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1820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1년 4월 6일 16시 40분 등록

초라한 나를 위한 산의 처방

 

누구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온다. 스스로 초라한 경우를 맛본다. 동료와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난 뒤, 상대방의 높은 스펙Specification에 기가 눌린 뒤, 상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유아적인 질책을 받고 난 뒤,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이럴 땐 산을 올라 지구 밖으로 잠시 다녀오라.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상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너를 초라하게 만들어 주겠어.” 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괴물이다.

 

글을 옆길로 잠시 빼면, Spec.이란 것이 물건의 사양을 말하는 것인데 인간이 물건이 되어 스펙을 두고 판단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됐다. 물건과 상품과 인간의 층위가 다르지 않고 값 매겨지는 원리와 취급되는 양상이 다르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까지 현금계산으로 환원되는데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얼마만큼의 이익이 되는가를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굴리게 된다. 말 한마디, 만나는 사람, 내가 보는 영화조차도 철저하게 내 미래 이익의 관점에서 선택하거나 거부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인간적인 만남이나 교감이 불가능해지는 국면에 이르고 마는데 결국 나 스스로도 자신으로부터 값 매겨지는 내재적 자기사물화 형태로 전개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교환가치가 높을수록 상품화된 인간으로서 현금성은 높아지고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마치 거세된 야생과 같은 것. 야만의 시대는 오래 전 지나갔지만, 황폐화된 인간은 여기저기에 득실거린다. 모든 사람이 돈과 부를 좇는데 혈안이 된 사회는 아무리 가져도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가 생겨나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부에 관한한 상실감에 빠져 있다. 이 상실의 시대에 초라한 나는 필연적이니 앞서 당신은 잘못 없다고 말한 이유이자, 알리바이다.

 

글을 다시 길로 돌려놓으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세상에 쫄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산으로 가야한다. 산으로 가서, 커다란 지구 짐승의 등짝을 걷자. 거대한 화강암 피부를 한 산을 오를 때 시선은 천천히 높아진다. 바라보는 시야를 멈추지 말고 이어가면 산은 무한히 확장하는 우주로 우리를 데려 간다. 지구를 Bird view로 본다. 우리 옆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먼지 덩어리에 불과한 지구, 둥둥 떠다니는 육지에서 일어나는 70화학적 찌꺼기들의 사사로운 일중에 하나 일뿐이다. 이 시선으로 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이 된다.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는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고 지구 관점에서 나는 동일한 인간류의 상이한 형태일 뿐이다. 거대한 산악지괴가 융기하며 스스로 두터운 층을 파괴하고 두께 1,000미터의 외피를 들어 올리거나 찢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시 여기,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조금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이 방법은 아무리 잘난 인간도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는 평균성에 기대어 남들과 그리고 주변과의 불필요한 비교를 단절하는 연습이다. , 이제 됐다. 상상하라. 무엇을 하더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기가능성에 대한 최면을 이때 걸어보는 것이다. 언젠가 스승이 말했듯 우리는 북극성에 닿을 수 없다. 그러나 북극성은 나침반의 끝을 떨리게 한다. 닿을 수 없지만 내 삶을 떨리게 만드는 삶에 북극성 하나를 상정하는 일은 지루한 삶을 중단시킨다. 계획은 사무적이고 목표는 가깝고 목적은 전략적이다. 내 마음 속 가벼운 꿈 하나, 주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흘려 듣거나 웃음거리로 여기는 첨단 하나를 간직한 나는 월납 백만 원짜리 보험보다 든든하다.

 

비록 우리는 땅을 기어 다니는 수평의 삶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겠지만 수직의 첨단을 향하는 작은 꿈 하나는 아무도 말릴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어느 순간 거북목을 꼿꼿이 그리고 천천히 척추도 세워 첨단을 바라본다. 오래된 서류가방을 스스로 던지고 피켈로 바꾸어 잡는다. 잘 차려진 밥상 대신에 거친 코펠 밥을 나누어 먹고,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넣은 단출한 배낭을 둘러매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든다. 갈기 같은 머리가 휘날린다. 첨단에 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로소 삶은 우리를 떨리게 한다.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21.04.13 13:40:30 *.52.254.111

登鸛雀樓(등관작루) - 관작루에 올라

王之渙(왕지환)

 

白日依山盡 (백일의산진)

黄河入海流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 (욕궁천리목)

更上一層楼 (갱상일층루)

 

해는 산자락을 따라 기울어 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는데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어

다시 한 층 누각을 더 올라가네


누각 대신 산이니, 훨씬 더 멀리 아름답게 보이겠지요 ?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36 [수요편지] 미시적 우연과 거시적 필연 [1] 불씨 2023.11.07 474
4335 충실한 일상이 좋은 생각을 부른다 어니언 2023.11.02 480
4334 [수요편지] 장미꽃의 의미 [1] 불씨 2023.12.05 486
4333 작아도 좋은 것이 있다면 [2] 어니언 2023.11.30 491
4332 뭐든지는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것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 [2] 어니언 2023.11.23 508
4331 등 뒤로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3] 어니언 2023.12.28 511
4330 화요편지 - 오늘도 덕질로 대동단결! 종종 2022.06.07 520
4329 [수요편지] 똑똑함과 현명함 [1] 불씨 2023.11.15 525
4328 [수요편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1] 불씨 2023.12.27 544
4327 [늦은 월요 편지][내 삶의 단어장] 2호선, 그 가득하고도 텅빈 에움길~ 2023.09.19 545
4326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546
4325 [내 삶의 단어장] 엄마! 뜨거운 여름날의 수제비 에움길~ 2023.11.13 548
4324 [내 삶의 단어장] 발견과 발명에 대한 고찰 [1] 에움길~ 2023.07.31 550
4323 용기의 근원인 당신에게 [1] 어니언 2023.12.14 550
4322 역할 실험 [1] 어니언 2022.08.04 552
4321 [내 삶의 단어장] 오늘도 내일도 제삿날 [2] 에움길~ 2023.06.12 553
4320 [월요편지-책과 함께] 존엄성 에움길~ 2023.09.25 555
4319 [수요편지] 앞만 보고 한걸음 [1] 불씨 2023.11.01 557
4318 [월요편지-책과 함께] 인간에 대한 환멸 [1] 에움길~ 2023.10.30 558
4317 두 번째라는 것 어니언 2023.08.03 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