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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6일 11시 33분 등록

10기 레이스 2주차_죽음이란 무엇인가?

2014. 2. 16 정수일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_니체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과학의 힘이 영원히 미치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 존재해야 한다면 바로 ‘죽음’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죽어보지 않고서 죽음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죽음에 대한 실체적 정의는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내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관념의 영역(철학이나 종교 또는 무속 등)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온전히 실존하는 생명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고 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여기엔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의 과정에서 ‘죽음’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으며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으나 아직까지 결론은커녕 해답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문명이 막 시작되는 그 때, 인류에게 처음 닥친 막막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단 한번 태어나고(종교적으로 또는 큰 사건을 겪은 후 다시 태어났다고도 하지만 여기서는 생물학적으로), 단 한번 살고, 단 한번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예외가 없는 자연의 질서다. 이 엄정하고도 가혹한 질서는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자연의 질서는 본디 그러한 것이어서 설명이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데 인간의 우비한 욕심은 항상 미치지 못하는 곳을 향한다. 시인 김상용의 고백처럼 ‘왜 사냐건 웃지요.’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내게 너무 멀고 아득한 물음이어서 먼발치라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시도해보자. ‘죽음’이 아득한 것이라면 그리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물어 보는 것이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이라면 ‘태어남’은 시작이고 ‘삶(태어남과 죽음도 삶의 일부이지만)’은 과정이며 ‘죽음’은 끝이다. 태어남은 삶과 연결되고 삶은 죽음과 닿아 있다. 이 프로세스의 각 단계는 개별적인 듯하지만 이렇게 서로 연결되고 닿아 있어 따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서 말하려면 삶을 데려오지 않을 수 없다. 삶의 한쪽 끝이 죽음에 닿아 있으니 죽음은 결국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 또 여기서 ‘삶의 끝이 죽음’이란 말은 ‘삶의 결과가 죽음’이란 말과 같다. 삶의 결과, 즉 질에 따라 죽음의 질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과정은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결과는 반드시 과정에 영향을 받는 종속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삶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죽음을 부정하고 삶을 강하게 긍정하는 말이다. 이 말에서의 죽음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나 두려웠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결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을 가장 큰 복이라 여겼다. 반대로 ‘제명대로 못 살고 죽는 것’을 가장 원통하게 여겼는데 여기서 방점은 ‘제명대로’ 이다. ‘제명대로’란 말은 결국 ‘삶’을 말하는 것인데 ‘잘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죽음에 대한 제자 자로(子路)의 물음에 “삶에 대해서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에 관하여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대답했다. 죽음에 대해서 관심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선은 ‘잘 사는 것’ 즉, ‘삶’에 관한 질문에 공고한 대답을 찾는 것이 결국은 죽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또 강제수용소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삶에 대해서 ‘의미’와 ‘책임’으로 정의하면서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 어떤 존재에도 거룩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과 여러 임상경험을 통해서 설파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존엄이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된 강제수용소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무가치한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삶에 대해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삶에 대한 시련과 고통보다 무가치한 죽음이 오히려 그에겐 더 견딜 수 없는 상실과 시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이란 것을 증명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법을 말한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죽음을 긍정할 때 비로소 삶과 인과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한 때 상갓집에 문상 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죽음은 공포였고 슬픔이었다. 엄숙한 그곳에서 울고 먹고 떠들고 마시고 심지어 도박판이 벌어지기까지 하는 것에 상당한 혐오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녀 온 날은 반드시 앓아눕거나 체하거나 탈이 나곤 했었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이런 두려움과 거부감은 서서히 사라져 지금은 많이 편하다. 이젠 어렵지 않게 문상도 다닌다. 생각해 보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변화인 듯 하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죽음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천명이 다하는 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사고나 병 따위로 예고 없이 불쑥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 마지막을 정리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드문 경우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뭔가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남은 가족들이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장치를 마련했다. 보험이 그것이다. 셈에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느닷없이 가장을 잃은 가여운 아이들에게 생활고까지 겪게 한다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다음으로 죽음이 조금은 더 유의미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장기기증이 그것이다. 아직까지 육신에 남은 것 가운데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이런 행위는 내게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삶의 의미를 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역시 죽음에 대해서 관대해지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


