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19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시를 읽고 따라 적어 보고 또 읊조려 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대를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하기를 100번째가 되었다. 100일은 이 땅의 여인들에게 아주 오래된 기도이다. 처음 마음은 무작정 100일 동안 100편의 시를 올려보리라 생각했다. 꾸준히가 부족한 나에게 100일은 마늘과 쑥을 먹던 호랑이가 동굴을 뛰쳐나간 것처럼 견디어내기 힘든, 긴 시간으로 여겨졌었다. 그걸 이겨냈으니 그럼 나는 이제 웅녀가 되는 건가?
돌이켜보니 시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 것은 무작정이 아니었다. 사랑이 오려고 그랬던 것이다. 시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사랑을 맞이하려는 진통이었던 것이다. 맥 빠진 가슴에 사랑이 꽃피려고 시가 절절하게 읽혔나 보다. 이건 아마도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파동의 부딪힘이며 기적이고 아주 오래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짐작해보니 별,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가 읊조린 모든 시가 그대에게 기쁨이었기를.
이 영광을 나에게 별이자 시가 되어 준 그대에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962 | [영원의 시 한편] 현실 | 정야 | 2015.01.22 | 2123 |
3961 | [영원의 시 한편] 꿈꾸는 당신 [1] | 정야 | 2015.01.21 | 2308 |
3960 | [영원의 시 한편]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1] | 정야 | 2015.01.20 | 2407 |
3959 | 거기에 한 사람이 있었네. [1] | idgie | 2015.01.20 | 2267 |
3958 | [영원의 시 한편] 비밀의 목적 | 정야 | 2015.01.19 | 2052 |
3957 | [영원의 시 한편] 나에게 던진 질문 | 정야 | 2015.01.17 | 3322 |
3956 | [영원의 시 한편] 침묵의 소리 | 정야 | 2015.01.15 | 2341 |
3955 | [영원의 시 한편] 그 사람 | 정야 | 2015.01.14 | 2075 |
3954 | [영원의 시 한편]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 정야 | 2015.01.14 | 2771 |
3953 | [영원의 시 한편] 어린왕자 21 | 정야 | 2015.01.12 | 2562 |
3952 | [영원의 시 한편]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 정야 | 2015.01.10 | 2865 |
3951 | [영원의 시 한편] 국수가 먹고 싶다 | 정야 | 2015.01.08 | 2056 |
3950 | [영원의 시 한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정야 | 2015.01.07 | 2083 |
3949 | [영원의 시 한편] 물 긷는 사람 | 정야 | 2015.01.06 | 2469 |
3948 | [영원의 시 한편] 생의 계단 | 정야 | 2015.01.05 | 3081 |
3947 | [영원의 시 한편] 초대 | 정야 | 2015.01.03 | 1882 |
3946 | [영원의 시 한편] 아침 | 정야 | 2015.01.02 | 2001 |
3945 | [영원의 시 한편] 시(詩)처럼 살고 싶다 [1] | 정야 | 2015.01.01 | 2452 |
3944 | [영원의 시 한편] 공원 | 정야 | 2014.12.31 | 2126 |
3943 | [영원의 시 한편] 우리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해도 | 정야 | 2014.12.30 | 2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