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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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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5일 12시 0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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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회를 먹으면 스끼다시에 생고구마나 꽁치구이 같은 것도 나오잖아요? 그런데 변산반도의 격포항에서는 스끼다시가 딱 해산물만 나오는 거에요. 조개국과 가리비, 키조개, 멍게와 괴불, 다섯 가지밖에 안 되는데도 상이 꽉 찬 느낌이 든 것은 그것들 모두가 어마어마하게 신선했기 때문인데요. ‘동죽이라는 조개의 국물이나 가리비가 어찌나 맑고 시원한지 무슨 천상의 음식 같더라니까요. 다른 곳보다 좀 더 얇게 썬 우럭 또한 고소하고 감칠맛 있었구요. <격포 어촌계 회센터>라고 생산협동조합 같은 곳이라 가격까지 싸서, 쭈꾸미 한 접시를 더 해도 단 돈 7만원! 이제 다른 곳에서는 회를 먹지 못할 것 같아 큰일 났다 싶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차 없이 지내는지 9, 대중교통에 익숙해져 애들이 차를 산다고 해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말릴까 싶은데 불현듯 차 생각이 다 났을 정도입니다. 차가 있다면 순전히 회를 먹으러 격포항에 자주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얼마 전에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지요. 상당히 여러 곳에서 그 카피를 인용했던 것을 보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저는 그 카피를 볼 때마다 불만스러웠는데요, “부러워야 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격포항에 가서 신선한 해산물을 먹고 감탄하고는, 이렇게 두고두고 글에서도 써 먹고 있는 것처럼 경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거든요. 그것이 음식이든, 스타일이든, 여행지든 감탄을 많이 느껴야 즉 부러운 것이 많아야 생활에 활력이 생깁니다. 부러운 일을 해 내기까지의 긴장이나 기다림, 마침내 그 일을 누리는 쾌감으로 일상에 무늬가 생깁니다. 나아가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들이 가고 싶은 곳이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어지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여행가로 유명한 후지와라 신야의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식도암으로 무참한 최후를 맞이한 형을 애도하기 위한 여행을 기록한 만큼 형과의 소소한 추억이 태반인데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탄을 발견하는 것이 삶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례가 이 책에 나옵니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지요.

 

 

큐슈 모지코우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건 식도락의 길을 타고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바다로 흘러가는 물의 관문의 해협에서 제일 맛있는 생선들만 먹고 자랐거든요. 게다가 집이 여관이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저도 형도 그런 숙명을 짊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맛있는 것만 먹고 자라다 보니, 웬만큼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맛있다고 느끼지도 못하게 된 것이지요. 그 성과가 이 수첩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곧 먹는 것이라면, 이 수첩은 제 삶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삶의 증거가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가면 여러분이 또다시 먹고 살아가게 되겠지요.

 

먹어 주십시오.

 

형은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성불할 것입니다.


 

수첩이라 함은, ‘숙명적인 식도락가였던 형이 그야말로 생애에 걸친 식도락을 기록한 것이었지요. 형의 1주기에 형수가 이백 부쯤 복사하여 지인들에게 돌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써 주십시오.

 

그대가 쓰지 않으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질,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삽화에 대해,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은 차곡차곡 쌓일 것입니다


 

오늘 아침 먹어 주십시오그러니 써 주십시오로 연결되는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납니다. 변산에는 2주 전에 다녀왔지만 이 책은 2년 전에 읽었거든요. 마음편지로 무엇을 쓸까 궁리하며 제 블로그를 뒤지다가 발견한 동시성에 감기로 쳐져있던 몸이 깨어납니다. 늘 읽고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초심자의 열정에서 한참 멀어진 자세도 찔끔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삽화를 으로써 매순간 숨어 있는 의미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싶습니다. 감탄을 찾아 땅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 없이 오직 한 가지로 들씌워진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패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대를 감탄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모든 것을 포기해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요?  내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요?

 

먹어 주십시오.

입어 주십시오.

떠나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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