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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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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8일 23시 28분 등록
1.
“나는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고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그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왜냐고? 내가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그들은 스스로의 일을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와~~!! :수강생들의 환호)
2001년 3월 제가 회사에 갓 입학한 후의 일입니다…!!!”

수강생이 목청껏 소리를 치며 강단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신념을 얻게 된 사건을 발표하는 날이다.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펲톡(Peptise Talk)을 외치며 올라간 그는 얼굴이 온통 벌겋다. 흥분하여 소리를 치지만 속으론 의아해한다. 왜 꼭 남들을 깔보는 듯한 이 문구를 핏대세워 외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꼭 이래야 자신감이 높아지나? 듣고 있는 다른 수갱생들도 어색해한다. 강사도 그렇다.

2.
가냘픈 그녀가 들고 있는 판자의 두께는 2센티미터는 족히 넘어보인다. 마흔살쯤 되어보이는 그녀는 그 곳에 올해 이루고 싶은 세 가지의 목표와, 세 가지의 장애물을 적었다. 이것이 올해 ‘부셔버려야’ 할 것들이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그녀는 강단에 서서 아래의 판자를 내려다본다. 할 수 있을까? 강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깨지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를 세 번 소리치며 마지막 박자에 힘껏 내리친다. 깨지기는 얼어죽을. 송판은 끄떡 없다.

첫번째 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당황한 강사는 그녀 옆에 선다. 코칭해주겠다는 의미다. 이상한 것은 그는 그가 말한대로 “할 수 있다고 믿기만 하세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은 손을 더 위로 뻗어 통과하듯 후려쳐라, 요렇게 한번 쳐봐라. 안되면 판자를 이렇게 놔보고 쳐보자’는 기술적(技術的)인 요구뿐이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몇 번이고 내려친 그녀의 손은 이제 벌겋게 부어올랐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하나는 내가 일하는 카네기 연구소의, 또 하나는 L컨설팅 사의 교육 장면이다. 교육쪽에 일하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이런 난감한 장면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훌륭한 교훈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드웨어는 얼마든지 빌려오거나 모방할 수 있지만, 그 문화 특유의 가치체계와 정서는 결코 따라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 프로세스와 조직을 빌려와도 사용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코리아니티’, 구본형

우리나라의 리더십 프로그램은 서양의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 많다. 소위 ‘빅 쓰리’ 업체는 모두 미국의 것을 로열티만 지불하고 그대로 공급받는다. 복잡한 절차와 규칙 등이 포함되어 있는 상세한 매뉴얼에는 심지어 강사의 대본까지 들어있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본형의 ‘코리아니티’를 읽으며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미국식 리더십 교육의 문제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영웅주의, can-do spirit
“Impossible is nothing” “Just do it”
스포츠 의류의 마케팅 문구들이 교육에서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는 할수있다(Can-do) 정신은 미국식 영웅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또는’ 의지력 하나만으로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달콤한 희망이다. 그것에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즉각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잘못 주어진 희망은 절망을 지연시킬 수 있다. 예컨데 일하는 분야에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경우이다. 축구에서 공만 열심히 쫒아다니는 바보가 얼마나 답답했던가. 동양의 사상은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다. 태어날 때 그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결정되어 있는 초벌구이 같은 것이다. 타고난 모양대로, 그 용도에 맞는 가장 훌륭한 그릇으로 자신을 다듬어 가야 그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서양의 프로그램은 우리의 재능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 하다. 우리가 어떤 재능을 물려받고 태어난 것이 못내 의심스럽다면, 아주 어린 아이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라.


둘. 일단 결과가 보여야 할 것 아냐? - 단기성과주의
“열정적으로 행동하면, 열정적이 된다!!”
데일 카네기 코스에서는 5과에서 ‘열정 공약’을 한다. 열정이 현재 수준보다 10배 증진되었을 때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하여 3주간 실천해 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일주일에 두권씩 책을 읽었으며, 심지어 어떤이는 3주동안 7kg을 뺏다. 취지는 한번의 성공경험을 하게 하여 성취감을 맛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3주간 그는 거의 먹지 않았다. 먹지 않았으니 기초대사량(basal metabolism)이 낮아지고, 결국 예전보다 더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된다. 교육 후 만난 그는 2kg이 더 불었다 했다. 단기간의 무리한 목표가 장기적으로 해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그가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오히려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경우이다. 느릿느릿과 천천히. 가마솥과 냄비의 모순을 끌어안은 사람들. 단기성과 위주의 교육은 한국사람을 ‘냄비’로 치우치게 할 뿐이다.


