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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1일 21시 22분 등록

내가 태어난 날에

 

 

칼릴 지브란

 

 

1

어머니가 날 낳으신 날에

이십오 년 전 바로 그 날에

싸움과 갈등으로 가득찬 삶의 넓은 손바닥에

침묵은 나를 내려놓았네.

보아라, 나는 스무 다섯 번이나

태양의 주위를 돌아다녔고

달은 얼마나 무수히 내 주위를 돌았는지

알 수조차 없네.

그러나 이것만은 안다네.

내가 아직 빛의 비밀을 배우지 못했고

어둠의 신비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무 다섯 번이나

지구와 달, , 그리고 우주를 둘러싼 별들과

나는 함께 다녔네.

바다의 동굴들이 파도 소리를 되울리는 것처럼

이제 나의 영혼은 우주의 이름들을 불러본다네

영혼은 우주에 흐르고 있지만

그 힘은 알 수 없기에,

영혼이 높고 낮은 우주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 충만한 화음은 얻을 수가 없네.

 

스무 다섯 해 전에 시간은

이 이상하고 두려운 삶의 책갈피에 나를 썼다네.

보아라,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무수한 뜻을 가진 하나의 단어가 되었네.

해마다 그날이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기억들이

내 영혼에 밀려드는지!

그들은 내 옆에서 잠시 멈춰선다네

지나간 날들의 행렬과

별의 환영들이 줄지어 오고

그러나 그들은 쓸려가버리네

마치 바람이 지평선에서 구름을 날려 보내듯이.

그들은 내 집의 어둠 속에서 사라져버리네

멀고도 황량한 골짜기의 시냇물 소리와도 같이.

 

해마다 그 날이면

나의 영혼을 만들어 주었던 그 영혼들이

세계의 먼 끝에서 나를 보러 와

슬픈 기억에 찬 노래를 불러주네.

그리고는 사라져

지금의 삶 뒷편으로 숨어버리지

마치 탈곡 마당에 내려왔다가

알곡을 찾지 못하고 잠시 기웃거리다

다른 곳을 찾아나서는 새들처럼.

 

흐릿한 거울처럼, 지나간 삶의 의미들이

내 앞에 되살아오는 그 날에

잠시 그 안을 들여다보니

세월의 창백한 얼굴들밖에는 보이지 않네.

희망이나 꿈 같은 건 멀리 사라진

주름지고 늙어버린 얼굴만 남아 있다네.

거울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

거기에 나의 고요한 얼굴이 보이네.

슬픔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네.

슬픔에게 물어보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네.

그러나 슬픔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기쁨보다도 달콤한 말을 하리.

 

이십오 년 동안 많은 사랑을 했었고

때로는 다른 이들이 미워하는 것도 사랑했었네.

어릴 때 사랑하였던 것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 사랑하는 것을

삶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려네.

사랑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기에

아무도 이 사랑을 빼앗지 못하리.

 

때로는 죽음조차 사랑하였으니

죽음의 달콤한 이름을 불렀고

크게 혹은 은밀하게 사랑스런 단어로 말하였네.

죽음의 서약을 잊은 것도

깨뜨린 것도 아니었지만

삶 또한 사랑하는 걸 배웠다네.

죽음과 삶은

똑같이 아름답고 즐겁게 여겨졌으나

나의 동경과 열망이 커지면서

그들은 나뉘어졌고

나의 사랑과 부드러움을 갈라놓았네.

 

자유를 또한 삶과 죽음처럼 사랑했네.

나의 사랑이 자라면서

사람들이 독재와 치욕에 굴종하는 것을

알게 되었네.

어둠의 세대가 만들어내고

무지 속에 자라나서

노예의 입술로 닦여진 우상들에게

그들이 복종하는 걸 보게 되었네.

허나 내가 자유를 사랑하듯이

이런 노예들도 사랑하였고 불쌍히 여겼다네

그들은 눈 먼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더럽고 피에 굶주린 짐승들에게 입 맞추고도

보지 못하네.

사악한 독사의 독액을 빨면서도

느끼지 못하네.

제 손으로 스스로의 무덤을 파면서도

알지 못하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하였네

자유는 모든 걸 빼앗기고 쫓겨난

야윈 여인과도 같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녀는 외로운 거리의 집들 사이로 떠도는

유령이 될 때까지

지나가는 이들을 외쳐 부르지만

그들은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네.

 

다른 이들처럼 이십오 년 동안

나는 행복을 사랑하였네.

매일 새벽이면 깨어나 행복을 찾았네

마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방식대로는 아니었지.

그들의 집 근처 모래밭에서

행복의 발자국을 보지 못했고

사원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행복의 메아리도 들을 수 없었네.

나는 홀로 행복을 찾았네.

그러자 내 영혼의 속삭임이 내 귀에 들려왔네.

행복이란

마음의 보루에서 태어나 자란 처녀와도 같다.

행복은 결코

그 마음의 벽을 넘어서 오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찾으려고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보았지만

행복이란 여인의 거울과 침대, 옷을 보았을 뿐,

그녀를 보지는 못하였네.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였네.

, 나는 사람들을 참으로 사랑하였네.

내 생각에 사람들은 세 부류가 있으니

삶을 저주하는 이

축복하는 이

그리고 말없이 관조하는 이.

삶을 저주하는 이

그 불행함으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삶을 축복하는 이

그 은혜 때문에 사랑하며

삶을 관조하는 이

그 지혜로 해서 그를 사랑한다네.

 

 

 

 

2

이리하여 이십오 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가을 바람이 나뭇잎에 흩날리듯

나의 삶 위로

수많은 낮과 밤이 떨어져 내렸네.

