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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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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0일 20시 23분 등록
아내는 2년 전 부터 날 보고 홍길동이라 부른다. 상선의 선장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닐 때도 그런 별명은 없었는데, 땅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다음에는 홍길동이라 부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의미다.

육상으로 터전을 옮겨 처음 맡은 일이 선박 건조 감독이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선박은 한 자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각 조각으로 나뉘어진 레고 블록 같은 각 부분들이 여러 지역에서 분산되어 만들어지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한 곳에 집결되어 한 척의 배를 형성한다. 이런 조각은 배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200 ~ 300 여 개에 달한다. 경우에 따라 중국 같은 외국에서 일정 부분을 만들어 오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파견지였던 울산 사무실은 출퇴근 장소였고, 숙소가 그 곳에 있었을 뿐 출장 검사를 다니느라 전국을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아내가 안부차 전화를 하면, 아침에 포항 간다 했는데, 오후에 보니 경주다. 경주인가 했더니 어느새 온산에서 검사중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산의 집에는 못들리면서 부산의 어느 공단에 와 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아내는 "홍길동 아저씨 지금은 어디세요?" 라며 내 위치를 확인하는 말로 전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산으로 근무처를 옮긴 후 한 동안은 '홍길동'이 아니라 '함흥차사'로 살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언제 퇴근할 지 모르는 탓이었다. 주로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업무 특성에 기인한 바 컸고, 간혹 한가할 때는 개인적인 약속들이 그 시간을 채웠다. 그러다 지금의 팀으로 옮기게 되면서 다시 홍길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팀으로 옮길 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된 일이라 커뮤니티에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가 초아 샘 한테 한 소리 얻어 먹었다 ㅋㅋ)

전 세계를 운항하는 우리 회사 선박들을 관리하는 것이 현재의 업무이고, 모든 이상 상황시 1차 보고를 접수하는 일과 한국에 입항하는 선박들을 방문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홍길동으로 살 수 밖에... 다행인 것은 내가 현장형 적성을 가지고 있고, 심리유형상으로도 이런 업무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다 좋을 수는 없어서 개인적인 일정을 잡기가 참 난감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운항하는 선박들이다보니 24시간이 다 근무시간인 셈이고, 특별히 주말을 계획하기 곤란해진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격주로 일명 "놀토"에 하는 작은 봉사도 차질을 빚을 경우가 있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여기다가 개인사에 발생하는 돌발상황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홍길동'이라도 기절하기 일보직전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제(29일) 경주 건천에서 있었던 영남함성 모임 때문이다. 구선생님의 얼굴을 처음 볼 수 있는 기회였고, 회원들의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싶었지만 결국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은 너무 컸다.

독서 토론의 주제였던 운제 선생님 책을 읽으며 회원들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고, 구선생님을 알게 한 책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다시 챙기며 친필 서명을 받을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여러가지 일정이 얽혀 있었지만 얼굴에 철판깔고 다 정리하였었다. 전 날 늦게까지 업무 정리를 하면서 토요일에 발생하는 일은 모조리 남에게 떠 넘기겠다는 야무진(?) 결심도 했더랬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선생님이 KTX 하행선으로 동대구역에 도착하던 그 시간, 나는 상행선 KTX로 동대구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했던가. 인간적인 노력과 준비에도 불구하고 내 뜻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친구의 부친상은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되었다. 부산역을 출발한 KTX 열차가 동대구역을 지날 때 까지도 섭섭한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회장님께 문자를 보내 안부를 전했더니, 사부님 기다리고 계시던 회장님 바로 전화를 주시더군요.(감사했습니다 회장님 ㅋ)

하지만 광명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안산 고대 병원을 찾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오늘 이 시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 곳이구나'

괜한 너스레를 떨며, 특유의 미소로 나를 맞는 친구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네가 왔구나 친구, 네가 왔구나...' 하는 작은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부모를 일찍 보내며 경험했던 바, 꼭 와야 할 사람은 마음 한 켠 정해져 있는 법 아니던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귀한 만남이 아쉬웠지만, 돌아오는 하행선 KTX 안에서 나는 온전히 하루를 살았다는 느낌이었다.

