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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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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21시 03분 등록
대낮, 밀가루를 뒤집어쓴 교복의 청소년들을 마주치거나, 꽃다발을 꼭 쥔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세월이 느껴지는 손을 보게 되면 또 졸업시즌임을 알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어지면 그것들의 의미는 적어지고,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다. 내 졸업식은 오래 전이었고, 아이의 졸업은 아직 멀었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낯선 풍경이며 무미건조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무언가 중요한 순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어떤 식으로라도 의미를 부여해 보고 싶어진다.

골목에서 마주친, 밀가루를 뒤집어쓴 – 요새는 케첩까지 등장하며, 얼마 전엔 ‘알몸 졸업식’이 이슈화되기까지 했다 –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 걸까? 아니면, 무엇이 그리도 괴로웠던 걸까? 그런 행동은 의미 있는 통과의례를 맞는 의미 없는 겉모습에 다름 아닐지. 그냥 그날 하루의 일일 뿐일까.
중요한 문제는 졸업식에서 보여지는 그런 통과의례가 그 이전과 이후의 날들을 구분 짓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가 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밀가루로 대표되는 일부 학생들의 행동은 삶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의식이나 의례라기 보다는 또래집단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감독•각본•주연의 스폰서 없는 순간적인 이벤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즉, 당사자에게 새로운 자각을 주는 역할이 아닌, 한 순간의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졸업식 또는,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또 하나의 세계로 변모하는 시기는, 자신의 인생계획을 냉정하게 점검해보라는 인생에서 많지 않은 ‘공개된 신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이런 시기를 보낸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길고 험난한 인생길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도 전형적인 통과의례로써 ‘성인식’(成人式)이 존재하지만, 일부 젊은이에게만 해당되고 있으며 그 의미도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식은 – 특히, 중•고교 졸업식 – 과거에 보편적이었던 성인식의 의미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전해지는 원시 입문의례에 의하면 “의례가 진행될 동안 연장자는 아이에게 위대한 신화의 에피소드를 통해 모듬살이의 규정을 가르치며, 부족의 신화도 전수했다고 하며, 의례가 끝나 이제 어른이 된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집에서는 부모가 골라 놓은 배필이 기다렸다”(p.160)고 한다.
즉, 앞에 언급된 졸업식 풍경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당사자들의 자체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지혜가 집약된 의례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는 자체적으로라도 이벤트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 안되 보이기도 하며, 의미 있는 의례를 치러 주지도 못하는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도 된다.
물론, 옛 것이 좋다는 복고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래 전의 의례적인 형식과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우리에게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무언가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는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공동체의 지혜가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방식으로 전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이런 것이 없다.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가정에서 부모는 늘 바쁘다. 학교도 진학률•취업률에다 현장에서 당장 써 먹힐 인재를 양성하느라 바쁘다. 기업은 기업대로 무한경쟁과 근거도 없는 열정을 외칠 뿐이며, 국가는 국가대로 경제에 운명을 건다.
누군가, 어디선가 공동체의 지혜를 전수해주어야 한다. 근본적인 경쟁력인 ‘삶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교과목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졸업식을 통해 각자가 인생의 주인이라는 자각과 함께 한 걸음 더 자기의 세계로 다가가는 기회가 되도록 하여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결국에는, 가정을 살리고 학교도 기업도 국가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이제 졸업시즌은 끝나고 입학시즌이 온다. 또 꺾인 꽃들이 팔리고 찰나적으로 플래시가 터질 것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해본다. 또, 수 많은 인생후배들이 입학하고 또 졸업할 텐데…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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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02:37:01 *.70.72.121
경험,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들을 진솔하게 전해주는 것. 우리 자신을 제물로 먼저 성인식을 치르고 그 일상들을 흩뿌려 나가는 것.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선물은 아닐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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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2008.03.03 19:38:20 *.109.192.214
맞습니다!
요즘 저는 용기, 자신감, 실수, 실패 - 이런 말이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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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011.02.09 21:29:18 *.185.145.26
hju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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