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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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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4일 22시 11분 등록

길은 묻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으려 등산화 끈을 조였지만 결국은 내 목을 조이고 말았습니다. 풀어지는 끈을 그저 놔두고 결국 넘어지는 쪽을 택했더라면 삶은 분명 이리 조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는 인기있는 사람인가, 내 사는 집은 봐 줄만 한가, 산에서 바라보는 지난 인생은 진폐를 입가에 덕지덕지 붙이고도 욕망을 감출 수 없어 다시 탄가루를 삼키는 막장과 다를 바 없는 충동이었습니다.

 

기진맥진하며 돈을 벌고 번 돈을 죽어라고 탕진하니 아무도 모르는 이가 볼 땐 이 무슨 막장인가 하지 않겠냐 말이지요. 기를 쓰고 모으지 않고, 모은 돈을 다시 모으는 일에 쓰는 일을 중단하면 될 테지만 그게 어렵지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에 세상은 꼭 말대답을 합니다. 이때 세상이 꺼낸 솔루션이 좋아하는 일을 해라, 자기 자신을 찾아라는 현자같은 말입니다.  

 

그 말들 앞에는 사실은 더 모으고 더 쓰기 위해가 생략된 채 세상에 떠 다닙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과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일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시키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수단으로 여기는 생각입니다. 광범위한 불행의 끝으로 떠미는 현자들의 말입니다.

 

나의 묵묵하고 발설되지 않는 이 불행이 누군가에겐 행복이 될 겁니다. 그렇게 시스템에 의해 수단이 된 우리는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삶을 송두리째 봉사하는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인이 그 누군가를 알지 못한 채 수단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막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요즈음 칸트라는 철학자의 사유를 읽고 있습니다. 책이 어려워 원전 읽기를 중단하고 그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 가라타니 고진의 시선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너의 인격과 모든 타자의 인격에서의 인간성을 결코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p10. 재인용)고 말할 때 저는 놀랐습니다. 그의 말은 높은 인간학의 정점 같았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수단이 끼어들지 않습니다. 고양이와 고양이는 서로를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안하는지 조차 인간은 모릅니다). 태양이 자신을 태우는 데 목적이 있을까요?

 

산이 모든 사람에게 길을 이리 저리 내어주는 것도 누군가 걸어가야 할 길을 너만을 위해 도모하지 말고 마루금을 걷듯 그저 살아보라는 말 같습니다. 말 장난 같던 형이상학에 한 줄기 파죽지세가 지나간 듯 사유의 힘을 느낍니다. 인간으로 사는 데는 답이 없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존중하고 내 몸, 내 마음 같이 대하라는 말을 이리도 멋지게 하다니요.

 

그렇습니다. 답은 없습니다. 애초에 답이 있었다면 사는 건 흥미롭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자신 있게 삽시다. 어떤 권위에 눌리지 않고 어떤 류의 인간을 만나더라도 지금 모습에 당당하고 주눅들지 않는 의젓함으로 말입니다. 열심히 산 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마음대로 살아본 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요. 이 사람보다 힘든 인생이 있나 싶지만 모진 시대 모진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한 칼럼에 두 개 이상의 인용구는 싣지 않는다는 모종의 약속을 어겨야겠습니다. 루쉰의 이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갈림길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 숨 자고 일어나서 갈 만하다 싶은 길을 골라 다시 걸어갑니다. 우직한 사람을 만나면 혹 그의 먹거리를 빼앗아 허기를 달랠 수도 있겠지만, 길을 묻지는 않을 겁니다. 그도 모를 테니까요.”(루쉰, 쉬광핑에게 보내는 편지, 1925311)

 

인생 길을 함장축언하는 이 말을 오늘도 곱씹어 봅니다. , 이제 산의 초입에 다다랐습니다. 여러 갈래 길들이 보이는군요. 어디로 가볼까요? 칸트의 안티노미(antinomy, 이율배반)를 흉내 내보면, 어디로 가든 쉬운 길은 없습니다. 또 어디로 가든 어려운 길도 없습니다.



 

IP *.77.66.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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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16:42:26 *.169.227.25

 사람들이 갔으므로...세상 천지에 길은 널렸다

하지만 나의 길은 없다 아직 가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 지...알 수는 있다. 

사람들의 길을 통해서 , 내가 지나온 길을 통해서 ,...

그렇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은 예정된 길이지 결정된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운명을 주었지만 그와 함께 

그 운명을 선택할 권리도 함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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