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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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는 나
이시하
어릴 적 나는,
오동통했고 샘이 많았고 말을 썩 잘 지어냈고 식탐이 있었고 질투가 심했고 가끔 고아였음 싶었고 산을 잘 탔고 산딸기나 보리수를 따러 다녔고 반딧불일 병에 가두었고 대싸리 숲에서 숨바꼭질을 했고 남의 집 돼지감자를 캐 먹었고 우리 집 포도를 훔친 친구를 때려 줬고 자치기 훼방 놓고 단방구 하자며 꼬여 냈고 썰매 타기에서 일등을 먹었고 스케이트 가진 친구가 부러웠고 성탄절 새벽송을 돌았고 여름성경학교 때 서울서 온 대학생 오빠들을 좋아했고 24색 왕자표 크레파스가 갖고 싶었고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싶었고 바나나를 꼭 먹어 봐야지 했었고
마흔의 나는,
기깔나게 멋진 사랑 한번 못 해본 걸 후회하고 결혼한 걸 후회하고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고 수줍음 많은 걸 후회하고 돈 못 버는 걸 후회하고 말 잘 못하는 걸 후회하고 잘 속는 걸 후회하고 잘 믿는 걸 후회하고 춤 못 추는 걸 후회하고 노래 못하는 걸 후회하고 공부 많이 못 한 걸 후회하고 시댁 식구가 단출했으면 후회하고 형제들이 부자여서 힘겨울 때 기댈 수 있었으면 후회하고 마당이 없는 집을 후회하고 꽃나무를 잘 키우지 못하는 걸 후회하고 글을 폼 나게 못 쓰는 걸 후회하고 아직 시인이 못 되었는데 시인 소리 들을 때 후회하고 그래도 시를 쓰는 나를 후회하고 후회하며 사는 나를 자꾸 후회하고,
오늘은 또 이렇게 후회한 걸 후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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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어서 마음도 흔들린다 합리화하고 못된 행동 보아도 나한테만 아니면 된다 합리화하고 같이 뒷담화하면서 먼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라고 합리화하고 책 한 줄 안 읽으면서 책 사두었다 합리화하고 꾸준히 하지 못함도 여건탓하며 합리화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스승님 뜻이라고 합리화하고
돌아서 가버려도 쿨하다 합리화하고 소식 한번 전하지 않아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합리화하고 쓸데없는 질투도 사랑의 힘이라 합리화하고 홀린 듯 마음주고 신의 한 수라 합리화하고 내 마음 나도 모르면서 그리움이라 합리화하고 오버한 행동 본능이다 합리화하고 합리화하고 합리화하며 또 합리화해도 합리화되지 않는 나는 이렇게 또 합리화하고
하루 종일 바람 세차게 불어도 덜컹거리며 뒹구는 낙엽 같은 내 마음 쓸어가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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