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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08시 08분 등록

 <10기 레이스 칼럼 2주차> 죽음이란 무엇인가-조현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나는, 일찍 죽고 싶었다.

 산다는 것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허나 죽음은 그로 인한 것이기보다는 그저 일상에서 내 언저리를 빙빙 맴도는 것이었다. 죽음이 그다지 어렵게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강렬한 절망으로 나를 강타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그저 딱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사실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었다. 변명처럼 얘기하건대 어린 시절은 철이 없었다 치고, 청춘은 늘 방황과 혼돈의 언저리를 즐기기에! 금기와 불온한 것에 대한 이끌림, 미지에 대한 지극한 두려움과 떨림에서 그 감정은 불타오르지 않았을까. 부재에 대한 매혹에서 또한 생겨나지 않았을까. 오래 산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진부하게 생각되었고 불꽃같은 삶, 짧은 생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버지니아 울프, 전혜린, 랭보, 이상, 카프카…… 그들은 일찍 죽었다.

 그러니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자살과 죽음에 대한 동경이 생겨나는 것을 말이다. 아니, 진실로 고백하자면 천재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들의 천재적인 재능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그 재능은 따라가지 못하고 후광효과만을 바란 이유였다. 일찍 죽는 것이 내 자신 그들과 같은 재능을 꽃피운 듯한 잘못된 대입, 그 어떤 글 하나 남기지 않고서 나는 작가이기를, 천재이기를 바라며 죽고 싶었더랬다. 충동이라 할 수도 있고, 모방이라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멍청하다’, ‘한심스럽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비가시적인 것, 부재하는 것에 대한 이끌림은 사춘기의 정점에 있던 그 때에는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스무살 이후의 인생이란 너무나 먼 이야기로 아득하기만 했다.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상상과 생각을 펼치는 것이 현실인 양 여겨졌다. 태어남이 내 의지가 아니었기에 죽음은 내 선택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또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 어떤 자취하나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사라져갈 수 없다는 발버둥, 내가 천재가 아님을 아주 완벽하게 인지하기에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대로 사라질까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던가, 오래도록.

 다행히도 뛰어나도록 평범한 내 삶에서 죽음은 무모한 용기를 나타내거나 행동력을 채찍하는 의미였다. 사소한 것에서, 하기 싫은 일을 행할 때 용기를 북돋우는 말로 사용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 처음 고속도로를 들어설 때, 나는 외쳤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음식을 버릴까 하다 먹기로 하면서도 외쳤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냐구!”

 매혹과 끌림의 동경의 단어에서 ‘기껏’이란 수식어를 받는 단어로 전락한 뒤에도 죽음은 여전히 관념적인 의미였다. 죽음은 사회적으로 금기의 단어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고 삼가야 할 단어였기에 에둘러 표현되어야 했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부정이나 금기가 죽음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금기어란 말이 무색하게 일상에서 수시로 듣게 되는 말이기도 했다. “너 죽어 볼래?”나 “죽고 싶냐?”는 싸움이나 말다툼에서 사용되는 말이니 어쩌다 듣게 된다고 쳐도, 어느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이런 말들이 있다.

  “예뻐 죽겠어”, “좋아 죽겠어”, “행복해 죽겠어”, “싫어 죽겠어”, “짜증나 죽겠어”,

  “심심해 죽겠어”, “배고파 죽겠어”, “배불러 죽겠어”, “보고 싶어 죽겠어”

   …… “죽여 준다!”

 말끝마다 죽겠다라고 한다. 좋아도 행복해도 기뻐도, 싫고 짜증나도, 긍정의 감정이든 부정의 감정이든 우리는 늘 “죽겠고”, “죽을 것 같다”. 죽음은 이처럼 일상의 언어 곳곳에 박힌 삶과 분리된 단어가 아니었다. 어느새 죽음이란 무겁고 가라앉은, 떨림을 갖는 단어가 아니라 가볍고 통속적인 단어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오래도록 죽음은 내게 관념이었지만 여전히 관념일 것이다. 죽음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그러하고, 끊임없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기에 그렇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빅터 프랑클은 삶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에도 의미를 붙일 수 있다. 나는 죽음에 대한 관념 또한 그가 말하는 의미 부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지를 가질 것을 말하고 있지만 삶에서 죽음을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의미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또한 삶에 관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듯 삶의 각 순간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야 한다. 삶의 일회성에 대한 인식은 이를 일깨운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연결된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의미를 찾는데 있어 중요하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노인보다 어린 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그들의 인생을 가여워한다. 반면 어느 인디언 부족은 어린 아이보다 노인의 죽음을 슬퍼한다. 오랜 세월 살면서 체득한 그들의 경험과 지혜가 사라지는데 대해 아쉬워한다. 이렇듯 삶에 대한 태도는,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개개인의 의지에 의하지만, 또한 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형성된다.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 단지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데 있어 선택을 확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에게 제 삶을 책임지우며 자살과 살인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다. 가장의 삶에 대한 의미없음은 가족의 삶 전체를 빼앗는 가족주의적인 나라 한국이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이 희생인 양 호도되어 우리 삶 전반을 누빈다. 이 모든 것들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내 ‘관점’하나 없는 데서 벌어지는 일이다.

