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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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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00시 21분 등록

신화 창조에 관한 몽상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면 TV도 즐겨 보는 편이다. 끌린다 싶으면 무엇에나 좀 빠져드는 성향이 있는 까닭에, 재미난 프로를 보다보면 대충 끝내지 못하고 꾸뻑 꾸뻑 졸아가면서도 죽심스럽게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여섯 살 난 우리 딸네미가 만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걱정스런 마음에 “테레비 많이 보면 너 바보된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나 아빠 닮아서 그래...”였다. 아빠가 졸면서까지 TV를 보는 모습에 익숙해진 때문이리라. 요런, 깜찍한 것! 그걸 우째 알았을꼬? 그 신비한 유전의 법칙을...

그러던 내가 요즈음 좀 변했다. 집에 오기만 하면 책을 펼쳐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톡탁거리는 남편이 우리 집사람은 신퉁한 모양이다. “어유 최작가님. 무슨 책을 쓰고 계세요? 언제 출판하실 건데요?”하고 물어본다.(불과 한 달 남짓 달라진 모습 때문에 우리 집에서 나는 벌써 작가 대접을 받는다) 신기해 보이기는 우리 집 귀염둥이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아빠보고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다가도, 하던 일에 빠져 대꾸를 안 하면 슬그머니 자기 방에 들어가 혼자서도 잘 논다. TV를 보던 아빠가 책과 컴퓨터 앞에서 진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겁나기도 한 모양이다. 아무튼 나의 바람직한 변화에 우리 가족은 잘 적응해 가는 듯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즐겨보던 TV 프로 중에 신화창조라는 프로가 있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기업이나 인물들의 성공 스토리를 찾아내고,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도전과 창조 정신을 북돋우고 기업가에겐 자긍심을 느끼도록 한다는 의도로 제작된 프로였다.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배울점도 많아 시간 날 때마다 시청하곤 했는데, 누구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끌어 낸 성공신화의 내용 들이 진한 감동을 주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화의 힘’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은 내가 감동받았던 흥미진진한 또는 발전적인 (성공)신화를 앞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옛날에 만들어진 신화를 해석하고 그곳에서 의미와 교훈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또한 현대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현대 사회에서 신화는 누가 만드는가? 신화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뭐 이런 현실적인 질문을 하면서, 신들의 이야기라는 신화를 실질적인,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TV에서 보았던 성공신화와 캠벨이 말하는 신화는 그 차원이 다르다. 그는 신화가 신화로서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네가지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으로, 우리가 신화로 인하여 우주 만물에서 신비를 읽게 되면,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둘째, 우주론적 차원의 기능으로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준다. 셋째, 사회적 기능으로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넷째, 교육적 기능으로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이 네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켐벨이 얘기하는 신화로서의 자격이 있는 셈이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면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신화를 켐벨 수준의 신화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이고, 켐벨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신화의 힘’을 갖는 제대로 된 신화를 우리가 갖게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전에는 신화가 옛날이야기 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켐벨은 존 웨인을 신화화(神話化)하는 차원에 들어간 사람으로 평하고, 존 레넌은 신화학적 의미에서 영웅이었고 개혁자였다고 말한다. 자동차는 이미 우리의 꿈이 되었기 때문에 벌써 신화가 되었다고 하고, 켐벨 자신이 컴퓨터를 신들을 섬기듯 신들과 동일 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켐벨의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도 내가 생각하는 유형의 신화가 탄생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그는‘내일 어떤 신화가 태동할지 알 수 없지만 미래의 가치 있는 신화는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 ‘지구’에 관한 신화여야 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미래에 신화가 탄생한다면 이전의 신화들이 다루었던 문제를 고루 다루는 균형 잡힌 신화가 미래 신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인디언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주를 사랑하고 보존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담은 시애틀 추장의 편지를 소개하는데, 이 내용이 내 머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신화의 힘’을 읽은 지 몇일 째 되던 지난 주말이었다. 주일 미사에서 신부님이 사순절을 맞아 우리의 환경 문화를 되돌아보기 위해 엘고어가 제작한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를 다음주 미사 시간에 상영한다고 했다. 신부님이 얘기하는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해결방안, 우리가 갖아야 할 기본적인 자세 등을 듣다보니, 문득 켐벨이 얘로 들었던 ‘시애틀 추장의 명문(名文)’이 생각났다. 아하! 켐벨이 이야기 한 미래 신화의 대상이 바로 ‘불편한 진실’의 내용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주일이나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책방에 달려가서 불편한 진실 책을 한 권 샀다. 궁금한 점은 과연‘환경문제 극복이 켐벨이 이야기 하는 미래 신화의 주제로 적합한가’와 만약 주제로 적합하다면 ‘불편한 진실이란 책이 과연 켐벨이 이야기 하는 신화의 기본기능에 대해 적절히 설명하고 있는가’ 였다.

책을 사가지고 돌아와 살펴보니 신화 주제로서의 적합성은 모두 충족시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짐작했던 대로 신화의 기본기능 4가지 중 ‘신비주의 기능’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편한 진실은 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변화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사진들로 이루져 있었고, 책 말미에 우리가 직접 실행에 옮겨야 할 과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과학적, 사회적, 교육적 기능을 갖도록 설명하는 부분은 많은데 신비에 대하여 설명하는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책이었지만 신화를 놓고, 신화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이 부족한 점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듯. ‘다음에 불편한 진실의 개정판을 낼 때에는 우주의 신비, 자연의 신비, 인간의 신비 등 신비에 관한 내용을 보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화적 요소를 가미해야 환경문제가 신화차원의 문제로 부각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 책의 영향력이 훨씬 커질 것으로 생각됩니다.’엘 고어에게 충고의 편지를 써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재미있어 했다.

그러다가 신비에 관해서 어떤 내용을 설명해야 할까? 신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또 복잡해졌다. 말이야 좋은데 신비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은 일 아니던가? 또 신비를 설명하다가 보면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과학적,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잘 짜여진 불편한 진실이라 책의 기본 구조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이고 머리야! 그건 나중에 또 생각키로 하자. 오늘만 날이더냐? 이제 컬럼 마감시간도 다 되어가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래도 지난 열흘간은 참 보람된 시간이었다. 유명한 책을 두권이나 읽고,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으니...꿈을 꾼다는 것은 좋은 거다. 신나는 일이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아닐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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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03:16:02 *.70.72.121
이 참에 신비를 경험해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책 읽고 글 쓰기의 신비에 빠져들다보면 근사한 책의 저자가 되는 신비를 겪게 되고 그로인해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변화의 신비가 함께 할지 계속 궁금해 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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