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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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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4일 18시 23분 등록

 

 

조금 전 여천역에 내렸습니다. 강렬한 햇살은 7월 같지만 바람은 5월에서 불어온 것처럼 상쾌했습니다. 승강장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4년 쯤 됐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한 대학의 대학원에 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 강좌를 기획하고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강의를 했으므로 또 강의를 요청할 일은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번 나의 강의 때 그녀는 대학의 직원인데도 맨 뒷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내 강의를 청강했으나 그것은 단지 진행자로서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태도가 예전의 모습과 사뭇 달라보였습니다. 그녀는 꼼꼼히 메모를 해가며 강의를 들었고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예전과 분명히 달라보였습니다. 그 달라진 모습을 인상 깊게 느꼈으나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녀는 내게 SNS 이웃을 신청했고 해서 그녀의 기록들을 짧게 보게 되었습니다. ‘아하, 맞다. 이 양반이 출산 휴가를 간다고 했었지. 그래서 두 학기 가까이 보이지 않았구나. 그 사이 엄마가 됐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지금 걸어 온 전화의 용건을 들어보니 지난 번 강의 때 그녀의 상사와 밥을 먹으면서 내가 던진 어떤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새로운 강좌를 고민하는 책임자에게 인문학과 결합한 여행 강좌를 개설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냥 가벼운 의견이었는데, 책임자는 그 아이디어를 조금 더 발전시켜 보면 좋겠다고 그녀에게 구체화할 것을 과제로 준 모양입니다. 나는 그녀가 강좌의 구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금방 끊는 것이 서로 미안했던지 우리는 처음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나는 그녀에게 SNS를 본 소감과 내 강의를 듣던 느낌을 전했습니다. “아이가 몇 개월이죠? 아주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리고 강의를 듣는 모습이 예전과 무척 달라 보이던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가면서 산다는 것이 전보다 더 힘겹다고 느끼기 시작했나 봐요. 강의가 더 없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어요. 삶을 이루는 한 측면, 즉 빛과 그림자에 대한 선생님 강의가 특히 절절했어요.”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덧붙여 주었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마 그게 멋진 시간이 되었구나 하고 느낄 거예요. 처녀 때는 몰랐던 걸 지금 알게 되듯이 시간이 흐르며 몸으로 겪어내는 것들만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있으니까요. 삶에는 그렇게 시간만이 알려주는 것들이 있어요. 내 나이가 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그 힘겨웠던 과정들이 삶에 흐르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 과정들이었구나. 그래서 마주하는 모든 시간들을 맛있게 만나야지 하고 깨닫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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