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정야
  • 조회 수 200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1월 28일 21시 19분 등록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머리를 득득 긁는 11월의 나무들이 종일 내린 비에 젖어 머리밑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시인의 말처럼 나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 숙여 울고 있다. 못된 인간 만나지 않는다면 몇 백 년 사는 네가 그렇다면 나는 오즉하랴.

육신은 의식의 수레라고 했던가. 육신은 기울어지겠지만 의식은 더욱 깊고 고매해지리니 그 어느 때보다도 11월의 나무는 근사하고 매혹적이다. 중년에는 자기 자신을 육신의 나이보다 그 나이의 의식과 동일시한다면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다가오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게 된다고 어디서 읽은 듯하다. 더 늦기 전에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면 낡아 부서질 수레를 예측하고 보듬어 주는 것. 자로 잰듯한 삶을, 신비를 즐길 줄 아는 삶으로 바꾸는, 그런 가치관의 전환 정도가 아닐까?

그대, 의식의 달콤한 축제를 즐길 줄 아는 지금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






IP *.12.30.10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58 [영원의 시 한편] 비밀의 목적 정야 2015.01.19 1796
3957 [영원의 시 한편] 나에게 던진 질문 정야 2015.01.17 3125
3956 [영원의 시 한편] 침묵의 소리 정야 2015.01.15 2153
3955 [영원의 시 한편] 그 사람 정야 2015.01.14 1820
3954 [영원의 시 한편]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야 2015.01.14 2549
3953 [영원의 시 한편] 어린왕자 21 정야 2015.01.12 2269
3952 [영원의 시 한편]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정야 2015.01.10 2534
3951 [영원의 시 한편] 국수가 먹고 싶다 정야 2015.01.08 1873
3950 [영원의 시 한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정야 2015.01.07 1847
3949 [영원의 시 한편] 물 긷는 사람 정야 2015.01.06 2271
3948 [영원의 시 한편] 생의 계단 정야 2015.01.05 2854
3947 [영원의 시 한편] 초대 정야 2015.01.03 1701
3946 [영원의 시 한편] 아침 정야 2015.01.02 1767
3945 [영원의 시 한편] 시(詩)처럼 살고 싶다 [1] 정야 2015.01.01 2216
3944 [영원의 시 한편] 공원 정야 2014.12.31 1920
3943 [영원의 시 한편] 우리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해도 정야 2014.12.30 2231
3942 [영원의 시 한편] 살아남아 고뇌하는 이를 위하여 정야 2014.12.29 1974
3941 [영원의 시 한편] 행복해진다는 것 정야 2014.12.26 2115
3940 [영원의 시 한편] 나의 기도 정야 2014.12.25 1843
3939 [영원의 시 한편] 사평역에서 정야 2014.12.23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