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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2일 21시 19분 등록

어린왕자 21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안녕?

넌 누구니?

난 여우야!

나하고 놀지 않을래? 난 아주 슬퍼.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 미안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니?

넌 여기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니?

난 사람을 찾아.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해. 그게 아주 거북해.

그들은 닭도 키워. 넌 닭을 찾니?

아니야, 나는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말이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관계를 맺는다?

그래. 넌 내게 세상에 흔한 아이들과 다를 게 없지.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물론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우 중 한 마리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돼.

너는 나한테 세상에서 단 하나가 되고,

나는 너에게 단 하나가 될 거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날 길들였나 봐.

그럴 수 있지. 지구 위엔 별별 것이 다 있으니까.

지구에서 그런 게 아냐.

다른 별에서?

.

그 별에도 사냥꾼이 있니?

없어.

아... 마음에 든다. 그럼 닭은?

없어.

, 이 세상에 완전한 데라곤 없군.

내 생활은 따분해.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고.

닭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쓸쓸해.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듯이 환해질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많은 발소리 속에서 네 발소리를 구별할 할 수 있게 될 거야.

다른 소리가 들리면 땅속에 숨지만, 네 발소리를 들으면 난 굴 밖으로 뛰어나가지.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그래서 밀은 나에게 쓸모가 없지.

밀밭을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어. 그래서 슬퍼...

그러데 네 머리칼은 금빛이구나.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신날 거야!

황금빛 밀밭을 보면 빛나는 네 머리칼이 생각나겠지.

그래서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조차 사랑하게 되고...

나를 길들여 주겠니? 제발...

그러고 싶지만 난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를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사람들은 자기가 길들인 거 외에는 알 수가 없단다.

이미 무얼 찾을 시간이 없어진 거야.

그들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게에서 산단다.

그러나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널 볼 거야.

말은 하지 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니까.

하루하루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거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3시부터 난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난 가슴이 뛰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의 옷을 입혀 놓아야 할지 난 알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의식이 필요해.

의식이 뭐야?

, 그것도 너무 잊혀져 있는 것이지.

그건 어떤 것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마다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춘단다

그러니 목요일은 그들에게 굉장히 신나는 날이야.

나는 그때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약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날마다 그게 그걸 거고, 내겐 휴일도 없을 거야.

 

이렇게 해서 어린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별이 다가왔다.

 

아...눈물이 날 것 같아.

미안해, 난 너를 조금도 괴롭히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길들여달라고 해서...

알고 있어.

그런데 넌 울려고 하잖아. 울지 마!

그래.

그럼...넌 하나도 얻은 게 없잖아.

얻은 게 있어. 내겐 저 밀밭 색깔이 있잖아.

장미들을 다시 보러 가렴.

장미들을?

네가 사랑한 장미꽃은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네가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다시 오면

선물로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줄게.

 

너희 장미들은

내 장미와 조금도 닮은 데가 없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 장미들은 옛날의 내 여우와 같아.

내 여우는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다를 게 없는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어

그러나 서로를 친구로 삼으면서 서로를 길들였어.

이제 내 여우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됐어.

너희 장미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 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 없을 거야.

물론 내 장미를 모르는 사람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내겐 그 꽃 한 송이가 너희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 덮개를 씌워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나비가 되라고 두세 마리 넘겨 놓고) 잡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준...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건 나의 장미꽃이기 때문이야.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한 거야.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는 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가 그토록 중요해진 건 네가 장미꽃에게

그만큼 많을 시간을 썼기 때문이야

...나의 장미를 위한

소중한 시간...

사람들은 중요한 걸 잊고 있어.

하지만 넌 그걸 잊어선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선 언제나 책임을 져야만 한단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꽃에게

책임이 있어.....

 


글 문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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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히 알았던 꼬리 아홉 달린 사악한 여우가 아니라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우라서 내심 놀라기도 했던 어린왕자와 여우 이야기를 시처럼 풀어낸 글을 만나 무척 기쁘다.

어느 가을, 돌담이 아름다운 길을 걷다가 카페에 들어섰다. 가을 햇살은 사선으로 내리쬐고 하늘도 땅도 온통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득 빛나고 있었다. 가장 곱게 물든 감나무잎을 주워 잔을 받쳐 커피를 마시다  팔 벌려 소리쳤다. “, 길들여지고 싶다. 그것이 누구든, 무엇이든 여우가 되어 따라 나서리!”  그 카페가 길들이기였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내 의식에 살아있듯이 그 풍경이 공감각적 느낌이 사라지면서 어린왕자가 온듯 신비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길들여진 나는 푸른 밤하늘에 별만 보면 그대를 떠올린다. 불 꺼진 촛불을 보면 그러하고 휙 사라지고 말없으면 그러할 것이고 한잔 술에 좋은 시 한편 선물받는다면 그러할 것이고 깊은 시선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멈춰선 누군가를 본다면 또 그러하리라.

나는 벌써부터 그대의 발걸음을 감지하기에 행복하다오.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가 되어 4시가 되기 전 3시부터 설레고 있으리다.   우리의 특별한 의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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