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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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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6일 14시 3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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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화로 세상을 배웠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실제 삶에서 배워나가는 것이 아닌, 만화로 세상을 배웠다니 참 재미없는 말이긴 하지만, 제가 무언가를 처음 접하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만화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림도 좋아하고 이야기도 좋아하기 때문에 2가지가 다 들어있는 만화를 오랫동안 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만화 속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소재인 연애심리, 임진왜란 이후의 생활상, 동물의 습성, 기계의 발명, 신의 속성,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가지 죄악, 가사가 좋은 기타 명곡 같은 것들을 단편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궁금해지면 더 찾아보거나, 나중에 다른 것에서 본 것들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만화를 보다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입니다. 한마디로 만화가의 머리 속을 한번 보고 싶다는 거죠. 만화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모습, 인간의 모습 등을 구성하여 이야기로 담은 것이기에 작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저의 이런 질문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아이템이 <지구에서 영업중>이란 만화 속에 등장했는데, 그건 안경이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는 특수한 안경으로 등장했습니다.  만화 속에서 작가를 대신하는 사람이 사람마다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본다면 르느와르의 빵같이 부르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나 에곤 쉴레의 장작개비처럼 깡마르고 강인한 인상의 사람의 드로잉, 고흐의 이글거리는 듯한 들판 그림은 어떻게 된거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보는 방식으로 그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고. 그러니 그 사람이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면 상대의 자신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거라 설득합니다. 상대에게 한번 쓰게 하고 그걸 받아서 쓰고 거울을 보라고. 저도 그런 안경 있다면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전환에 의해 멀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재미날 것 같습니다. 꿈그림을 그릴 때는 유용할 겁니다.

 

저는 사람을 그리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떻게 봐야 하는지 책을 보고 배웠지만 잊어버렸습니다. 화실에서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지만 그말을 잘 못 알아듣고, 또 그때 알아들었다 해도 그건 금새 잊어버리고 다시 어려움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아직도 제 방식이 안 되는 거죠. 제 눈엔 진짜 이렇게 사람이 보이냐구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화가는 도대체 무엇을 실험하고, 왜 자연 앞에 앉아서 자기 능력을 다해 그것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이러하다. 화가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단순한 요구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561쪽에서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는 책의 후반부 20세기 전반기를 다루는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그렸고, 중세 사람들도 그들이 본 것이 아니라 도식적인 형태를 사용했고, 본 것을 그린다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인상주의가 본 것을 그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조차도 일부일 뿐이라고 곰브리치는 말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믿음)에 의해 형상이 잡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천 가지 보는 방법 중에 일부를 선택해서 봅니다. 만화 <지구에서 영업중>에서 아이템 설명자가 말한 것처럼 극명하게 보는 것이 아닐지라도 하여간 일부는 선택해서 보고, 또 그중에 일부를 선택해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방식대로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이번에 제가 그린 사람들은 화실의 선생님께서 가르쳐준 방식과 만화가들이 선택한 방식, 어린아이의 방식 등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매번 꿈그림을 그릴 때 어떤 방식으로 그려야 할지 선택을 합니다. 그꿈의 분위기에 맞게 하기도하고, 꿈그림 의뢰인의 취향을 고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릴 당시에 접했던 다른 이미지의 분위기나 방식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표현 기술의 한계를 문제로 구현이 가능한 범위에서 절충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제 욕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만화를 볼 때 많이 품었던 의문, '이 사람은 진짜 이렇게 생각하는거야?'라는 의문을 제게 적용했을 때 '그렇다'라고 대답할만한 것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림은 현실의 반영이다',  '그림은 연출이다', '그림은 구상이다', '그림은 추상이다'라고 하는 말들이 품은 모순을 풀어내는 나름대로의 답을 찾고 싶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답인 나만의 사람, 나만의 나무를 넣은 꿈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나만의'란 수식어가 붙는 것을 갖고 싶은 이 카다랗고 무리한 욕심은 어디서 부터 생긴거냐구요? 글쎄요. 세상에서 배운 게 아니라 만화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배운 게 아닐까 합니다. 작가들이 직설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컨텐츠를 접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가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현실과는 조금 다른 뭔가를 뼈를 주고 살을 주어서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하나의 캐릭터, 하나의 그림, 하나의 이야기. 그런 것이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면, 이전의 세계와 새로 만들어진 조그만 세계가 공존하거나, 혹은 그 순간부터는 이전과 다른 세계가 됩니다. 이렇게 세상을 조금 바꾸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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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8, 2012 *.10.140.146

어느해 소풍에선가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만화를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 했던 적이 기억나는군요.

만화에 대하여 일가견이 느껴진 시간이었는데

만화에서 많은 것을 배우셨다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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