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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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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5일 05시 48분 등록

lonelytree.jpg


그대가 내게 물었습니다. 산 중 홀로 있는 밤이 무섭지는 않은가, 또 외롭지는 않은가?

나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무릇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지극히 작은 존재에 불과한 법. 어찌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인간은 본래 탯줄을 끊고 나는 순간부터 이미 모체와 떨어지는 상실감을 안고 태어나는 법. 어찌 홀로 있으면서 외로움 없겠습니까! 나는 울도 담도 없는 이곳 오두막의 밤을 더러 두려워하고 외로워합니다. 아마 중도 산중의 밤을 두려워하고, 또한 외로워할 것입니다.

 

그대가 사는 아파트의 현관문은 견고하다 했습니다. 강철 빗장이 세 개나 되고 지문을 인식하는 잠금 장치도 있다 했습니다. 그 옛날 초가집이나 너와집의 사립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한 철문을 가졌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몇 달 전 이사온 이웃을 알지 못한다 했습니다. 심지어 언젠가는 몇 개월 전 옆 집의 노인이 쓰러져 죽었는데도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냈다 했습니다. 그 노인이 겪었을 긴 시간의 외로움을 누구도 나누지 못했다 했습니다. 언제고 내가 그 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 했습니다. 아이에게는 낯선 사람의 친절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튼튼한 빗장 속에서 불통과 동거 중입니다.

 

얼마 전 아침에는 서울에서 KTX를 탔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가서 오찬 미팅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저녁 세미나에 참가했다 했습니다. 와중에 3G 휴대전화로 학원에 들른 아이의 낯 색을 살폈고 그 이의 귀가 시간을 확인했다 했습니다. 하지만 고향의 부모님이 노구를 이끌고 홀로 병원을 다녀오신 것을 알지 못했다 했습니다. 너무 바쁜 나날이어서 그분들이 어떻게 또 하루를 보내셨는지 살뜰하게 찾아 뵙거나 여쭙는 일이 차마 쉽지 않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빠르고 편리한 삶 속에서 단절을 양육 중입니다.

 

그대가 계신 곳에는 편리와 효율과 세련이 함께 살고, 이곳 산중에는 불편과 비효율과 투박함 속에서 들짐승·날짐승과 초목과 별들이 함께 삽니다. 하지만 이곳 대문도 담도 없는 오두막에서 느끼는 나의 두려움은 삭막한 도시의 밤길을 홀로 걷는 것만 못합니다. 이 곳에서 겪는 나의 외로움은 시끌벅적 현란한 도심에서 느끼는 소외감과는 다릅니다. 그대는 모르실 겁니다. 내 두려움과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이곳 나의 두려움은 대자연의 신성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두려움입니다. 내가 지금 외로운 것은 순전히 더불어 살고 있는 저들 짐승과 초목과 별들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저들의 의미 있는 수런거림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저들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이 되지 못해서 입니다. 내 두려움과 외로움은 수천 년간 이곳에 나고 살고 묻히고 흙으로 돌아가며 이어왔을 생명들이 쌓고 이어오며 기억했던 연대의 실마리를 찾아낼 때 사라질 것임을 나는 압니다. 오늘 문득 그대의 그것도 어쩌면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밤 저 별들이 그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꼭 그리 말하는 듯 합니다.

IP *.142.1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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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호
2009.02.05 08:36:39 *.39.225.83
오래 전 부터 이곳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아왔습니다. "마음이 많이 가면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들게 됩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눈매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옵니다"고 그러셨던가요. 선생님의 이야기는 저를 흔들었고, 이야기를 통해 저를 바라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달 부터 매주 목요일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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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08:52:42 *.230.220.92
자연은 가슴으로 우리와 소통을 하고자 하지만 인간들은 머리로 일방통행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용규샘..
봉삼주.. 항상 그리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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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05 09:38:57 *.190.122.154
모르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그래서 자연을 두려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담담하게 대면할 수 있는 용기(맞서는 아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을 알고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한 두려움을 맞이할 때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근래에 보기드물었던 추위도 이제는 한 풀 꺽인 듯 합니다. 나무에서 풀에서 봄을 준비하는 개나리의 망울에서 그리고 공기의 흐름이 바뀜을 느끼면서 봄이 멀지 않음을 알아채립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어제가 입춘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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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2.05 14:53:07 *.48.246.10
마음에 빗장을 걸어놓고 살았던 시간만큼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마음빗장을 풀면 편안해지는 사실을 알면서도, 삶이 팍팍해질수록 경계심의 칼날만 서투르게 세울뿐, 마음빗장 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맘이 그렇게 썩 맞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저 사람도 나와 같이 삶에 대해 배워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대한다면 마음빗장 풀기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마음을 무찔러오는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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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02.05 17:07:29 *.253.249.69
오늘따라 창밖의 바다는 적막하리 많큼 조용하다. 멀리보이는 오륙도가 손에 잡힐것 같이 곁에 있어 보이고, 홀로 창가에서 맑은 하늘과 푸른바다의 적막을 즐기다가 시같은 그대의 글귀 속으로 들어같다.

