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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05시 06분 등록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 못했다.”
싱클레어 루이스<바비트>의 마지막 구절( 신화의 힘 p221)

에피소드 1

금요일 밤이다.
브롱크스빌의 한 대학에서 신화를 가르치는 나는
힘든 일주일의 여정이 끝나고 나른한 휴식이 그리워지는 금요일 저녁이면
TGI Friday를 외치며 다운타운에 있는 맛잇는 식당으로 간다.
브롱크스빌 음식점들은 금요일만 되면 저녁을 먹으러 온 가족들로 붐빈다.
오늘도 나는 여늬 때처럼 비틀즈 가 20번지에 위치한 한 음식점을 찾았다.
마침 내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아있다.
아버지, 어머니, 열 두어 살 된 아들이다.
가만히 듣자 하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그 토마토 주스를 다 마시거라.’
‘마시고 싶지 않아요.’
‘그건 네 몫이잖니, 남기지 마라.’
‘마시고 싶지 않은걸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진다. 목소리에 노기가 깔렸다.
‘네 몫의 주스라니까!’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 아이의 역성을 든다.
‘먹기 싫다는데 왜 그래요. 얘야, 싫으면 마시지 말아라.;
이 말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 순간 묘하게 일그러진다.
‘저 좋은 것만 하고 어떻게 살어. 그렇게 살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지.
나를 봐, 나는 하고 싶은 걸 평생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구.’;
오랜만의 외식이 토마토주스 한 잔에 엉망이 된다.
그 가족, 특히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 연민이 고인다.
세상에, 여기 바비트의 화신이 또 있었군.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고, 저 녀석 역시 아버지의 전철을 밟겠지.
한번도 자기의 천복을 좇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살게 되겠지.

에피소드 2

아빠와 6살짜리 딸, TV를 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아메리카를 여행하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해지는 저녁
숙소에 몰려들어 왁자지껄 자전거를 손보고 있다.
형형색색의 12단 기어의 자전거들에 눈길을 주며 딸이 말한다.
‘아빠, 자전거 사줘.’
‘그래.’
딸, 냉큼 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들고 나온다.
‘아빠 빨리 가자.’
의아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아빠,
‘왜 그래?’
‘아빠가 자전거 사준다면서?’
‘으응, 나중에.’

몇 일 후 다시 둘은 TV 앞에 있다.
이번엔 아름다운 남미의 호수와 그곳의 원주민들의 모습이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기 아름답지, 티티카카 호수라는 곳이야, 아빠가 널 데려가 줄게.’
딸, 방으로 쪼로록 달려가 코트와 모자를 쓰고 나온다.
‘아빠 빨리 가자.’
코트와 모자를 벗기고 아이를 소파에 앉히며 아빠는 말한다.
‘응, 지금이 아니고 이 다음에.’

아이들에겐 오직 ‘지금’만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
그 애들의 뇌세포엔 나중이란 말이 아직 입력되어 있지 않다.
‘자전거 사줄게’라는 말이 ‘돈이 생기면 그 때 가서 사줄게’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말이란 것을 그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에겐 ‘이 다음에’라는 말은 그들과 꿈 사이에 가로놓인,
악어 떼 득실거리는 강의 이름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이는 커가면서 그 ‘이 다음에’의 질문이 참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음에 언제 식사 한 번 해요.’, ‘다음엔 꼭 시간을 내볼게요.’, ‘다음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해두면 자신마저 살짝 속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다음에는 결코 오지 않는 시간이란 걸,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몰래 알고 있다. 어른이 된 우리들은 내가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시간이 나면, 우리 애 뒷바라지가 끝나면…’

시간은 젖은 물고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간다.
그리고 그 나중은 평생 오지 않는다.

