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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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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09시 17분 등록

 

열흘 만에 해남을 다시 찾았습니다.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해남은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도처에 역사가 살아 있고 사람다운 삶의 향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해남입니다. 그곳은 행정단위가 군인데 고등학교가 세 개나 있습니다. 도서관도 무려 두 곳이나 있습니다. 원래는 고등학교가 다섯 개나 있었는데 최근 통폐합을 거쳐 세 개로 줄었다고 합니다. 도서관은 군립이 하나, 교육청 산하의 공공도서관이 하나입니다. (같은 군 단위인 우리 동네에는 도서관이 겨우 하나 있고 그 속사정도 부실한데) 이번 방문은 공공도서관의 초대였고 열흘 전의 방문은 한 고등학교의 초대였습니다.

 

고등학생을 위한 인문학 강연에 초대받은 그 학교는 학생 수가 무려 8백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수강을 신청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 대강당을 채운 학생 수가 무려 18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제법 긴 시간을 강연했는데 참석한 학생 중에 이따금 조는 학생은 겨우 다섯 명도 되지 않았고 모든 학생들은 시종 진지한 태도로 함께 호흡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기숙사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인데도 여러 명의 학생들이 남아 자신들이 읽은 책에 저자의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섰고 또 다른 몇 명의 학생들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강연회를 매달 연다고 하니 그 역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강연에서 일부 시간을 할애해 참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견해를 이야기했습니다. ‘참된 공부란 참된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연을 보라! 장미가 비싸게 팔리는 꽃이라고 해서 장미가 되려는 냉이가 있던가? 수선화가 되기 위해 애쓰는 구절초가 있던가? 하늘은 모든 생명에게 제 본연의 모습을 고이 접어 담고 이 세상에 오도록 했다. 좋은 삶이란 그 접혀 담겨 있는 자신을 활짝 피어내는 것이고, 훌륭한 삶이란 그 삶으로 자신을 누리고 또한 타자를 일으켜 세우는 삶이다. 공부는 그 좋은 삶, 훌륭한 삶에 이르기 위해 하는 모든 학과 습이다. 그 방법에는 책 안에서 찾아보는 작업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태에서 찾아보는 작업이 병행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묻고 사유하고 성찰하는 노력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나를 향해 가고 있는 길 맞는가? 하늘이 고이 접어 내게 주신 그 모습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는 지금 그 위대한 포텐셜을 잘 펼쳐가고 있는가?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 없이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소위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모두 포괄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학생들이 참된 자신에 이르고 그것으로 자신을 꽃피우고 또 그 꽃으로 벌과 나비와 나방과 새와 다른 생명들을 일으켜 세우듯 타자를 일으켜 세우는 삶을 위해 공부하자고 역설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남았던 학생 중 한 명이 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버거운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선생님, 저는 언제부터인가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수시로 이게 나 맞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왔어요. 일기를 쓰는 일로 주로 해왔지요. 반성과 성찰이 그때마다 참 좋더라고요. 그런데 종종 회의감이 들어요. 예컨대 고등학생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중 2때 찾아낸 참된 나라는 모습이 진짜 참된 나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이런 회의가 반복될 텐데,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요?”

질문을 하는 표정이 어린 아이처럼 맑았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수준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나는 이 버거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대가 나라면 그대는 무엇이라 답해 주셨을까요? 다음 주에는 소녀에게 내가 건넨 대답과 함께 해남의 또 다른 하룻밤 이야기를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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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통한 날입니다. 이 눈부신 봄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차마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날입니다. 며칠 전 해남에는 팽목을 향해 도보로 순례의 길을 떠나온 일군의 사람들이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몸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걷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만든 이 끔찍한, 부조리한 질서가 분통함을 대신하여 침몰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소중한 이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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