자넨 아마도 대동산의 산신인 모양이다.
아님! 맛이 완전히 간 시인인 모양이다.

나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는 무섭지 않고 적막이 감도는 산은 그렇게도 무서워하니 말이다.
그대의 감성속에서 나오는 자연의 글귀는 너무 아름답다.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他 吉"
순수한 마음이 자연이 그대를 받아드릴 것이다. 순수한 심행이 글이되어 우리곁으로 돌아 올 것을 나는 예언한다. 최고의 선율이 책이되어 만인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 바다의 노질 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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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hine
2009.02.05 18:21:16 *.221.152.177
타인과의 소통, 자기와의 소통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자연과의 소통은 관심권 밖이었지요.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고 조화를 이뤄가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지 소통의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연과의 불통, 그로인한 두려움과 외로움은 미처 떠올려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군요. 자연과의 소통, 참 아름다운 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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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06 15:38:59 *.229.128.139
이학호님_ 글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사람에게 이 보다 큰 용기를 주실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

깜장별님_ 깜장별 샘! 어케 이 공간을 다 아시는지요? 여하튼 반갑습니다. 학교에도 봄기운이 느껴지지요? 봉삼주만 그리워 마시고 저도 좀 그리워하셔요 ^^ ㅋㅋ

햇빛처럼님_ 우리의 절망과 두려움이 근원적으로는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공동체의 정신과 문화를 포기하고 자본과 편리와 효율의 문화만을 지나치게 좇는 데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며 이 글을 썼습니다. 이 숲에서 제가 느끼는 두려움도 바로 제가 숲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이 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썽이리님_ 메아리가 없는 산은 통상 시원하고 장쾌한 산이지만 재미는 덜한 산입니다. 썽이리님이 제게 늘 메아리처럼 여운을 깃들여 되돌려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초아선생님_ 선생님 댁 거실에 앉아 있는 듯 합니다. 오륙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날에는 그곳이 더욱 아름답겠지요? 용기를 주시는 선생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완전히 맛이간 시인'으로 살 수만 있다면 저는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미소지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

moonshine님_ 자연과의 불통이 자연에게 사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이듯, 도시와의 불통이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일 것입니다. 어디에 있건 지금 우리에게는 모두 복원해야 할 시스템과 문화가 있어 보입니다. 이 주제에 깊이 빠져들고 싶은 요즘입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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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08 21:49:25 *.220.176.66
아름다운놈님..

숲공동체와 하나되지 못함을 두려워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이래저래 부끄럽습니다.

나의 자로는 그 깊이와 넓이를 재기 힘든 분이시군요.

좋은 밤 보내시고 다음 주 목요일을 기대하겠습니다.

전부 다 이해할 능력은 안되고 주시는 좋은 말씀 반쯤씩만 받아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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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9.02.08 23:16:09 *.86.177.103
나무가, 산이, 그리고 자연의 온갖 것들이 그냥 나와 하나임을 느끼는 것은 겸손하지 못함일까요?
그들을 만나면 많이 많아집니다. 실없이 헤헤 거리고 토끼마냥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합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슬픔이 아니라 힘입니다. 도회지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 같은것 말입니다. 자연이 제게 이러한 것은 설움이 넘쳐나던 내 유년시절을 감싸안고 토닥거려 준 그 손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대 유년의 숲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멀리서 들리는 숲의 생명소리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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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13 10:55:05 *.229.154.144
햇빛처럼님_ 오늘은 비가 오는 군요. 다행한 일입니다. 주변 마을 말라가는 저수지가 가득해지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정희샘_ 제 유년의 숲은 놀이터였고 식량의 창고였고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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