내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는 분이 있다. 그는 학자와 농부, 그리고 사상가로써 한 세기 동안이나 살다가 지극히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다. 백세가 되자 세상에서의 일을 스스로 마감하고 곡기를 끊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듯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칠 것을 선택하는 것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절제 그리고 분명한 삶의 원칙아래 부단히 노력하고 실천한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삶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마치 성직자의 삶과 닮아있음을 느꼈다. 


나도 어느 듯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 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이 삶의 목표도 모양을 바꿔서 ‘잘 먹고 잘 살자’ 보다는 ‘잘 살다가 잘 죽자’가 되었는데 사는 동안 스콧 니어링 같은 분들의 삶을 티끌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 닮는다는 것은 삶의 형태가 아니라 태도를 말하는 것인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부단한 실천의 노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조금씩 죽어간다. 태엽이 멈추는 날 삶이 내게 걸어온 말들에 성실하게 응답하고 삶이 부여한 책임을 다 할 수 있길 바란다. 


죽음이 비관적인 것은 삶을 한정하기 때문이다. 삶이 유일하고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 막막한 것이기도 하다. 삶의 유일성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다시 살 수 없는 삶을 인간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극복해냈다. 생명의 정보를 유전자에 담아 다음세대로 전한 것이다. 이렇게 생명은 유전자를 통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생명은 다시 태어날 것이고 태어남은 곧 삶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삶은 영속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반드시 죽음인 것은 아닌 것이기에 반드시 ‘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두렵거나 슬프거나 비관해야 할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IP *.3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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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3:05:36 *.196.54.42
"생명은 다시 태어날 것이고 태어남은 곧 삶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삶은 영속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반드시 죽음인 것은 아닌 것이기에 반드시 ‘끝’을 의미하
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요, 인생이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내 자식으로 나의 존재가 이어지는 것이지요.
애 많이 쓰셨네요^^ 노력하신 흔적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스콧니어링 부분도 공감이 가고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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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2:03:42 *.104.9.186

응원 감사합니다.^^


구름님도 함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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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4:14:32 *.94.41.89

"장기기증이 그것이다. 아직까지 육신에 남은 것 가운데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큰 결정을 하셨군요.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고민만 하고 실천을 못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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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2:04:15 *.104.9.186

큰 결정은 아니었습니다만


생각보다는 절차도 간단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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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5:32:43 *.94.164.18

"죽음은 죽음을 긍정할 때 비로소 삶과 인과관계를 맺을 수 있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다. 부정할 수 없는 명제인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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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2:04:49 *.104.9.18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함께...아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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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08:43:13 *.50.21.20

죽음은 죽음을 긍정할 때 비로소 삶과 인과관계를 맺을 수 있다.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자세가 삶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는 아이러니가 잘 드러나네요. 

그런데 중간에 이 분, "내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는 분이 있다. 그는 학자와 농부, 그리고 사상가로써 한 세기 동안이나 살다가 지극히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다. 백세가 되자 세상에서의 일을 스스로 마감하고 곡기를 끊었다." 

이 분은 누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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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2:05:39 *.104.9.186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스콧 니어링 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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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4:11:11 *.94.41.89

죽음 하면 단절을 떠올리기만 했던 제게 ' 죽음이 반드시 죽음인 것은 아닌 것이기에 반드시 ‘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 라는 관점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잘먹고 잘 죽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실천하시고 계신 것 같아 부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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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2:06:30 *.104.9.186

제가 말의 반만큼만 실천 했으면 성인이 되어 있지 싶습니다.

ㅠㅠ


실천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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