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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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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4일 20시 40분 등록


월급쟁이 금욕주의자


멀리 있는 친구와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잡는다. 연말이고 연시라 벌여놓은 일들이 발목을 잡는 중에 일요일 저녁이 어떤지 물어온다. 나는 머뭇거리다 다른 날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알 수 없는 반항심이 생긴다. 왜 일요일, 밤 늦게까지 친구와 수다 떨며 소주잔을 꺾을 수 없는가. 믿기 싫지만 이미 회사가 나의 일요일을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일주일의 시작을 가뿐하고 상쾌하게 시작하고 싶다. 발랄할 순 없더라도 지끈거리는 숙취로 월요일을 망치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회사에 매여 산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목줄이 매여 있는 것 이상으로 회사를 위해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가다듬는다. 오버를 이성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치켜세운 건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를 포함한) 그들을 일러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라 부르겠다.

 

그것은 가두어진 생활이다. 절제라 부르기도 하고 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제는 넘쳐나는 욕망을 모조리 자르고 베어내는데 월급쟁이들은 일상의 모든 시간을 회사 시계추에 맞춰 놓아 욕망을 생각할 시간조차 스스로 베어버린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제일이다. 그러나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는 스스로 잘라버린 욕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욕망의 욕망까지 스스로 억압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인 월급쟁이들은 삶의 의미 있는 시간들을 조금씩 깎아낸다. 그것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아니요 일상의 신성한 리추얼로 보기도 힘들다. 사납게 말하면 그저 그런 째째함이다.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어보라.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들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회사를 다니며 삶을 허송했다. 의미를 찾으려 헛고생은 그만하기로 한다. 고용된 자로서 회사 업무와 자기성장을 연결 짓는 세상의 말들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 월급이 많고 적음을 저울질하는 내가 못마땅했다. 많지 않은 돈을 벌어 보겠노라고 아이들과 놀기를 포기하고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는 수전노의 쪼잔함을 후회한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었고 하기 싫은 농담을 했다. 그것이 처세라 믿었던 청승과 주책, 비열한 노회함을 자책한다. 살면서, 바른 사람들이 제 모든 걸 바쳐가며 돈과 자본을 좇는 일을 많이 봐왔다. 반듯하게 닦인 목소리, 조리 있는 말투, 적당한 농담과 비유를 섞을 줄 아는 위트, 예의 바른 옷차림, 흐트러짐 없는 머리, 박식한 분석력, 잘 짜여진 논리, 유창한 영어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지만 그 또는 그녀가 자본이 만든 하나의 인조 인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는 인조 인간을 지향한다.

 

나는 그들과 같을 순 없다는 마음으로 소심한 복수극을 펼치기로 했다. 업무 시간에 글을 쓴다. 필요한 일만 필요한 수준으로 처리해 나간다. 소귀 신영복은 도무지 쓰여지지 않을 것 같은 감옥에서도 면벽수행을 마다하지 않고 글을 썼다. 초빼이는 주종을 가리지 않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조건에서도 나는 나여야만 한다. 나를 월급쟁이로 혼동하지 않으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 글쓰기였다.

 

단언컨대 일요일 밤과 평일 밤에 딴짓할 수 있는 배짱은 우리를 월급쟁이 초라한 일상성에 머물지 않게 하는 자유정신이다. 밤 늦게 책 읽고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월급쟁이, 일요일 밤 오래된 친구와 욕지거리 섞어가며 즐겁게 나누는 대화, 다음 날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산을 걸을 수 있는 자유정신이 월급쟁이 째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월급쟁이가 월급쟁이이기를 멈출 때 자유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다. 세상은 그 자리 그 수준 그 위치에서 그저 그렇게 머무르기를 원한다. 월급쟁이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한다. 일상은 피곤하고 스트레스는 충만하다. 쉬지 않으면 일할 수 없게 한다. 아니다, 쉬지 않고 일했으면 하는 게 세상이다. 쉬는 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수용하게 한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해야 한다체를 극렬하게 경계하지만, 일상 속에 자유정신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자유를 얻고 싶으면, 성숙하고 싶다면 먼저 자유의 길, 성숙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그 길은 있다. 분명히 내 안에 그 길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혹여 그 길을 가다가는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곧 일어날 능력 또한 나에게 있다. 다칠 수 있다.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그런데 말야, 너 아니,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뼈는 빨리 붙는다? 몰랐지? 금욕은 지나는 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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