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 조회 수 582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다음 주 해외출장을 갑니다. 오랜만의 출장이라 준비할 것도 있고, 밀린 업무 처리도 할 겸 토요일이지만 잠깐 회사에 나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잠시 창밖을 보며 '이번 주에는 마음 편지에 뭘 쓰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과 일이 아닌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제가 정해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주중은 주말을 위해 존재하는가? 혹시 당신은 오직 주말에만 살아있는 존재인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제 하려는 이야기들이 MZ세대나 일부 독자들에게 공감이 안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봅니다.
제 경우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니면서 일하는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천직 같았습니다. 자다가도 소프트웨어 코드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빨리 출근할 수 있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고, 주말에 회사를 가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법 연차가 쌓이고 책임이 늘어남에 따라 일하는 기쁨보다는 스트레스가 늘어갔습니다. 언제부턴가 일과 일이 아닌 것들을 명확하게 분리하려고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직을 하고 다시 일과 일이 아닌 것들의 분리가 잘 되지 않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경력직으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이 컸던 것 같습니다. 출근해서 처리해도 될 일을 새벽에 깨서 노트북을 붙들고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실시간으로 이메일 답장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결국 번아웃이 왔죠.
다시 일과 일이 아닌 것들을 명확하게 하려 애쓰던 몇 년이 지나고 지금은 조금 애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일과 일이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든, 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스위칭이 되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런 걸 쓰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나름 내공이 제법 쌓인 덕분이겠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과 휴식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뇌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경영학의 구루 톰 피터스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쓰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주말 이틀을 위해 주중 5일을 희생합니다. 그걸 균형이라고 믿습니다. 단 하루라도 주말에 회사에 나가는 것은 균형이 깨지는 것이니 결단코 피해야 할 일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결국 그들 역시 일하는 시간을 위해 일하지 않는 시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주말동안 스트레스를 풀고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주중에 회사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지 못하니까요. 일과 일이 아닌 것들의 균형추가 아슬아슬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워라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질 때도 있고, 다른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질 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불안정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 진짜 워라밸의 의미가 아닐까요.
워라밸은 일과 일이 아닌 것의 균형인데, 일을 되도록 적게 하는 것이 궁극의 워라밸이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물론 수입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욕심이죠. 결국 저울 한쪽의 깊이는 얕아서 조금만 그쪽으로 기울어져도 삶은 불안하고 피폐해지지만, 반대쪽은 한없이 깊어서 그쪽으로 기울어질수록 삶이 안정되고 아름다워지는 기괴한 저울의 모습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워라밸의 실체입니다. 일이라는 것이 좋냐 나쁘냐는 태고 이래로 계속되어 온 난제이므로 거기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활동으로 치부됩니다. 우리는 일에 의해 방전되고, 일이 아닌 것들에 의해 충전됩니다.
성공한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들 역시 일을 하며 방전되지만, 일에 의해 충전이 되기도 한다는 거죠. 마치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말입니다. 일이 좋더라도 과도함은 경계해야 합니다. 영국의 작가였던 존 러스킨은 하는 일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먼저 그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이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조건은 그 일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워라밸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남은 한 주 최상의 워라밸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30 | [내 삶의 단어장] 덧없이 흐르는 이야기: 마그리트와 프랑스어와 루이비통 [1] | 에움길~ | 2024.03.05 | 6235 |
4329 | [수요편지] 행복에 대한 또다른 이런 저런... [1] | 불씨 | 2024.02.28 | 6149 |
4328 | [책과 함께] 모든 나라의 역사는 같다 /피의 꽃잎들 [1] | 에움길~ | 2024.02.27 | 5961 |
4327 | [수요편지] 행복에 관해 헷갈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 불씨 | 2024.02.21 | 6155 |
4326 | [내 삶의 단어장] 바구니, 진정성 [2] | 에움길~ | 2024.02.20 | 6137 |
4325 | [수요편지] 흉터 [2] | 불씨 | 2024.02.14 | 6209 |
4324 | [수요편지] 답 없는 리더 [1] | 불씨 | 2024.02.07 | 6125 |
4323 | [내 삶의 단어장] 호박, 마법 또는 저주 [1] | 에움길~ | 2024.02.06 | 6047 |
4322 | [수요편지] 삶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 | 불씨 | 2024.01.31 | 5914 |
4321 | [내 삶의 단어장] 각인, 그 무엇으로부터도 | 에움길~ | 2024.01.30 | 5979 |
» | [수요편지] 일과 일이 아닌 것 | 불씨 | 2024.01.17 | 5829 |
4319 | [수요편지] 걱정해서 걱정을 없앨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네 [1] | 불씨 | 2024.01.10 | 5901 |
4318 | 새해의 마음가짐 | 어니언 | 2024.01.04 | 5689 |
4317 | [수요편지] 살아 있다는 것 | 불씨 | 2024.01.03 | 5594 |
4316 | 등 뒤로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3] | 어니언 | 2023.12.28 | 1102 |
4315 | [수요편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1] | 불씨 | 2023.12.27 | 1110 |
4314 | 언제나 들리는 소리 | 어니언 | 2023.12.21 | 1271 |
4313 | [수요편지] enlivenment | 불씨 | 2023.12.20 | 1110 |
4312 | 용기의 근원인 당신에게 [1] | 어니언 | 2023.12.14 | 1142 |
4311 | [수요편지] 워라밸 | 불씨 | 2023.12.13 | 1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