 실체적 죽음과 마주한다면 죽음에 대한 내 관념도 치기 어린 관념과는 다르게 인식될 것이다. 그토록 슬펐던 할아버지의 죽음도 시간이 지나 노년의 자연스런 삶의 종결로 여겨졌고 다행으로 가족과 벗의 급작스런 죽음 소식 또한 없었다. 그저 뉴스에서, 글로서 그렇게 마주한 죽음이었다. 가슴을 후벼파는 살 떨리는 경험은 타인으로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하루 하루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한다는 그 말에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의 죽음 소식이 들려 올까 전전긍긍했다. 그럼에도 미성숙한 나는 삶에 대한 의미를 찾도록 독려해주지 못했다. 즐거웠던 기억, 아름다운 노랫소리, 환한 햇살들을 마음에 그려 주지 못했다. 그저 죽음을 그렇게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며 그의 생각 속에서 ‘죽음’을 삭제시키려 했다.  

 그러니까 죽음은 매혹도 아니었고 격려도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마주했을 때 죽음은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이었다. 독거노인들에게 배달하는 점심 도시락이 한 끼의 식사 이상으로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듯, 깨끗이 설거지된 빈 도시락 통을 수거하고 따스한 밥이 담긴 도시락으로 건네는 것이 그들이 지난밤 생사를 확인하는 일인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로나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여보세요”라고 말할 때, 마음속에 일렁이던 말. "너 때문에 죽는 줄 알았어!"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고 싶다. 죽음을 가볍게, 별 거 아니게 대하며 떨었지만... 다만 ‘일찍’이란 단어는 버린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 죽고 싶다. 과연 다른 말인가. 서로가 다르지 않은 말일 터, 죽음에 무게 지우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고 싶다. 아름답게 살기 위하여, 행복하게 죽고 싶다.

IP *.177.8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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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2:19:25 *.94.41.89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음식을 버릴까 하다 먹기로 하면서도 외쳤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냐구!”

"죽음에 무게 지우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고 싶다. 아름답게 살기 위하여, 행복하게 죽고 싶다."

 

죽여 준다!

잘읽었습니다.  어릴적 치기는 버리신 것같아 다행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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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3:14:13 *.177.81.168

나이가 들어가니까요..^^::

이번 10기들에게 늘 먼저 이렇게 챙겨주시고 격려해주시네요..정말 죽여주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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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4:52:16 *.94.164.18

"그럼에도 여전히  죽고 싶다".....도전적인데요.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이 정신 맘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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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3:16:15 *.177.81.168

두려움을 극복하는 주문^^::: 그것이 열정과 행동력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늘 모자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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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1:31:27 *.50.21.20

죽음이 일상적인 영역 안에 있다는 것.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용기가 좋네요. 

눈 앞에 죽음을 두고서도 의연함이 있는 단단한 삶이 깊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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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3:21:13 *.177.81.168

그러면 좋으련만, 아직은 더 많이 채워야 할 듯하네요..

해언님의 글에서 의연함과 단단한 삶의 깊이를 본 것 같은데요..

열심히 배워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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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5:20:14 *.94.41.89

'다행히도 뛰어나도록 평범한 내 삶에서 죽음은 무모한 용기를 나타내거나 행동력을 채찍하는 의미였다. 사소한 것에서, 하기 싫은 일을 행할 때 용기를 북돋우는 말로 사용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 처음 고속도로를 들어설 때, 나는 외쳤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

 

'어느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이런 말들이 있다.

“예뻐 죽겠어”, “좋아 죽겠어”, “행복해 죽겠어”, “싫어 죽겠어”, “짜증나 죽겠어”…… “죽여 준다!”'

 

죽여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남은 레이스도 죽도록 즐겁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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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3:23:33 *.177.81.168

넵..즐겁게~~ '즐거워 죽겠어'란 말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도록 해볼게요~~녕이님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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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9:18:03 *.65.153.233

저도 일찍 죽고 싶었더랬지요^^

요즘엔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답니다. 주위에 멋진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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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13:25:18 *.177.81.168

그렇더라구요..세상엔 멋진 분들이 너무 많고..

그분들과 연을 닿으려면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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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2 17:41:22 *.160.136.111

행복하게 죽고 싶다. 저에게도 와닿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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