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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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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0일 17시 53분 등록
도움이 왜곡될 때
어긋남을 위로 받고자 할 때
벗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순결해서가 아니고 잘나서는 더욱 아니랍니다.
편들어 위로 할 줄 몰라서도 아닙니다.


잘 들여다보세요.
모르는 것이 아니고 옳게 행하려 하지 않음이 그대들 속에 있음을요.
남을 팔아 동조를 얻지 마세요.


자꾸만 물귀신처럼 끌어 들여
함께 죽자고 꼬시지 마세요.
그대들의 외로움, 찬 물로 씻고 뼈를 깎듯 진심어린 대화로 나누세요.


아직은
눈치를 보며 희망을 찾을 때
아직은 몹시 괴로울 때


상갓집도 같이 가고
공부하러도 같이 가고
술 먹으러도 같이 가고


그렇게 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해야죠.
상처가 상처로 싸우면 점점 힘을 잃죠.
끈끈한 연인처럼 같이 붙어 다니세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함께 있어도 불안할 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때는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 데
분노 때문에 속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어야죠.


자기편을 만들겠다는 심사로
혹을 달고 다니면서 대신 말하게 하지 마세요.
앵무새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해요.


아플 때에는 병이 나서 아프다고 호소하세요.
설명은 필요치 않아요.
그저 같이 있게 되면 다소 해소 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가끔씩은
세상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정당하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설령 누군가 다른 이웃이 핀잔을 주더라도
강하고 굳세게 버티어 설 두 다리의 힘이 필요해요.


두 눈을 부릅뜨고
썅! 소리를 내서라도
양 어깨에 힘을 주고 독하게 살아내야 할 때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쁠까요?
우스울까요?
누구에게요?


돕는다는 것이 참으로
별것이 아닌데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좋은 기운의 상생이란
좋은 어울림 속에 참여하며 함께 있는 것
좋은 것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숨을 쉬는 것


결과보다 과정이
역사보다 오늘이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입니다.





IP *.36.2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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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1 08:23:38 *.244.220.254
"남을 팔아 동조를 얻지 마세요."
이건 글쓰기에도 해당되겠죠? 좀 예민한 부분이긴한데~
화려한 묘사와 아름다운 문구도 좋지만, 누님의 솔직함이 좋습니다.
P.S : 그런데 제가 제대로는 이해는 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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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11 09:10:18 *.36.210.80
거암은 확인사살을 요하시나요? 동심으로 호기심이 많으시군요.

가수 최진희의 노래 중에 '꼬마 인형'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그 노래 가사가 예뻐서 나도 배우려고 했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노래가 사실은 불륜사이를 노래한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니 노래는 이쁜데 반해 속설이 쫌 그랬겠죠? 어느날 모 방송인이 가수 최진희씨에게 물었지요. 진짜 불륜을 노래한 것이었더냐? 꼭 묻고 싶었다. 그랬더니 그 가수왈 그냥 노래일 뿐이다. 각자 저마다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며 부르면 되는 것이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느냐가 그리 중요할 것 같지 않다라고요.

저는 아직 균형잡힌 글쓰기가 모자라지만 어떤 장면을 보거나 느꼈을 때 글을 쓰게 되기도 하지요. 해석은 각자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아요. 우리는 같아지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안닌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닌 것을 긴 것처럼 우기거나 긴 것을 아닌 것으로 위장하는 것쯤도 가려낼 수 있어야겠지요.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의 경계란 때로는 참으로 모호한 똥색인가봐요. 잘 헤치면 된장이나 청국장이 되고 안 그러면 똥통에 빠질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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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1 09:17:52 *.244.220.254
이해가 될듯 말듯 하네요~
모든 것에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다는 견해에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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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11 09:49:53 *.36.210.80
어쩌면 여명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아직 동이 트기 전 뿌연 상태, 결과를 도출해 내기까지의 과정, 순간의 오해가 있을 때는 달래며 가야한다고도 생각해요. 주장만 하다보면 제 꼴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삶에서 글쓰기든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실적이든 경쟁이든 힘들 때가 있게 마련이지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근원지에서 승복하고 죽으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지요. 그러면 감기가 암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전염까지 일으키게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겠죠.

그럴 때 나 감기에 걸렸어요. 도와 주세요. 피해주세요. 쉴래요. 하면 안 될까요? 어른 들은 공연히 성숙이라는 잣대에 갇혀서 염증을 가리려다 동심의 맑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덧내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까요?

아픔을 아프다고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호소할 수 있고 어렵게 느껴지고 안 되는 것을 소리칠 수 있어야 경쟁에서 승리자들뿐만이 아니라 진정하게 숨은 참여자들도 존중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우수한 5% 혹은 20%만 중요할까요. 묵묵히 일한 80%의 소중한 자원은 방치해도 될까요? 그들의 희생과 헌신없는 단지 우월한 그대들만의 성과였을까요? 나는 이들의 공로도 충분히 보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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