셋. 이대로만 하라구! - 보편주의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9가지 원칙”,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몇 십년이 흘러도 여전히 삶의 중요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원칙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통제가 근본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타민을 섭취한 것만으로 풍부하게 과일을 먹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원칙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관심을 통해 타인이 ‘존재하는 것 이상의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주의는 장기적 관점의 ‘사명’ 조차도 획일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잘 사는 방법에 정답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꼭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탓에 수강생은 자책만 늘어간다. 나는 파커 J. 파머의 솔직한 고백이 좋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늘어놓고는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언제나 그 결과는 비현실적이었고 진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30여년이 지난 오늘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은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라고 말이다” - 'Let your life speak', 파커 J. 파머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비판하자니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것은 우리와 맞지 않으니 배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빌려올 수 있는 것(수단)과 빌려와서는 안되는 것(내용) 사이의 중대한 차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는 이야기다. ‘유답(U-Dap)’이라는 우리 고유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소식이나, (아직은) 체계 없이 감성에만 호소하는 1회의 이벤트성 교육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은 퍼포먼스가 아니다. 내가 여전히 카네기에서 일하는 것은 연습(practice) 위주의 교육, 훌륭한 팔로우업(follow-up), 수강생끼리 ‘친구이자 스승이 되는’ 코칭 프로세스 등의 수단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내용과 정서가 이러한 우수한 시스템에 녹아들어간다면 더 좋을 것은 없다.

어떻게 한국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명분과 배움’이라는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을 ‘한국적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태국인을 닮은 토종 한국인 연구원으로서 코리아니티를 연구하는 나의 기본적인 물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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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7.03.18 22:29:36 *.62.201.228
나 역시 옹박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나도 성인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카네기 강사 생활도 해 보았고, 코비의 7가지 습관, 유답 등에 관한 프로그램을 이수해 보았지만 우리문화와 정서에 맞지않는 듯함에도 그것을 따라하는 대목에는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시 선생님께서 코리아니티 경영에서 '문화없는 상품은 삼류이며, 차용한 철학으로는 혼신의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말씀 하시는 것 처럼 현재의 많은 성인교육에서는 '차용한 철학'이 난무하고 있으며 우리의 것으로 정착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현재 미비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옹박'과 같은 사람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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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3.18 23:21:35 *.75.166.69
옹박 화이팅,,,
창조의 이면에는 기억이 있거든...
모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면
창조를 위한 기반이 다져진 셈이니까

고치고 보태서 성공할 수 있는 코레아니티를
옹박이 한 번 만들어보시게...

'성공한 코레아니티 옹박'
멋질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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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3.18 23:48:31 *.102.142.177
멋진, 그리고 용기있는 성찰입니다.
저도 카네기 교육을 받았지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부감이 이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거든요.
대개 그 거부감을 '이건 익숙치 않은 상황일 뿐이야.'
하며 개인의 문제로 돌리죠.
그래서 자기계발교육이 더 위험한 것 같습니다.
그게 맞지 않는다해도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개인의 문제차원으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코리아니티라는 프리즘을 자신의 직업에 잘 적용하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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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성
2007.03.19 09:48:23 *.56.43.185
음... 옹박! 점차 깊어지는 내면이 훌륭하다. (잘 생긴 청년이기도 하지만)
음... 옹박! 점점 귀한 옹박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좋다!
나도 좀 가르쳐 주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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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7.03.19 10:17:58 *.111.247.32
와~~~ 속이 다 시원하다.
늘 그곳에서 나만 외톨이 같았던 느낌을 위로받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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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9 16:40:19 *.5.23.40
지금까지 받아들인 유.무형의 수많은 Input을 어떻게 자기다움과
코리아니티에 융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진지한 계기가 된
듯. 앞으로 나올 멋진 결과물을 기대하겠음.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가슴에 꽂히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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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20 10:53:09 *.218.205.173
오옥균님,
맞다. 카네기 강사라고 하셨죠? 언젠가 여기에서 한번 뵐 수 있겠네요.

성렬이형, 박노성 선생님, 기찬이형
아 칭찬만 너무 많이.. 이러면 건방져져서 언제 기어오를지 모르는데.. ㅎㅎ 고맙습니다. 예, 꼭 그렇게 해야죠.

귀자, 소라누나.
오해는 마세요.
교육이 반드시 교육생에게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귀자와 모모누나가 불편했던 것 중 대부분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도록 요구받았 때문인 탓일거에요. 미국적인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기 보다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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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7.03.21 10:24:50 *.111.247.32
불편한것과 외톨이는 다른맥락인데.
그렇게 답해주니 아쉽구랴.
앞으로 강사를 꿈구는 옹박이..
모든 교육생이 당연하게 그럴거라고 판단하진말았음 하는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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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21 10:38:26 *.54.31.44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외톨이라는 느낌은 왜 드는걸까요?
생각해보면 저도 처음 수강할 때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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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3.22 14:12:34 *.252.33.160
방식의 낯설음??
어떻게 보면 교육의 방식이
판을 벌리는 연극과도 같은데 말야~

서양으로 치면
무대를 두고서 한 연기자와 그를 지켜보는 다수가 있고
(간간히 나가서 참여하긴 하지만..우리의 무대는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탈춤과 같은 판이 있어서
시연자와 관중이 경계없이 다 어울린단 말이지.

그 정서의 차이가 작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불편함과는 다른 느낌이지.
낯설음...
It's my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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