에피소드 3

나의 이름은 세바스티앙이다. 나는 프랑스 출신이고 34살이다.
직업은 의사이고, 하는 일은 힐링 터치(healing touch)다.
힐링 터치, 말 그대로 손으로 사람들을 치유한다.
꿈이 나를 향해 오도록 유혹할 만한 매력이 나에게 있는가.
꿈을 선언하는 것은 우편물을 발송하는 것과 같다. 원하는 것을 선명하게 그리고 종이 위에 글로 선언해둔다. 그 꿈은 인공위성처럼 쏘아 올려져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그것을 이루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사람들의 손을 두루 거친 뒤,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당신 문 앞에 배달될 것이다. 우편물이 다 그렇듯 어떤 때는 발송이 지연될 수도 있다. 이럴 땐 주소를 바꾸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조바심이 들끓어서 특급우편으로 도착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주소를 바꾸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 ’사는 게 다 그렇지’ 라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은 꿈을 발송하지 않는 사람들의 고정 레퍼토리다.
매력을 유지하는 일, 그건 정말 중요하다. 당신을 휘감고 있는 기운이 세상의 좋은 일을 유혹할 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 무언가를 소망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당신이 얻기를 원하는 그것이 당신을 원해야 꿈의 데이트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로가 간절히 원해도 시간이 중매쟁이가 되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고등학생 때 나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꿈들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내가 최초로, 날 원하는 꿈의 프로포즈를 받은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꿈의 궤도를 코미디언에서 연극배우로 수정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몇몇 대학이 공동 주최하는 자선파티에 갔었다. 소심하고 인기가 없던 나는 플로어에 나가 춤출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석자리에 앉아 혼자서 소다수만 홀짝거리고 있었다.
‘멋진 손이군요.’
그 때, 파티의 쾌할함을 그대로 묻힌 목소리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 소리가 들려온 쪽에는 막 댄스 플로어를 빠져 나온, 진주 귀걸이를 멋지게 늘어뜨린 미인이 서 있었다.
‘그 손으로 제 머릴 한 번만 쓰다듬어주시겠어요?’
나는 뭔가 홀린 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손은 부드럽고 촉촉한 그녀의 머릿 결을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건 바로 그 때였다. 느닷없이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마워요, 정말 위로가 되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게 근사한 손은 처음 봐요.’
이내 그녀는 댄스 플로어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홉살 무렵 애완용으로 기르던 모르모토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먹이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던 모르모트가 걱정되어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재웠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다음날 모르모토는 건강하게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내 손을 주의깊게 바라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크고 길다란 손, 늘 손바닥이 후끈해서 겨울에도 장갑이 필요없는 손. 그날부터 나는 부쩍 손의 치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련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죽이 맞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듯 즐거웠다. 이전의 꿈에게서 받았던 대접과는 딴판이었다. 힐러가 되기에 나는 (내 손은) 매력 만점이었던 것이다. 그 꿈은 나를 유혹했고 나 또한 그 꿈을 간절히 원했다.
(사례 출처: <인생에 대한 예의> 곽세라)
IP *.51.218.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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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8.03.02 07:36:47 *.18.196.47
글이 시작되는 군요.

멋진 출발 축하드리고
좋은 결실 바라겠습니다.

상현동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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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2 09:17:17 *.70.72.121
소은...

하얀 눈길 위를 걸어요. 아무도 밟지 않은 우리들만의 길이죠. 동서남북 360도의 열림, 360가닥의 꿈, 3600가지의 엇갈림들이 펼쳐져요.

이 길에서 우리가 당신을 만난 것이 천복이 될 거에요.

후두둑 눈물이 바람결에 날아가요. 이렇게 살라고 누군가 불렀나봐요.

미친 교주가 되어서 강의 실도 없는 문패를 걸고 온 우주를 넘나들며 유령처럼 살아있나봐요.

하느님에게는 예수가 있어 모두가 그 독생자의 손을 기다리게 되었죠.

우리 가운데에도 예수가 태어나길 바래요. 저 혼자만을 구원하는 득불을 넘어 함께 젖어드는 물기, 바람, 햇볕, 성냄, 웃음, 광기, 땀, 눈물, 분노, 자비 .... 그 모든 것이 신성하게 이 제단 위에 수놓아지기를 바래요.

항상 오늘 아침같이, 당신의 매혹적인 울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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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보이
2008.03.03 23:00:42 *.133.238.5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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