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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6일 23시 41분 등록


도망가는 연인

 

이선영

 

 

왜 그를 사랑하지?

바람처럼 살고 싶어서요.*

 

 

아름다움은 결핍이지

연초록 대나무 숲을 둘러봐

새벽 이슬이 채 베갯잇 연정을 걷어 가지 않은

아름답지만 눈도 없고 귀도 들리지 않아

게다가 우리를 들어올려 줄 두 개의 팔 따위란 원시의 몸에서나 돋아난 것일 테니

 

그 동정 없는 장대나무 숲을 우리는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있지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 버린 두 팔과 팔의 질기고 질긴 얽힘이니까

구부러진 골목길로 우리를 연거푸 몰아넣는 생활과 우리의 몸을 늘 거기 문설주로 세워 두는 의무에,

서로를 못 알아보게 될 때까지 늙어가고야 말 육체에,

우리는 지금 쫓기고 있는 중이지

대나무 숲은 우리를 잠시 그 무관심 속에 풀어 놓지만

언제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흉기가 되어 날아올지 몰라

아름다움은 적이 취하면 금방 무기로 변하는 야속함이거든

 

내가 그를 따라 도망 중인 이유는

몸을 넘어뜨리며 바람처럼 내달리려는 그의 의지 때문이지

그가 나를 떨구어 내지 않는 이유는

나만이 그 바람을 읽어 내는 야생화이기 때문이야

 


*장이머우 감독 영화 연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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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속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영화를 보았다. 아름다운 숲과 이미지의 잔상이 오래 남는, 칼끝에 떨어지는 꽃잎 같은 영화다. 30년의 사랑보다 3일의 사랑이 더 깊고 간절하구나. 사랑은 찰나에 심연속으로 꽂히기도 하는 것이구나.

사랑은 정말 서로의 마음에 어떻게 깃드는 걸까? 모르긴 해도 서로의 영혼에 관통하는 어떤 교차점은 분명 있는 듯한데, 눈길일까? 손길일까? 오래된 파장일까? 사랑의 화살이 심장에 꽂히는 순간인가? 흰구름 같은 인생의 회한에서 붙잡고 싶은 가치관의 일치함인가?

 

나는 꽃같은 여주인공보다 영화를 보고 이토록 빠져들게 시를 쓴 그녀가 더 아름답다연초록 대나무 숲과 은나무 사이를 질주하며 그들의 대사를 따라 해본다. 그녀 또한 주인공이 되어 그 숲을 수없이 내달렸으리라.


-궁금한 게 있어요, 진심인가요? 나에 대한 마음.

=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오, 앞만 보고 갈뿐 한곳에 머물지 않소.

-멈추고 생각을 해 보세요

=바람은 멈추지 않소.

-날 위해서도?

=바람은 스쳐만 갈뿐 흔적을 남기지 않소.

-그럼 바람처럼 갈 길 가세요. 난 상관하지 말고.

 

=지금 그대 혼자 어디로 간단 말이오.

-나도 바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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