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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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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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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8일 10시 56분 등록

오랜만에 남자에게 설렜습니다. 나보다 여덟 살 연상인 그 남자의 체구는 왜소한 편이었습니다. 남자는 바지를 진으로 입었고 상의는 검은색 면 티셔츠만을 입어 자신의 체구와 체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 전체에서 함부로 둔 구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놀라울 만큼 맑은 피부와 눈동자를 유지하고 있는 얼굴은 웃지 않으나 웃는 듯 하고, 웃지만 웃지 않는 듯했습니다. 수줍은 듯 수줍지 않고, 작은 듯 보이지만 본령은 거대했습니다. 성성한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는데 모습이 마치 율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스님 같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남자를 오래전 그분이 쓴 책을 통해 만났습니다. 이후 두어 번 TV 강연으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참 맛있다생각하며 읽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우숲에서 매달 갖는 인문학공부모임의 열망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요즘 워낙 핫한 분이므로 강연료도 별로 드리지 못하는 우리가 모시기가 쉽겠느냐는 학도의 의문에 나는 참된 인문학자라면 진정성을 가진 학도를 외면할 리 없을 것이라며 진정성을 담아 초대해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학도 중 세 명이나 편지를 보냈던 모양입니다. 그 중 한 명은 손 편지까지 써서 가르침을 청했다고 합니다. 당신 역시 그 마음을 느껴 이곳 숲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 남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선생님으로 오셨습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 주제는 고스란히 학도들이 열망한 주제였습니다. 당신의 강연은 진솔했습니다. 서른 초반, 박사학위 논문 작업을 앞둔 청년이 걸어가던 길 위에서 마주했던 좌절,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처자식이 있었다. 공부만 하느라 삶은 곤궁했다. 공부해오던 학문인 철학마저 그것이 뭔지 모르겠고 그 공부를 계속해야 할 이유도 잃은 것 같았다. 학위를 포기하고 어렵게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들개처럼 사는 시간을 보냈다술회했습니다. 강연은 한 시간 동안 비처럼 내리고 폭포처럼 떨어지더니 강을 이루었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한 강연을 통해 당신은 좋은 삶에 대한 지평을 다만 넌지시 던졌습니다. 하지만 아 맛있네. 참 맛있네.’ 내 마음은 연신 교감으로 일렁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쉬었습니다. 누군가는 선생님께 사인을 받고 사진을 함께 찍었고 누군가는 숲의 바람과 소리와 향을 음미했으며 더러는 삼삼오오 환담하고 낮술을 마시며 쉬었습니다. 첫 시간 나는 벌써 책상 위에 준비된 맥주 한 캔을 다 마신 뒤였습니다. 강연을 시작하며 선생님께도 준비한 맥주 한 캔을 권했을 때 어제 전작이 과했다며 사양하시다가 한 깡통만……하고 집어 드셨습니다.

 

이후 두 시간 넘게 참가자들의 질문과 선생의 답변으로 공부가 계속되었습니다. 공부가 계속될수록 당신이 단순한 지식인에 머무는 사람이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단지 노자를 연구한 지식인이 아니라 노자를 체화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평소 당신의 주장에 대해 품고 있던 궁금함을 질문으로 드렸습니다. 또한 곳곳에서 다른 이들의 질문이 꼬리를 이었습니다. 질문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것은 술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열망이 뜨거워서 일 것입니다. 질문이 공부의 시작임을 확신하는 나는 매달 재현되는 이 광경 안에 앉아 있으면서 또한 그 광경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질문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질문은 역시 자기 욕망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자기의 삶에 분노하고 있는 청춘 몇 명이 서로 비슷한 처지의 고백과 질문을 내놓았습니다. 대강은 이렇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현실을 넘어서기가 너무도 어렵고 심지어 두려운 일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 도처에서 이 질문을 촉발시키는 힘이 당신의 위대함이겠구나.’ 선생님의 저술과 강연에는 위대한 힘이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위(無爲)의 철학에 대한 다양한 오해와 편견으로 점철돼 왔던 오래된 노자를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힘입니다.

 

좋은 삶을 향한 열망은 있으되 무지와 두려움 앞에 쩔쩔매고 있는 청춘들의 질문을 받은 저 담대한 남자는 적절한 문장을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덜 아프게 알려줄 단어와 문장을 고르는 모습이 짧은 순간 역력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강의 서두에 당신이 겪고 감당하며 걸어온 삶의 이야기에 답이 다 담겨 있는데, 어떤 특별한 매뉴얼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이 그 답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들개처럼 살았던 시간!’ 그 술회가 바로 그의 답일 것입니다. 나 역시 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오래 전에 나의 스승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답과 경험이 있습니다. 각각의 표현은 다르나 핵심은 같습니다. 다음 주에 본격 그 이야기를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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