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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10시 37분 등록
옛 어르신들은 대통령은 하늘이 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점심 선약을 한 시간 정도 미루고,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대통령은 취임식에 초대된 5만 명 앞에서 취임사를 했다. 20여장에 걸친 취임사는 10장으로 요약했어도 될 만큼 중복된 내용이 더러 있었다.
상기된 대통령의 의욕에 찬 취임사.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새 대통령에게 환호하는 국민들. 역사의 수레바퀴가 반 바퀴쯤 구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노란손수건을 흔들던 참여 정부가 떠나고, ‘실용’을 푯대로 건 새 정부가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여러 이유에서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던 나는 대통령취임식이 끝난 지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의지하려 한다.

몇 번의 선거를 치루는 동안 성실한 유권자가 아니었던, 나는 기꺼이 참여정부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참여 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평범한 소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패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시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무관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 한 표마저 행사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정치환경, 즉 후대의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취임사가 끝나자 노 전 대통령 부부 환송이 있었다. 잠깐 동안 전, 현직 대통령은 함께 단상에 섰고,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분명 웃고 있었는데도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이윽고 노 전 대통령이 승용차에 오르는 것으로 환송은 끝이 났다. 참으로 간소한 참여 정부의 퇴장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한순간, 눈가가 매워왔다. 그 이유를 곰곰 되짚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측은지심 (惻隱之心)이었다. 참여 정부의 출발을 가능하게 했던 투표전날의 드라마틱한 역전도,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었던 탄핵 때도, 노무현정부에 대한 심정은 그 말과 맞닿아 있었는데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부연 하자면 두 어 달 전부터 정치무대 뒤로 퇴장하는 참여정부에 신경이 쓰였다. 마치 함부로 버린 연인의 초라한 뒤태처럼 신경이 쓰였다.
취임식 전날 자정을 넘기자마자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는 이제 노 전(前)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호칭을 정정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시시각각 알음알이 매스컴의 속성이었다. 매스컴과 노 대통령은 5년 내내 물과 불의 관계였다.

1986년 당시 인권변호사로 고무신을 신은 노무현 대통령을 명동성당에서 만났다. 몇 마디 말을 섞은 후 받은 첫 인상은 할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못할 듯한 솔직한 성품의 이미지였다. 2002년 대선캠프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런 이미지는 별반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도 천성적 자유로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탈권위’는 대통령의 권위에 익숙한 국민에게 ‘품위’를 손상시킨 것으로 비쳤고 ‘파격행보’ 는 경거망동( 輕擧妄動) 이란 지탄을 받았다. 그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는 데는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였던 언론이 기여한 공(?)도 컸다.

스스로도 품위 있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언론을 챙기지 않았음은 물론, 언론을 향해 거침없는 포문을 열었다. 그로 인해 매스컴, 특히 일간지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자유롭게 대통령을 하릴없이 화제 삼을 수 있었다.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최초 고졸, 대통령의 독선으로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급기야는 폐쇄까지 이르게 한 대통령이었다.

텔레비전에서 2부작으로 방영된 ‘대통령으로 사는 것’ 이란 프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사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언어와 태도에서 품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좀 준비가 부실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요." 라는 말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문재인 수석이 다른 어떤 점보다도 민심 (民心) 를 잡지 못한 것에 회한이 남는다는 말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조셉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P.12) “영웅은 자신을, 자신이 경험한 어떤 인격이나 권능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해탈을 겨냥하는 요가의 행자는 자신을 ‘빛’과 동일시합니다. 그는 일단 여기에 이르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을 섬길 뜻이 있는 사람은 이런 식의 탈출은 하지 않습니다. 구도(求道)의 궁극적인 과녁은 자기만을 위한 해탈이나 몰아(沒我)가 아닌, 동아리를 섬기기 위한 지혜와 권능을 얻는 것이어야 합니다.”
봉하의 귀향인사에서 “역사가 나를 재조명해 줄 것이다”라던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참여정부의 어느 부분에서 새로이 조명될 정치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쉽다. 대통령의 자리가 그야말로 하늘의 소명이라면 취임하기 전에, 노 전 대통령이 취미로 삼고 있는 한국의 야생화, 나무이야기 등의 책에 우선해 대통령이 스승으로 삼을 만한 필독서를 지참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훨씬 품위 있는 탈권위와 행보였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몹시 아쉬운 것이다.

취임식이 끝나고, 굳이 약속 장소를 바꿔 지인들과 인사동 주점에서 낮술을 마셨다.
‘오년동안 휴가 한 번 마음 편히 못 가고 고립되어 사느라 힘이 들었다’ 는 16대 대통령의 치루지 못한 이임식을 위해 한 잔, 비인기 대통령을 보좌한 측근들을 위해 한 잔, 청와대의 자유인을 바라보며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던 우리를 위해 한 잔, 석 잔의 탁주에 우리는 어느덧 불콰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서 그예 내린 눈을 맞았다.

귀향지에서 눈을 맞은 전임 대통령과 청와대 입성 첫날에 눈을 본 후임 대통령의 소회가 각각 달랐을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일을 하다 문득 보니 눈이 왔더라, 좋더라’ 했다고 전해진다. 조셉켐벨은 ‘자리’ 즉 직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왕이나 여왕에 대하여 반응할 때 우리는 그들의 인격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지닌 신화적인 역할에 따라서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거나,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경우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신성한 직함을 대표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직함이 의미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과 심지어는 자기 삶의 다른 가능성까지 희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실용정부라는 이름 아래 남다른 특성을 가진 이명박대통령에게 취임선물로 드리고 싶은 글귀이다.

연구원 지원 2차 과제 중 다음 지정도서인 삼국유사는 구본형 선생님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필독서로 권유한 서적이다. 삼국유사에 무지한 나는 그 책을 만날 일이 자못 설렌다. 한편 필독서를 지참한 대통령이 그 책을 다독하고, 정독해서 스스로 5년 후에 당당히 이임식을 치룰 만큼 잘 했노라는 박수를 받으면서 퇴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 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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