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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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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09시 57분 등록
연구원 1차에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 석자를 발견한 이후로 계속이긴 했지만, 요 며칠은 칼럼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시달렸습니다. 새벽 4시쯤 만 되면 꼭 눈을 떠야 할 것 같은 압력이 온 몸에 밀려듭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디선가 구본형 선생님이 4시에 일어나신 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였을 겁니다.-그러고 한 30분은 뒤척이다가 더 이상 안 될 거 같아서 4시 30분쯤 눈을 뜹니다. 겨우 눈을 뜨고 나면 후딱 불을 켜고 그리고 나면 이불을 둘러쓰고 실눈을 뜨고 모닝 페이지를 한 20분쯤 씁니다. 그리고 이내 과제의 책을 들고 앉아서 읽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읽긴 하지만 오랜 만에 읽는 어렵고(?) 게다가 두꺼운 책들이라 맘처럼 쉽게 읽어 지지 않을 때도 있고, 한 시간 내내 열심히 읽었는 데도 남아 있는 나머지 부분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애써 책을 다 읽긴 했지만 정작 무슨 주제로 어떤 식으로 칼럼을 써야 할까 도무지 머리 속에 잡히질 않습니다.

이 마음 불편한 상태를 계속 끌고 가다 보니 그 마음 안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가 저절로 궁금해졌습니다. 가만히 꼼꼼히 들여다 보니, 제 마음 속에는 ‘연구원을 하기에, 글을 쓰기에 부족한 나’라는 관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칼럼이 어떤 식의 글인가 참고를 해볼까 하고 들어가 보니 사이트에 올려둔 기존 연구원들의 글들은 제 기준에는 모두 엄청난 양의 긴 글들이었습니다. 글 쓰는 호흡이 길지 않는 저로서는 그것이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같은 걸 보고도 상대적으로 짧은 글로 밖에 풀어낼 재간이 없는 제가 어떻게 이들처럼 길게 글을 다 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게 걱정이 되다 보니 이내 다른 걱정들이 하나 둘씩 꼬리를 물고 밀려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문법이나 맞춤법도 잘 틀립니다. 그런 주제에 글을 쓰다니요? 그것뿐입니까? 생각도 논리적이 아니랍니다. 하나하나 분석적으로 따져서 논리적으로 늘어 놓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단어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항상 몇 개 안 되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늘어놓곤 하지요. 가만 보니 기존 연구원들의 글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수려한 것 같군요. 저는 화려한 수사법은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자꾸 ‘부족한 나’에 대해서만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화의 힘’을 읽는
도중에 조셉 캠벨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더군요.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 그 때부터 이 말이 저에게 구원자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천복대로 사는 것은 자신이 생긴 그대로 생긴 값대로 살라는 말일 것이고, 다른 이들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얼마나 다른 연구원들과 저를 똑같이 만들고 싶어 했는지가 보였습니다. 다른 연구원들과 같아 지려는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순간 다른 연구원들의 글과 제 글, 다른 연구원의 재능과 제 재능을 비교하던 제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 천복을 찾기 위해 이 연구소에 지원을 했으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저는 다른 사람들을 잣대로 해서 제 글을, 제 재능을, 제 능력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저를 얽어 매고 있었습니다.

그 비교에서 벗어나서, 각도를 약간 틀어서 생각해 보니 앞에서 열거했던 제 단점들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길이가 길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제 생각을 독자들이 이해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법이나 맞춤법이 틀리면 어떻습니까? 발견될 때마다 고치면 되겠지요. 그리고 1년 동안 글을 쓰고 책을 읽을 텐데 읽고 쓰다 보면 맞춤법도 저절로 익히게 되지 않을까요? 논리적이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100% 논리적인 글을 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논리성도 차츰 나아지겠지요. 완벽하게 논리적 이진 않지만 제 생각을 글로 또박또박 밝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리고 누군가 저의 비논리성에 대해서 충고를 하거나 의견을 주시기도 할 것입니다. 좋은 충고 훌륭한 의견들을 받아 들이다 보면 저한테서도 논리성을 키워지지 않을까요? 화려하고 수려하지 않는 문체도 걱정한다고 해서 단시일 내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오히려 단순하고 화려하지 않는 것이 제 글의 장점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런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머리가 명료해졌습니다. 무엇보다고 제가 이 연구원에 지원을 한 것은 제 자신의 ‘천복’을 찾고 그것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가지고 어디에 쓸 지를 생각하다 보면, 분명 어딘가는 평균에 비해 부족하고 어딘가는 평균에 비해 남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딘가는 부족하고 어딘가는 남는 제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사랑하는 일이 제 ‘천복’을 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조그만 ‘YES’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오노 요코의 작품에서처럼 ‘YES’ 라는 아주 조그만 긍정이 싹텄습니다.

