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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5일 18시 19분 등록


부지깽이

- 서툰 것이 아름답다

 

이재무

 

일곱 살 때였던가

뒤꼍 울 안 가마솥 옆

부지깽이 하나로

엄닌 내게 쓰기를 가르치셨다

다리엔 몇 번이고 쥐가 올랐다

뒷산 밟아온 어둠이

갈참나무 밑동을 돌며

망설이다 지쳐

모자母子의 앉은키

훌쩍, 뛰어넘을 때까지

그친 적 없었다 우리들의 즐거운 놀이

 

몇 해를 두고

화단 채송화꽃 피었다 지고….

 

내 문득 그날의 서툰 글씨 그리워

그곳으로 내달려가면

내 앉은키와 나란했던

그 시절의 나무들

팔 벌려야 안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자리

반듯하게 그을수록 더욱 삐뚤어지던

그날의 글자들이

얼굴 환한 꽃으로 피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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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풍경과 너무나 닮아 반가운 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부뚜막의 고운 그을음에 부지깽이로 낙서를 했었다. 주로 쓴 글씨는 내 이름이다. 한글로 썼다가 한자로도 쓰고 초가지붕 집도 자주 그렸다. 골세양바드레의 우리집은 내려앉아 풀이 무성한지 오래고 터만 남았다. 거기가 우리 집이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건 우리아버지 키만했던 은행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자라 있기 때문이다. 갈 때마다 반가운 은행나무다.

이제는 부지깽이 하면 우리 스승님부터 생각나니 그래서 또 반가운 시다. 새벽에 부지깽이 스승님이 수업하는 꿈을 꾸었다. 스승님은 옆 모습으로 사뭇 진지하게 내가 아는 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보았으니 오늘은 명당복권집에나 들어가 볼까?

진짜로 그렇게 스승님과 수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스승님의 부재는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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