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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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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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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0일 00시 23분 등록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모두 아시다시피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입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입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강의에서 나는 청중과 함께 이 시를 낭송하곤 했습니다. 담쟁이덩굴의 생태를 이해하고 함께 낭송하면 큰 감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였던 시인은 올 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이후 이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시인과 정치적 지향이 다른 분들에 의한 움직임이었을 것입니다. 벽을 넘는 담쟁이의 모습, 그것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의 모습이 정치적으로 불순하게 여겨진다는 판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행이 여론에 힘입어 시를 삭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해프닝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정작 담쟁이덩굴이 인간들의 그런 왈가왈부를 들었다면 얼마나 한심해 했을까도 싶었습니다. 담쟁이는 가는 줄기로 햇빛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팔자로 태어납니다. 벽이나 다른 나무를 기어오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담쟁이는 또 대부분 수분이 부족한 여건을 극복하며 살아내야 합니다. 벽을 오를 때 곧게, 수직으로 오르지 않고 대부분 비스듬하게 줄기를 뻗어올리면서 옆의 줄기와 교차하거나 연대하는 모습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제 부족한 수분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 것입니다. 한 가닥으로 곧게 올라가는 것보다 비스듬히 기면서 연대하여 오르면 벽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더 많이 자신과 서로의 뿌리 쪽으로 모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담쟁이가 여럿이 손을 잡고 벽을 넘는 모습은 바로 제 결핍을 극복하려는 분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니 담쟁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인간들의 논란이 얼마나 한심할까요?


비슷하게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 경험이 엊그제 또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날, 함께 유기농 공부를 했던 선배로부터 투표 독려 문자를 받았습니다. “내일 새로운 50년을 위한 투표에 모두 참여하여 세상을 바꿀 ‘그 후보’를 꼭 선택합시다.” 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님 ‘그 후보’ 되면 세상이 바뀌는 거유?” 그가 답했습니다. “당근이지 ^^ 아주 천천히 단단하게.”또 어떤 지식인들은 ‘그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이민을 가겠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전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농부 형님과 어떤 지식인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ㅎㅎ 세상이 어케 좋아져유? 권력에 그딴 걸 기대하지 마셔유. 그래도 세상을 조금 덜 험하게 만들 넘을 찍는 것일 뿐이쥬~”


선거 개표방송의 막바지를 보면서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그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실패한 사람도 넘어야 하는 벽이 있다. 자신의 반대 편 정치인이 된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주장했던 부류의 사람들도 넘어야 할 벽이 있다. 내 편 아니면 적으로 여기는 그 위험한 사유체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성 결핍사회의 폐해가 50년 뒤에도 지속된다면 우리 미래는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담쟁이가 왜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벽을 넘어서야 하는지, 그 모습을 이념의 메타포로 삼지 않고, 그들의 가난과 고단함이 얼마나 대단하면 그런 모습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문화를 만들 수 없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또 얼마나 소모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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