끝나면 실제로 제 몸을 움직여서 그 경계의 안과 밖을 더듬어 나가야 하니가요.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깟 직장 때려치우고 만다’고 이야기만 한채 벌써 여름이 다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네요.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인데, 마치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하는 철학자들처럼, 천년 만년 살것처럼 내일을 걱정하는 애늙은이처럼 말입니다.


오는 가을이 되면 비겁했던 풋사랑을 떠나보내듯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합니다. 직장이란 사회의 학교에서 한 10년 남들 흉내 내면서 살았으니, 이제 스스로 제 불쌍한 영혼에 걸맞는 자신만의 몸짓과 스타일을 찾아 나서보려 합니다. 사랑이 언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에 우리 가슴 속에 ‘포르르’ 날아 들어오는 듯, 저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또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랑이란 누구에게나 낯설고 서툰 것이란 사실을 이제 겨우 알았으니, 다른 사람의 흉내 따윈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마르크스가 경제 철학 초고에서 말하듯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인간을 인간으로서,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등으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돈으로 인간을, 돈으로 사랑을, 돈으로 신뢰를 포함한 그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모든 만남과 나눔이 서로에게 찬란한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라고 그도 고백했듯이, ‘우리는 과연 사랑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각자의 노력과는 별개인 채 냉엄한 현실로 남겨져 있지만 말입니다. 끝으로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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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11


** “인간을 인간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어야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에 대한 - 그리고 자연에 대한 -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그대의 현실적,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서의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 칼 마르크스, 경제 철학 초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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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3, 2012 *.10.140.31

경계를 넘어서는 용기를 얻게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그 길이 아무도 가지 않았던 그 길이기에

평탄하리라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길을 나섰다는 사실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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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2012 *.229.131.221

글은 잔뜩 힘을 주고 써놓고선,

일상은 그에 걸맞지 않게, 한마디로 멘붕 상태였습니다.


작년에 회사에서 받았던 충격이 있었던지라

어느정도 면역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참 못된 놈들이 많네요. 


(자기들이 미처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는 것이겠죠. 

마치 직장 속에 있을 때의 저처럼 말입니다.) 


일단, 길을 나서기로 했으니 열심히 가보겠습니다. 

불행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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