2003년 한 전시관에서 오노 요코의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하여 ‘YES painting’! 커다란 전시관 한 가운데 조그만 사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천장에 긴 줄이 하나 매달려 있었고 그 끝에는 돋보기가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돋보기로 천장을 보니 개미처럼 작은 ‘YES’라는 까만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

그 ‘YES’를 보는 순간 제 몸 전체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몸에 모골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긴장을 했고 머리 속은 박하향을 맡을 때처럼 시원해졌습니다. 눈 앞이 갑자기 환해지고 머리 속에도 백열 전구가 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그만 목소리로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요코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정숙한 재벌가 딸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예술가로서 기이한 삶을 시작하면서 우리 부모님은 나를 버렸어요. 그래도 나는 ‘YES!’ 입니다. 사람들을 절더러 미친 여자라고 하죠. 그래도 나는 ‘YES’입니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이 미국사회에서 아시아인으로 게다가 여자로서 사는 것은 차별과 차별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나는 ‘YES’ 입니다. 그래서 제 인생은 종합하여 ‘YES’ 입니다. 저는 제 천복을 누리며 살고 있거든요. 여러분들의 천복을 위해서 ‘YES!’ 입니다.

그래서 저도 ‘YES’입니다. 생각이 짧아서 긴 호흡을 글을 지금 당장은 못 쓴 다해도, 문법도 호응 관계도 엉망인 부끄러운 글들을 내 놓을지도 모르지만, 화려한 수사도 잘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저는 YES! 입니다. 이 레이스를 끝까지 한 번 해볼 겁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제 천복이 무언지 잘 못 그리겠습니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이나 헤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YES!’ 입니다. 제 인생을 위해서, 제 천복을 위해서!

3월 한 달의 레이스 동안에 저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제 자신만큼의 꼴값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제 꼴값을 기대해 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든지 스스럼 없이 제 꼴값에 훈수를 두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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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11:27:42 *.70.72.121
오우 ~ YES!!

꼴은 고정된 모습은 아니고 애쓴 만큼의 모양으로 어느 형상으로든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왜 글을 두 군데나 올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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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2008.03.03 19:26:55 *.109.192.214
장문의 글을 아주 잘 쓰시네요...
이런 면에선 상대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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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숙
2008.03.03 23:11:05 *.51.218.156
우주, 나도 Yes, 글 너무 좋아. 내 코가 석자라 이제야 읽었어, 역시 우주표 글이야. 잘 읽히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야. 역쉬!!! 짧은 숨들을 모아 긴 숨보다 더 멋지게 완성! 계속 화이팅, YESSSSS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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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나
2008.03.04 11:28:54 *.117.73.63
저도 같은 고민을 했어요.
그동안 애들 장난처럼 끄적대 보기는 했어도 무언가 논리적이거나 화려한 글을 써본 적이 없거든요. 칼럼이라니까 겁부터 나서 신문의 칼럼도 읽어 보고 그랬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나 답게 쓰기로 했지요. 현정님의 꼴값과 저의 꼴값이 얼마일지 우리 끝까지 지켜보기로 해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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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2008.03.04 18:03:24 *.84.240.105
신화의 힘에서 겨우 빠져 나왔는데 삼국유사가 엄청난 페이지라
망연자실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들어와서 보니 여러분들의 성원이 있군요..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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