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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피의 꽃잎들]
모든 나라의 역사는 같다
응구기 와 시옹오, 민음사, 2015.
이 책이 출간된 건 2015년이다. 지금 2024년이니 거의 10년 전. 굳이 10년 전의 소설책을 꺼낸다. 아니, 10년 전의 글을 꺼내본다. 작가 응구기와 시옹오는 매번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고,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연하듯 봄이 되었는데 꽆잎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비와 눈속에 잠기어 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봄이면 피는 꽃들, 이맘때는 봄이라는 공식이 맞지 않는 듯 피어오르다 사그러진 몇몇 봄의 꽃들을 보며 새삼, 변화를 실감한다. 자연은 이토록 변화하고 있는데 그리하여 삶까지도 변화를 수용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보는 밤.
한동안 영화관람객이 줄었다가 다시 극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심상찮다. 관객들의 자발적인 관람이 아니라 강제와 자본을 앞세운 강제 동원이라고...언제적 행태인지...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를 파묻고 극장을 찾게 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는 보지 못했고 내용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 <파묘>라는 영화에 누군가, 어떠한 무리들이 발광과 발작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고.....그냥 이런 상황에서 떠올랐다. "피의 꽃잎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쓴 소설 제목인 피의 꽃잎들은 유독 붉은 빛을 띤 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벌레가 먹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피처럼 붉은 색을 띠고 있을 뿐이다. 소설 전편에 흐르는 비장미는 피처럼 붉은 색과 텅 빈 열매에서 연상되는 반향, 작가가 서두에 인용하고 있는 요한묵시록 6장과 월트 휘트먼의 시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인생이 더한 비장미도 빼놓을 순 없겠다. 작가인 응구기와 시옹오의 인생에선 소설 하나로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사 사형선고를 받고 망명자가 된 살만 루시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응구기 와 시옹오 역시도 살해위협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구했으며 오랜 세월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하게끔 하는데 이 책 피의 꽃잎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역 유명 인사들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인 네 사람이 차례로 소환되며 자신의 행적을 진술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밝혀 나간다. 범인을 밝히는 과정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얘기의 진행과정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의 역사라고나 할까. 여기에 아프리카, 케냐라는 명칭만 바꾼다면, 등장인물의 이름을 김씨, 이씨, 박씨…들로 바꾼다면 이것은 여지없이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아닌가.
민중들의 삶은, 권력을 가진 이의 포악함은 어느 나라나 같은가. 식민지, 건국, 독립, 민중, 지식인, 배반, 분노, 투옥, 독재, 자본… 어찌 이 세상은 이다지도 다르지 않고 같을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지만 우습게도 역사에서 우리들 각자는 보는 곳이, 보고 싶은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또한번 신념과 믿음이 인간의 영혼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열심히 읽었던 오적(五賊). 소설 속의 인물이 한국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구절을 정말인가, 오타인가 하며 읽었건만 작가는 정말 김지하의 오적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다했다. 작가가 읽고 의지를 다졌던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 추이와 같은 걸 안다면. 강신주가 지적했듯이 “왕정-부르주아 프레임에서 부르주아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부르주아-민중 프레임이 설정되면 부르주아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 이렇게 딱 어울릴 수가 없다. 딱 추이와 김지하의 연상이 맞아 떨어지지만 적어도 작가가 이 소설을 썼을 당시인 1977년도의 김지하는 추이는 아니었다. 추이가 처음의 추이가 아니듯이.
상당한 분량의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식민주의와 이후의 아프리카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 자본이 얽히고 민중들의 피폐한 삶과 그들을 짓밟는 권력과 자본가들이 등장할 수밖에. 그리고 늘 그렇듯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인한 갈등들이 지속되고 이러한 사회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는.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되는가? 미래를 꿈꾸는 것인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인지, 현재를 타개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는 그 모든 비극의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희망하고는 있다. 그 미래라는 것이, 낙관이라는 것이 소설의 마지막 소제목처럼 “투쟁은 계속된다”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또한 새로운 세대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린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네. 일방통행이지. 더 심한 가난과 불행으로 이어지지. 가난은 죄네. 그런데 생각해 보게. 가난이라는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일세. 그래서 그들은 그것 때문에 처벌을 받고 지옥으로 보내지네. 하! 하! 이 지옥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빛은 조지프였네. 이것이 내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라네. p555
제국주의, 자본주의, 지주, 지렁이, 기생 상태와 상호 포식을 사회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배가 불룩한 진드기들과 빈대들을 낳는 체제. 이 체제와 부당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들과 그것의 하수인들이 그의 어머니를 무덤으로 몰아갔다. 이 기생충들은 늘 노동자들에게 피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모든 땅을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겼던 소수의 인간들은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외로운 무덤을 향해 걸어갈 때조차, 민중의 피를 마시고 동일한 피부색과 국가주의에 대한 위선적인 기도를 읊조릴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이 체제와 그것들의 신들과 그것의 부하들에 맞서 의식적이고 지속적이고 단호하게 싸워야 했다!
내일은 노동자들과 농부들이 투쟁을 이끌고 권력을 잡아, 피에 굶주린 신들과 그들의 하수인들로 구성된 체제를 무너뜨리고,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와 피를 마시고 인간의 살로 포식을 하는 시대를 끝장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어야만, 남자와 여자의 왕국이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고, 생산적인 노동 속에서 기뻐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p670~671
이 소설을 통해서 아프리카, 케냐의 역사와 상황에 대해 좀더 알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은 결국 모든 식민국가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희망의 내용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거기에 안타까움이 있을 뿐. 더구나 소설이 씌어진 1977년의 시대에서 40년 즈음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의 상황을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소설 속 중심 인물인 무니라, 압둘라, 완자, 카렌자에게서는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식민시대의 전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여성 완자의 캐릭터였다. 그 시대에 우리는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가.
‘피의 꽃잎들’과 같은 책들이 나온다면 여전히 부르르 떨며 작가를 쫓아내거나 사형시키려는 나라가, 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체제와 개인의 의지, 신념, 그리고 희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며칠전 브룬디 출신 흑인 두 사람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한 엘리트인데도, 돈을 벌기위해
안산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브룬디도 쿠데타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는 나라였지요.
금년도에 한강 작가의 소설 몇권을 읽었습니다.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심하게 앓았습니다.
읽고나서도 한 두어달은 아팠던 것 같습니다.
피를 먹고서 민주주의는 자라고 역사는 전진하는 것 같지만,
잠깐 사이에 역사는 퇴행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두번이나 하야한 독재자를 찬양하는 영화가 나오고,
'공정과 상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지만, 정상적인 사람인가 싶은 사람이
통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응구기와 시옹오'처럼 낙담하기도 하지만 필자같은 분이 계셔서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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