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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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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06시 20분 등록

 죽음이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는 것이다. 죽음을 목격했을 때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가슴이 다시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여 부풀어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명과 생명으로 연결되어있던 그와 나의 동질성이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죽음이 찾아온 육신은 집에 있는 물건처럼 가만히 있다. 그 어떤 것도 죽음을 방해할 수 없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는 망자의 세계로 떠났다. 여기에 그는 없다. 나만 여기 남아있다.

 

친근한 얼굴의 영정 앞에서 절해야 했던 사람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눈물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빈자리에 적응해나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그저 슬픔의 시대를 견디는 것이다. 고통으로 감각이 무뎌지고 새로운 것은 쌓이지 않는 시간들이 지나간다. 속이 텅 비어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시간은 흐르는 강과 같고 나는 그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운 강가에 방관자처럼 앉아있다.

 

슬픔의 안개가 걷히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영영 사그라들 것 같지 않던 매서운 칼바람에도 때가 되면 봄기운이 스며든다. 그것은 마른 잔디밭에 움이 트듯이 아주 사소한 징조부터 시작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시간이 연기처럼 천천히 퍼져나갈 때 녹지 않는 눈 위로, 감나무 가지 사이로, 기르는 강아지의 갈색털 위에 햇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라. 눈이 안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 조카의 미소, 잔잔하게 파도가 일렁이는 해질녘 모래사장, 겨울이 지나고 앙상한 가지에 파릇하게 올라온 새순 같은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아주 사소한 것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슬픔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을 줄 알았던 내게도 아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란다. 판도라의 빈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처럼, 심연의 깊은 밑바닥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웃을 일도 있는 곳이었구나. 이윽고 그 목소리는 이렇게 바뀐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구나.

 

느닷없이 찾아온 삶의 목소리는 나에게 살아있는 것이 좋다는 감각을 되찾아주었다. 삶이란 시끄러운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아무리 침묵하려 해도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기를 그만둘 수 없다. 죽음의 침묵 앞에서도 큰 소리로 살아있음을 외치는 것. 그것이 삶이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르자 살아있다고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는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살고 싶었던 삶, 나의 욕망, 나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내 삶이 어떤 시간들을 포함해야만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긴다는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던 내면의 일부도 함께 죽는다. 그렇게 정신적인 죽음을 경험한 내면은 아주 먼 미래에나 벌어질 줄 알았던 종말을 직시한다. 평온한 일상에 잠들어 있던 의미를 찾는 왕성한 욕망이 고개를 든 것이다.

 

삶은 숨쉬기의 연속이다. 파도처럼 한 번의 호흡 다음의 숨이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은 다음 기회라는 것을 약속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면 바로 거기에 집중하자. 처음이라 영 서툴고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다음 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한 찬스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까워 머리를 쥐어뜯어도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정말 울어야 할 눈물은 내 영혼이 즐거울 만큼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채우며 존재에 가득 찬 행복함에 흘리는 것뿐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는 존재다. 필멸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이 영원한 안식이라는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삶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면서 단 하나 욕심 내도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의 내 삶이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만이 이 일생의 과제다.

IP *.160.3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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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2:23:33 *.94.41.89

"속이 텅 비어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시간은 흐르는 강과 같고 나는 그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운 강가에 방관자처럼 앉아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웃을 일도 있는 곳이었구나. 이윽고 그 목소리는 이렇게 바뀐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구나."

"죽음의 침묵 앞에서도 큰 소리로 살아있음을 외치는 것. 그것이 삶이다. "

"우리가 정말 울어야 할 눈물은 내 영혼이 즐거울 만큼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채우며 존재에 가득 찬 행복함에 흘리는 것뿐이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의 내 삶이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만이 이 일생의 과제다."

 

글도 닮아 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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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2:00:57 *.50.21.20

꿈틀꿈틀 움직임 있게 쓰려고 노력한 부분을 바로바로 짚어내주셔서 보람찹니다. 히히 :)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니 쓰는 즐거움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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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4:55:42 *.94.164.18

구절마다 가슴 절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역시 살아있는 표현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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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2:02:35 *.50.21.20

고맙습니다!! :) 

먹먹한 마음이 생생하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이렇게 기록할 기회가 생겨서 저에게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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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5:33:52 *.196.54.42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던 내면의 일부도 함께 죽는다그렇게 정신적인 죽음을 경험한 내면은 아주 먼 미래에나 벌어질 줄 알았던 종말을 직시한다."

먹먹해지며 가슴이 아파 옵니다. 그러다 반갑습니다. 구선생님이 살아 오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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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3:14:53 *.50.21.20

그래서 이제라도 10년을 미뤄온 연구원을 하게 되어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헤쳐나가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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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5:15:59 *.94.41.89

'죽음의 침묵 앞에서도 큰 소리로 살아있음을 외치는 것. 그것이 삶이다.'

'삶은 숨쉬기의 연속이다. 파도처럼 한 번의 호흡 다음의 숨이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은 다음 기회라는 것을 약속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면 바로 거기에 집중하자.'

'우리가 정말 울어야 할 눈물은 내 영혼이 즐거울 만큼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채우며 존재에 가득 찬 행복함에 흘리는 것뿐이다. '

 

읽으면서 왠지 제 마음도 먹먹해져오고 슬픔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또 이내 기운이 나고 희망이 움트기도 했습니다.

감성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표현들이 인상적입니다 ^^ 앞으로도 즐거운 레이스 이겨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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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09:35:42 *.50.21.20

쓰면서 작년 생각이 나서 좀 울었는데, 눈물로 쓴 에세이가 통했네요. ㅎㅎㅎ 

힘들지만 함께 즐겁게 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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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9:21:41 *.65.153.233

그날의 슬픔이 밀물처럼 몰려읍니다. 슬픔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음이 부럽습니다. 슬픔을 관통한 후 더욱 단단해진 결말 부분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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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09:26:49 *.50.21.20

싸움을 잘하려면 많이 맞아봐야 한다고 하는데, 저도 시련에 얻어맞아 좀 컸나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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