현재 홍길동은 긴급한 일을 다루는 업무로 질식 일보 직전이다. 이번 주만 하더라도 주 초에는 급한 사고 처리 때문에 대만을 다녀와야 했고, 주중에는 싱가폴에서 발생한 사고를 처리하느라 새벽을 깨웠다. 주말이 될 때 까지 이 일은 진행 중이었고, 다음 주에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 새벽에 사고처리를 하고 들어가더라도 아침에는 가장 빨리 출근하는 직원이 될 것이고, 버스 안에서는 한 줄이라도 책을 읽을 것이다. 퇴근시간 즈음 파김치가 되어 쉬고 싶더라도 사이버 강의 한꼭지를 듣고야 말 것이다. 주말, 잠이 유혹하고 따뜻한 봄이 나들이를 보채더라도 작은 봉사를 실천할 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지쳐있지만 생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힘들 때면 홍길동은 '번쩍' 이 곳을 들러 에너지를 무단 충전해 갈 것이다.

* 이런 저런 생각으로 중언부언 글을 남깁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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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희 근
2008.03.30 22:19:32 *.115.176.56
샬롬!
형산님의 글이 마음에 딱 들어 붙어 버렸습니다.
그랬군요.
동대구역에서 문자를 받고 다시 전화하면서 아위움을 달랬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사부님을 뵙곤 제일 먼저 형산님의 말씀을 올렸지요.
어젠 참 좋았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많이 웃었더랬습니다.
제 2의 써니도 탄생했구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사부님께서 영남권 모임이 이정도로 좋으면 자주 오시겠다고 하셨구요.
4기 연구원 중 한분은 대한민국의 중심은 서울이 아니라 바로 여기라고 했답니다.
좋은 기회가 자주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종종 소식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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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31 03:55:19 *.36.210.80
시작은 치열하게 찾아 행하시더라도 일일신 우일신 하시어 힘겨운 노력이 날마다 즐거운 놀이로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아우님을 보지 못해 못내 서운함을 금치 못하였으나, 이토록 열심히 생활에 임하신다고 하니 아쉬움보다 자랑스런 마음이 더 앞섭니다. 아직 누이 자격이 없어 때를 기다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허나 난데 없는 영남 써니가 신출귀몰하게도 나타나 기절초풍시키는 바람에 이내 아우님에 대한 야속함을 까맣게 잊어버렸더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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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8.03.31 07:53:34 *.246.146.170
출근하여 전세계 바다를 한바퀴 돌고나서(?) 이 곳에 들렀습니다. 반가운 두분이 계시는군요. 영남 모임 후기도 있고... 누님과 구선생님 만날 생각에 마음 설레던 한 주는 꿈결처럼 지나갔네요.

영남 써니는 누군지 말씀 안해도 알 것 같습니다. 외향형 에너지 폴폴하던 그 분이시겠지요. ㅋㅋ 눈에 선합니다.

하나 하나는 힘이 없지만 서로 기대어 강풍을 이겨내는 갈대들 처럼 우리는 늘 부러지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겠지요.

기회가 곧 닿을 거라 여깁니다. 다음 모임의 토론 주제를 보면서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어제 주문한 책이라서 말이죠ㅋㅋ 결국 우리는 오갈 데 없는 '중독자' 들인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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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3.31 10:22:44 *.128.229.69

다시 건강한 힘이 네 속으로 들어가 활력으로 가득차 보이는구나.
그것이 천직의 묘미다.

다른 사람을 돕는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명심해야한다.

* 전문가는 쉬지않고 배워야 한다. 배움이 부족하면 결국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사람을 오도하게되니 시시한 선동가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게으르지 마라. 배움에 배고파야한다.

* 모든 전문가는 Code of Ethics 가 있다. 전문가의 윤리규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전문성이 있어도 직업관과 가치관이 흐리면 또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늘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이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신뢰란 다른 사람이 줄 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형산에게 올 봄 꽃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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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8.03.31 13:13:42 *.246.146.170
아....

사부님 감사합니다. 댓글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쉬지 않고 배우겠습니다.

신뢰를 주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살겠습니다.


부산에서 형산 최금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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