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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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긷는 사람
이기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소리 포플러 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의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평안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을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 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
그대 영혼의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다오
나는 소낙비 맞고
가시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의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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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게 하는 시다. 스승님의 글을 읽으면 가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렇구나. 이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스승님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 새들도 잠 깨지 않은 시간에 더운 피 당신의 삶의 정수리에 부으신 스승님. 그 영혼의 물로 나를 보듬어 주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동네에는 우물이 마을보다 아래쪽에 있었다. 엄마는 힘겹게 물을 이고 오르막을 오르셨다. 동네 여자들은 우물에서 만났고 또 흩어졌다. 그 물이 있어 하루를 살았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힘든 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온 엄마가 있어 지금도 내가 살고 있구나.
두 분처럼 이른 새벽에 물을 길어 올 수는 없더라도 아침 산책으로 빛나는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 그 걸음 걸음에도 어떤 정기가 있어 빛을 낸다면 여태 이불 속에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내 작은 빛이 그대가 피우는 꽃송이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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