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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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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3일 19시 02분 등록

크루즈.jpg

 

 

수십 층 호텔이 물 위를 떠다니는데 어설픈 데가 하나도 없다.

정원 1600명이라니 선실이 800개는 되겠고,

식당이 3군데, bar7군데... 모르긴해도 크루즈 중에서는 중소형일 텐데

모든 것이 땅위처럼 돌아간다.

cabin이라 불리는 선실만 해도 생각보다 커서 6평쯤 되려나

침대 두 개에 책상이며 옷장,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옹색하지 않다.

승선하자마자 안전교육을 하는데 승객당 구명정이 정해져 있어서 나는 14,

이 세상 어딘가에 체계를 물 말아 먹은 곳이 있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다.

 


 

식당에서 정장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류층 코스프레를 하는 기분이 들다.

잔고와 지위의 상류층이 아니라 시간활용의 상류층이랄까,

그리스의 미코노스를 둘러보고 잠이 들어

출발지인 터키의 쿠샤다시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

내가 잠을 잘 때나 멍때리고 있을 때에도 쉬지않고 움직였을 크루즈가 대견했다.

크루즈가 벌어준 시간을 무엇에 쓸까?

막연한 인상만 갖고 있다가 3박짜리 짧은 크루즈나마 이용하고보니 나쁘지않은데

아니 좋아지려고 하는데

크루즈를 좋아하려면

이것이 온전한 휴가가 되려면 평소에 좀 더 치열하게 살면 좋겠다.

나중에 한꺼번에 내는 돈이지만

어느 bar를 가나 모든 음료가 제공되고

쾌적하고 넓은 bar를 독차지할 수도 있다.

매끼 풍성한 뷔페나 우아한 코스요리가 제공된다.

요컨대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일체의 번잡함을 대신 해 주고

심지어 육로이동의 번거로움과 소요시간까지 해결해 준다.

바로 여기, 일시적이나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수적인 활동이 해결된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싱어.jpg


로사리오.jpg


무지개.jpg


크루즈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승객이 아니라

낮에는 crew일을 하고 밤에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젊은이들과

식당에서 서빙하는 얼굴이 검은 웨이터들이었다.

간밤에 극장식 식당에서 눈여겨 보았던 싱어가 지나가길래 아는척했더니

세상에나 어찌나 좋아하던지, 활짝 웃는 얼굴이 흑진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웨이터들,

필리핀,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내가 국적을 물어 본 사람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쉬지않고 몸을 움직이면서도 정중한 가운데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

활짝 웃으며 커피를 반만 줄까 가득 줄까 묻기에

“Extra large”라고 받아쳤더니 다른 잔에까지 부어주겠다며 장난을 친다.

마침 미소가 선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

그리 말해 주었더니 또 한 번 만면에 미소를 띤다.

식사가 끝날 무렵 다시 와서는 불편한 것이 없냐고 물어준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네 미소까지 포함해서 더욱 그리하다고 말해주니

이 친구 낮은 감탄사를 뿜어내며

자기 심장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는 시늉을 한다.

인도에서 온 로사리오, 나는 그의 미소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눈을 맞추는 것,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새삼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34일의 일정이 끝나는 날 아침, 서운한 마음으로 갑판에 선다.

잉크를 풀어놓은 색깔의 에게해가 어찌나 단아한지 대리석 같다.

절로 무릎 꿇고 싶은, 지고지순의 아름다움이다.

순간 그리스와 터키에 왜 그렇게 많은 신이 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은 숭배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대리석바다가 일렁인다.

바람을 타고 물고랑이 빠르게 달려간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인다.

자꾸만 자꾸만 바다는 내게 무지개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햇살이 어우러진 한 판 우주적 쇼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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