산꼭대기로 가는 길에 지쳐버린 등산가처럼

오늘 잠시 생각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좌우를 둘러보지만

그 어디에도

이것이 나의 것이오하는 내세울만한

보물은 보이지 않네.

 

내가 지나온 수많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수확도 볼 수가 없네.

검은 잉크로 써내려간 흰 종이조각들과

산과 색조들이 뒤엉켜진 캔버스들이

낯설고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을 뿐.

이 안에 그 동안 내가 생각하고 꿈꾸어 온

사랑과 자유를 잘 싸서 묻었으니

씨 부리러 들판에 나간 농부가

저녁 무렵 희망과 기다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비록 내 마음의 씨를 잘 뿌렸다고 하지만

더 이상 바라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네.

이제 내 삶의 이 계절에 다다르고 보니,

지나간 일은

한숨과 슬픔의 안개 뒤로 감추어지고

다가올 일은

과거의 베일을 통하여 어렴풋하게만 보이네.

 

잠시 멈추고

나의 작은 창으로 삶을 바라보나니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외침이 하늘에 울려퍼지는 걸 듣기도 하네.

집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발자욱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영혼들의 교감과

간절한 열망,

마음의 그리움까지도 느낄 수 있다네.

나는 멈춰서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흙먼지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네.

햇빛에 어렴풋이 물든 구름 언저리

거기에 쓰여진 젊음의 송가를 읽고 있는 양

얼굴을 치켜들고 있는 소년들도 보이네.

또 젊은 처녀애들이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꽃처럼 미소짓고

사랑과 부드러운 열망으로 떨리는 눈꺼풀 뒤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네.

등이 굽은 늙은이들이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도 보이네.

지팡이에 기댄 채 땅만 보고 걷는 것이

마치 그 늙고 어두워진 눈으로

흙 속에서 잃어버린 보석을 찾는 것처럼 보이네.

창가에 기대고 서서 나는

이 모든 모습들과 그림자들이

조용히 도시 근처로 모여드는 걸 바라보고 있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를 보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과 부름의 침묵이 가득한 곳

그 높은 언덕과 작은 골짜기

꽃피는 나무와 떨고 있는 풀들

향기 가득한 꽃들이며 속삭이는 강물들

들판의 새들이 노래하고

모든 날개 달린 생명들이 윙윙거리는 곳.

 

나는 황무지 너머, 저기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네.

그 깊은 불가사의와 신비스러운 비밀

감춰진 보물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성난듯이 달려드는

물거품의 얼굴이며

치솟았다 다시 가라앉는 물보라를 바라본다네.

 

이제 바다 너 너머 광활한 공간을 바라본다네.

떠도는 세계들, 깜박거리는 별자리들

해와 달, 별과 별똥별이 있는 곳.

시작도 끝도 없는 법칙 안에서

영원히 끌고 당기는 힘들의 징후가 보이고

폭풍우와 창조, 그리고 변화가 있는 곳.

 

나의 창을 통하여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 지나간 이십오 년을 잊네.

그보다 더 앞서 지나간 모든 세월과

앞으로 오게 될 모든 시간조차 잊는다네.

그리하여 묵시와 신비로 가득찬 나의 삶이란

무한한 깊이와 높이의 공허 속에서 떨고있는

어린 아이의 한숨과도 같은 것이라네.

그러나 이 작은 원자, ‘라고 불리우는 이 존재는

활기차게 움직이며 외치나니

드넓은 하늘 위로 날개를 치켜들고

지구의 네 모퉁이로 두 손을 뻗어올리고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해주는 바로 그 시점에

중심을 잡고 섰다네.

 

그리고서 생명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는 지성소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외치듯이 들여왔네.

그대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삶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그대의 눈뜸이여! 깨달음이여!

땅의 어둠을 그 밝은 빛으로 감싸주는 낮이여!

자신의 어둠으로 하늘의 빛을 드러내주는 밤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계절들이여!

땅의 젊음을 새롭게 해주는 봄이여!

해와 영광을 더욱 빛내주는 여름이여!

노동의 열매와 수확을 안겨다주는 가을이여!

자연의 약해진 힘을 폭풍우로 되찾아 주는 겨울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감춰져 있다가도 마침내 드러나는 세월이여!

여러 세기 동안 파괴되었던 것을

재건하는 세대들이여!

완전한 날로 우리는 이끄는 시간이여!

해의 뒷편에서

삶의 고삐를 조심스럽게 모는 영혼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눈물에 젖어 있는 동안에도

평화에 갈채를 보내는 마음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쓰디쓴 빵을 먹으면서도

평화를 말하는 입술이여!”

 

 


  -----

오늘 햇살은 반짝였고 바람은 찼다. 양지바른 곳에 서면 햇살이 따스하게 얼굴을 감싸는가 싶다가도 이내 찬바람이 상큼한 차가움을 전했다. 오늘 그대를 둘러싼 하루는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내 영혼이 어제는 대낮에도 태양 뒤에 숨은 별을 찾더니 오늘은 외출을 적극 허용한다는 말을 들어선지 아침 일찍부터 바람을 타고 먼 하늘의 별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그대, 갑자기 바람이 일어 옷깃을 여미었다면, 머리카락 헝클어져 두 손으로 쓸어 넘겼다면 경하하는 내 마음을 바람이 전한 것이다. 저 멀리서 보면 나는 하나의 먼지일테니 보이기는 할까. 나를 떠올리는 시간은 오직 시를 읽는 시간뿐일지니 길고 길고 긴 시로 오래오래 머물게 할 수 밖에.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깨어 있는 삶의 중심에 선 그대에게 이 시를 바친다.

내 마음 그대에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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