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89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정윤천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혼자서 부르며 왔던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만을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서늘한 열망의 가슴이 바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속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거기에 세상을 한꺼번에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과도 같았을, 그런 일순과의 마주침이라면,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손가락 빗질인 양 쓸어 올려보다가, 목을 꺾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려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혼이라도 그쪽으로 머릴 두려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이 기분은 뭐지? 싱숭생숭한 이 기분.
나도 내 마음 모르겠는, 이 묘한 기분.
외로움인가?
쓸쓸함인가?
그리움인가?
아련함인가?
고독함인가?
가끔씩 재발하는 이것은 무슨 병인가?
봄에는 봄바람 탓이었고 지금은 뒹구는 낙엽탓인가?
왜 외로운가?
에리히 프롬은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이다’고 말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인간이기에 외롭다니!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니라는 것이지 않는가. 덧붙여 말하길, 그럼에도 사랑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모약일까? 사랑의 고통이 외로움의 고통보다 덜 하다고 여기나보다.
그렇다면, 나도 사랑을 붙잡고 싶다. 마음이라도 그쪽으로 두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렇다면... 멀리 있는 사랑이라도 잡고 싶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938 | [영원의 시 한편] 선물 | 정야 | 2014.12.22 | 1886 |
3937 | [영원의 시 한편] 되새 떼를 생각한다 | 정야 | 2014.12.21 | 1967 |
3936 | [영원의 시 한편] 아말피의 밤 노래 | 정야 | 2014.12.20 | 2847 |
3935 | [영원의 시 한편] 고독 | 정야 | 2014.12.19 | 2277 |
3934 | [영원의 시 한편] 별 | 정야 | 2014.12.18 | 1915 |
3933 | [영원의 시 한편] 오래된 기도 | 정야 | 2014.12.16 | 2031 |
3932 | [영원의 시 한편] 가을 | 정야 | 2014.12.12 | 1924 |
3931 | [영원의 시 한편] 내가 태어난 날에 | 정야 | 2014.12.11 | 2170 |
3930 | [영원의 시 한편] 영혼에 관한 몇 마디 | 정야 | 2014.12.10 | 2190 |
3929 | [영원의 시 한편] 두 번은 없다 | 정야 | 2014.12.09 | 8395 |
3928 | [영원의 시 한편] 사는 이유 | 정야 | 2014.12.08 | 1865 |
3927 | [영원의 시 한편]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야 | 2014.12.06 | 2011 |
3926 | [영원의 시 한편] 고요에 헹구지 않으면 | 정야 | 2014.12.05 | 2102 |
3925 | [영원의 시 한편] 일찌기 나는 | 정야 | 2014.12.04 | 2273 |
3924 | [영원의 시 한편] 사랑하는 손 [1] | 정야 | 2014.12.03 | 2131 |
3923 | [영원의 시 한편] 내력 | 정야 | 2014.12.02 | 2163 |
3922 | [영원의 시 한편] 첫사랑 | 정야 | 2014.12.01 | 2150 |
3921 | [영원의 시 한편] 푸른 밤 | 정야 | 2014.11.29 | 2133 |
3920 | [영원의 시 한편] 11월의 나무 | 정야 | 2014.11.28 | 2008 |
3919 | [영원의 시 한편] 인연서설 | 정야 | 2014.11.27 | 2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